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배터리산업은 마라톤 42.195km 중 이제 4km를 뛰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열린 '배터리산업의 날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스크리포트 11월] '배터리'처럼 고성장 가능성 높은 의외의 산업 분야는

▲ 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해 인도한 친환경 메탄올 추진선의 모습.


고금리에 따른 전기차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로 인해 배터리산업을 놓고 위기감이 커지는 데 대해 시장 개화 초기부터 틀어쥔 주도권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K배터리 3사 합산 수주잔고가 최근 1천조 원을 돌파했다는 점도 권 부회장이 보인 자신감의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국방비가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로 흔히 '천조국'으로 부른다. 우리나라는 배터리산업에서 천조국이라고 할 수 있다. 

자국 시장이 큰 중국 업체와 함께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은 당분간 세계 배터리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시적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있을 수 있어도 우리나라 전기차용 배터리산업의 장기적 성장성은 현재로서는 크게 의심할 여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증시에서 배터리산업 관련 기업에 투자금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배터리 분야처럼 일시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할 만한 산업이 우리나라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 

이 질문에 우선 반도체산업을 꼽는 의견이 많다. 인공지능 개화에 따라 HBM(고대역폭 메모리)를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반도체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분석 역시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 분야가 물론 성장성이 높긴 하지만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판도 자체를 완전한 우상향 추세로 바꿔 버리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메모리 분야 외에 시스템반도체에서 새로운 성과가 나와야 업황 변동에 크게 좌우되는 현재와는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전장(자동차 전자장비)산업이 유망하다는 시각도 많이 나온다. 

이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차 시장이 커지면서 전장 시장도 함께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한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이 전장을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점을 봐도 그 성장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장은 전기차에서 있어 배터리만큼 핵심적 분야가 아닌 주변 분야다. 더구나 삼성과 LG 이상으로 잘하는 글로벌 기업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선두에서 확 끌고 갈 만한 정도의 위상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주력 산업 가운데 어떤 분야가 배터리처럼 장기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외로 조선산업을 꼽는 분석이 시장에서 만만치 않게 나온다. 

배터리 분야처럼 산업의 판도 자체가 아예 변화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가 충분한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 꼽힌다.

이는 언뜻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견해로도 보인다. 조선산업은 반도체 이상으로 업황 변동이 심하다. 심지어 첨단이 아닌 노동집약적 사양산업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세계 조선산업 수주 점유율만 봐도 중국이 60% 가까이를 차지한다. 한국 조선업은 30% 안팎에 머문다. 

물론 한국 조선업체들은 LNG운반선 같은 고부가 선박을 중심으로 대략 3년치 일감을 쌓아두고 있다. 설사 조선업황이 다시 나빠진다고 해도 당분간 먹고 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점만으로 조선업이 제2의 배터리 같은 위상이 될 수 있다고 보기엔 다소 부족하다. 조선업을 향한 긍정적 전망의 핵심은 친환경 선박의 성장 가능성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따라 모든 해운사는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을 70% 줄여야 한다. 

더구나 신규 건조 선박에만 적용되던 탄소 배출규제는 현존 선박 모두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시황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31년까지 친환경 선박들이 매년 150조 원 넘는 규모로 신규 발주되는 등 관련 시장이 총 1500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조선업은 비록 외형에서 중국에 밀리지만 당장 탄소배출이 적은 LNG선부터 뛰어난 기술 경쟁력을 자랑한다. 한국이 LNG선 수주를 늘려 도크 예약를 다 채우자 ​중국이 그 뒤를 따라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기술 격차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데스크리포트 11월] '배터리'처럼 고성장 가능성 높은 의외의 산업 분야는

▲ 현대미포조선의 4만 5천입방미터(㎥)급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조감도. < HD한국조선해양 >


더구나 과도기적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메탄올 추진선도 HD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한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정한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암모니아 추진선 역시 HD한국조선해양을 필두로 한국 조선업체들이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이에 멈추지 않고 수소 분야 기술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며 친환경 선박 주도권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전체 외형은 밀릴 수 있어도 판 자체가 바뀌는 미래 친환경선박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런 점은 장기 투자자들에겐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주식 투자에서 실적과 주가의 변동 주기를 가늠해 무릎과 어깨를 찾아 사고파는 일은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 있더라도 앞으로 몇 년간 성장할 가능성이 큰 업종을 찾아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편이 수익을 낼 가능성은 높이면서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물론 현재 조선업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점이나 원자재 가격 변동 등 위험 요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 성장성이 밝으면서 한국 기업이 기술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배터리산업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 주요 조선업체들은 그동안의 오랜 부진에서 벗어나 올해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K조선은 좁고 꼬불꼬불한 해협을 이제 막 지나 친환경 선박이 누비는 대양으로 점차 들어서고 있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