[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조금은 낯선, 도요다 아키오의 ‘신가리’ 리더십

▲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 토요타자동차를 이끌어 온 도요다 아키오 회장. 2009년 사장에 오른 그는 올해 4월, 14년 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 14년은 ‘토요타다움’을 되찾는 싸움이었다”고 했다. <도요타자동차>

[비즈니스포스트]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다. 미국과 소련이 달 정복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케네디는 NASA의 한 건물을 둘러보던 중 빗자루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한 청소관리인을 만났다. 

자신을 대통령이라고 밝힌 케네디는 청소부에게 “당신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청소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 각하, 저는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I'm helping put a man on the moon.) 

포브스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된 위대한(?) 청소부 이야기다. 남들이 청소 일을 뭐라 하든 이 청소부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스스로를 높게 평가했다. 다시 말하면 NASA의 엔지니어들과 달 정복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청소부 이야기를 빌려온 건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 토요타자동차(회사는 토요타, 인명은 도요다로 표기한다)가 지닌 ‘공유 가치의 힘’을 소개하고자 함이다. 전 세계 기업들을 두루 훑어봐도 토요타만큼 명쾌하고 간결한 기업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도 드물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66) 회장에서부터 37만 명의 직원들까지 그들은 종교적 교리에 가까울 정도로 이 가치를 공유하고 신봉한다. ‘토요타다움’이다. 일본어로는 ‘토요타 라시사(トヨタらしさ)’라고 말한다. ‘토요타다움’은 토요타 조직 문화를 의미하는 ‘토요타 웨이’라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토요타는 과거 △JIT(Just-In-Time:낭비 없는 적시 생산), △카이젠(改善:지속적 개선), △5Why 질문법(최소 다섯 번 이상 이유를 물어야 문제점을 파악한다는 원칙) 등으로 대변되는 TPS(Toyota Production System:도요타 생산 방식)를 근간으로 토요타만의 색깔을 만들었고 이를 ‘토요타다움’이라는 말로 정착시켰다.

여기에 더해 제프리 라이커(Jeffrey K. Liker) 미시간대 교수는 ‘토요타 웨이(The Toyota Way)’라는 책을 통해 도요타를 서구에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런 토요타 웨이와 토요타다움은 지금의 토요타를 만든 성장 엔진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지난 4월 단행된 14년 만의 CEO 교체엔 ‘토요타다움’이 돋보였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53세의 젊은 임원을 전격 발탁했다. 세 명의 부사장을 뛰어넘고 기용된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아키오 회장은 평소 후계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토요타 철학’을 꼽았다. 실적을 잘 내는 경영 수완가보다 토요타가 지향하는 필로소피(Philosophy)를 지닌 사람을 심중에 뒀던 것이다. 

인사의 핵심은 14년 만에 창업 가문 사람이 아닌 인물이 등용됐다는 점이다. 창업 가문 입장에서 보자면 아키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장직을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낡은 사람”이라며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났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조금은 낯선, 도요다 아키오의 ‘신가리’ 리더십

▲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주주총회 의장으로 마지막 자리에서 자신을 ‘신가리(しんがり) 사장’이라고 했다. ‘신가리’는 전국시대 당시 군대가 퇴각할 때 후방에서 적의 추격에 대비하는 부대 또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토요타자동차>

두 달 후인 6월 14일 열린 토요타 주주총회장의 주제 역시 ‘토요타다움’에 맞춰졌다. 아키오 회장이 총회의장을 맡는 마지막 자리. 그는 이날 “지난 14년은 ‘토요타다움’을 되찾는 싸움이었다”며 험난했던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 여정엔 리콜 사태가 있었다. 2009년 도요다 아키오가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토요타자동차는 2008년 불어닥친 리먼 쇼크의 영향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적자(4610억엔)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연타로 어퍼컷을 맞았다. 발단은 이랬다. 

2009년 8월 하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디에이고 교외. 비번이던 경찰관이 운전하던 토요타의 렉서스 세단이 고속에서 제어 불능 상태가 됐다. 차에 탄 네 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토요타는 주력 시장인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리콜 상황에 몰렸다. 

여론은 들끓었고 그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토요타다움’의 명성과 신뢰에 굵은 금이 갔다. 다음 해인 2010년 2월 사장 아키오는 미 하원 공청회에 불려 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그날을 ‘토요타가 도산한 날’이라고 심중에 깊게 새겼다. 

당시 사태를 수습하면서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회사를 밭에 비유하며 “내가 인수한 황량한 밭의 흙을 다시 갈아엎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본으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아키오는 자신을 ‘신가리(しんがり) 사장’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신가리’는 일본 전국시대 때 널리 쓰이던 용어로 군대가 퇴각할 때 후방에서 적의 추격에 대비하는 부대 또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쟁에서 병사들을 무사히 퇴각시키기 위해서는 ‘신가리’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자칫 퇴각에 실패하면 전 부대가 괴멸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가리’는 때론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자리였다. 

도요다 아키오가 그런 ‘신가리’ 무장(武將)역을 해왔다는 얘기다. 리콜 사태로 흔들리는 조직의 중심을 잡고 조직원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방패막이 리더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요다 창업 가문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헛간’ 이야기다. 여기에도 ‘토요타다움’이 짙게 배어 있다. ‘헛간’을 이해하려면 가문 계보부터 살펴봐야 한다. 

“도요다가의 전 재산을 잃어도 헛간만은 지켜라.”(豊田家の全財産を失っても納屋だけは守れ)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1925~2023, 도요타 6대 사장) 명예회장으로부터 가문의 오래된 이 교훈을 자주 듣곤 했다. 쇼이치로는 지금의 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한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 1894~1952)의 장남이다.  

그런 기이치로에서 한 세대 더 올라가면 아키오 회장의 증조부인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1867~1930)로 이어진다. 토요타그룹의 시조인 사키치는 자동직기(自動織機:실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멈추는 방식)를 발명하고 토요타자동직기 제작소를 설립한 인물이다. 사키치는 목수의 아들이었는데 머리가 비상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그가 아버지 몰래 직기를 연구하고 발명하던 공간이 바로 ‘헛간’이다. 사키치는 자동직기 특허를 영국에 팔아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사키치가 죽자 아들 기이치로는 그 종잣돈으로 1933년 자동직기 제작소에 벤처 성격의 자동차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3년 만에 ‘AA형’이라 불리는 시제품을 내놨다. 

아키오 회장의 증조부 사키치가 태어난 곳은 시즈오카현 고사이(湖西)시다. 그곳에 사키치 기념관이 있는데 당시 헛간이 복원돼 있다. 그 헛간이야말로 토요타그룹의 뿌리인 셈이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 40년 동안 매년 증조부의 기일에 이곳을 찾아 사키치의 헛간 정신을 되새겼다.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헛간만은 지켜라’는 말에서 ‘헛간’이란 초심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키오 회장은 “토요타자동차가 세계 1위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변함없이 “설립 당시의 마음가짐”이라며 ‘토요타다운’ 초심을 강조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조금은 낯선, 도요다 아키오의 ‘신가리’ 리더십

▲ 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2019년 5월 15일 모교인 미국 뱁슨 칼리지(Babson College) 졸업식장에서 영어 축사를 하는 모습. 뱁슨 칼리지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커리큘럼으로 유명한 대학이다. <뱁슨 칼리지>

이젠 아키오 회장의 어록 이야기. 필자는 아키오 회장의 여러 어록 가운데 ‘도넛’ 어록을 최고로 꼽는다. 웬 도넛? 

2019년 5월 15일 미국 뱁슨 칼리지(Babson College, 메사추세츠주 웰즐리) 100주년 졸업식 행사장. 이날 아키오 회장이 영어 연설 축사에 나섰다.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이 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아키오 회장의 장남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잠깐 설명을 좀 붙이자면 뱁슨 칼리지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커리큘럼으로 유명한데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미국 최고 대학 순위’에선 10위에 올랐다. 그런 뱁슨 칼리지는 꽤 오래전 한국과도 인연이 있었다. 

삼성 창업회장 호암 이병철이 이 대학에서 수여하는 최고 경영자상(1979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뱁슨 대학은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에 비견되는 경영학의 명문”이라고 했다. 

아키오 회장은 후배 졸업생들을 향해 어떤 말을 했을까? 뱁슨 칼리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14분짜리 축사의 핵심 문장은 이렇다. 

“여러분 자신만의 도넛을 찾으세요(Find your own donut).”

도넛(donut)은 아키오 회장이 뱁슨 칼리지를 다닐 때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여기서 도넛은 인생의 기쁨’(Joy in Life)을 뜻한다. “도넛을 찾으라”는 말에는 즐겁게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찾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키오 회장은 “여러분의 시대는 많은 성공과 더 많은 도넛(many, many donuts)으로 채워지길 희망한다”는 말로 축사를 마무리했다. 필자의 마무리 한 마디. 이렇게 질문을 던져본다. 

“여러분의 도넛은 무엇입니까?”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