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문화프리즘] 중국 진출 기업, 만주족 청나라의 상인감각이 필요하다

▲ 등장인물들이 변발을 하고 있는 중국드라마 보보경심 포스터. <왓챠>

[비즈니스포스트]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우리에게는 여진족이라는 명칭이 더 쉽다. 우리에게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을 주었던 나라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이어 중원을 지배한다. 중국 역사에서 몽고족에 이어 중원을 완전히 장악한 두 번째 이민족이었다.

청나라가 명나라에 이어 중원대륙을 장악하고 통치를 위해 명나라 땅으로 들어간 만주족 인구는 약 50만 명이었다. 명나라 말기 대륙 인구가 약 1억 명이었으니까 채 1%도 되지 않는다. 이 1% 소수가 밖에서 온 외래 민족이 어떻게 한족이 다수인 대륙을 통치할 수 있을까? 더구나 문명 수준도 낮은 오랑캐 나라가. 

청나라는 대륙을 통치하는 데 실패할 것이고 청나라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만하다. 특히 당시 조선 선비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호운불백년(胡運不百年)이라고 여겼다. 오랑캐 운세는 기껏해야 백 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여겼다. 유교도 모르고 대의명분도 모르는 오랑캐 나라는 오래 갈 수 없다고 여겼고 몽골족의 원나라가 백 년을 넘기지 못한 것도 이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청나라는 조선 선비들의 예상이나 기대를 배반했다. 중국 역사에서 단일 왕조로서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통치했고,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왕조가 청나라였다.

인구 규모에서 채 1%도 되지 않는 소수 이민족 만주족은 어떻게 한족을 그렇게 오랜 시간 통치할 수 있었을까? 그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만주족의 성공 비결은 역사 해석 차원에서도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관심거리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어떻게 중국의 높은 장벽을 넘고 중국인의 마음을 얻고 정복할 것인지, 하나의 암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무역으로 성장하였다. 무역으로 길러진 그들에게는 상인 기질, 비즈니스 감각이 있었다. 한족들은 당연히 자신보다 낙후된 이민족인 만주족 청나라에 강하게 저항했다. 

목표는 만주족과 한족 사이 경계를 없애고 하나 되기였다. 이를 위해서 청나라는 두 가지 전략을 쓴다. 첫째는 한눈에 만주족인지 한족인지를 알 수 있는 구분을 없애서 외모에서 하나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청나라가 만주족 정체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한족 머리를 만주족 머리 스타일인 변발로 만드는 거였다.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머리카락을 원하면 머리가 포기해야 했고, 머리를 원하면 머리카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한족은 살기 위해서 변발을 했다.

이제 겉만 봐서는 누가 지배자 만주족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외모에서 한족을 만주족으로 만들어서 한족을 통치하는 데 중요한 난관 하나가 사라졌다.

외모에서 하나 되기와 더불어 시도된 두 번째 하나 되기 방법은 제도와 문화에서 하나 되기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변발을 한족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무역에서 단련된 만주족 특유의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정신을 발휘해 만주족이 한족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였다. 

대개 새로 들어선 왕조는 앞선 나라의 제도를 부정하고 폐기한다. 그런데 청나라는 달랐다. 명나라 제도와 화폐를 그대로 쓰고 만주족 통치자들은 한자를 배우고 주자학을 배웠다. 한족의 제도와 문화에 동화되기를 통해서 하나가 된 것이다. 

결국 겉모습에서 한족들은 만주족이 되었지만 속은 만주족이 한족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한족과 만주족 오랑캐는 하나가 되었다. 화이일가(華夷一家)가 된 것이다. 만주족 지배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한족들도 차츰 지배를 만주족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만주족 청나라가 몽골족 원나라에 비교하여 더 오랜 기간 한족을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선비의 감각이란 정체성의 감각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선비의 감각으로 청나라를 보았다. 하지만 청나라 만주족은 상인의 감각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들은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다시 리모델링하고 자신을 현지화했고 자신을 밖에서 온 침략자가 아니라 우리이자 하나라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상인 감각을 지녔다. 이런 상인 감각으로 청나라는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을 지배하였다. 

중국의 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중대립이 지속하는 가운데 이전 정권보다 훨씬 더 ‘중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시진핑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세계 공장으로서 중국이 우리에게 혜택을 주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세계 시장으로서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여전히 통상국가 한국에게 넘어야 할 숙제다. 
 
[한중 문화프리즘] 중국 진출 기업, 만주족 청나라의 상인감각이 필요하다

▲ 2021년 11월21일 중국 최대의 할인 행사인 쌍십일(11월11일)을 맞아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동닷컴 본사에 설치된 대형 현황판에 실시간 매출액이 표시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중국의 담이 높아지고 더구나 ‘중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시진핑 체재에 지속하면서 우리가 중국 시장에 들어가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궈차오(國潮)라고 하는 애국 소비도 늘고 특히 중국 공산품이 품질도 좋아지고 가격도 싸면서 가성비 면에서 한국 제품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조금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소수였던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다수 한족을 통치했던 역사적 경험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다수를 이루는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서 구사한 한족 중국과 하나 되기 전략을, 현지화, 토착화 전략을 쓴 역사적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만주족의 한화 전략은 한족을 정복하고 통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소비재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정복하려는 지금 우리 기업에게도 이런 한화 전략이, 현지화 전략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한국 상품은 한국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잘 팔렸고 심지어 한국적일수록 잘 팔린 경우가 많았다. 한류의 시대 한국 상품은 한국적 기준에 따른 표준화만으로 중국에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중국인들이 중국적인 것에 관심이 높아진 지금은 중국에 맞는 현지화가 특히 문화적 현지화 중요하다. 

한류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중국화의 시대에 맞추어 변신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중국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을 겨냥한다면 중국인의 심리와 문화적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문화적 현지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넘어 중국인의 소비 경향으로 확대하는 지금 중국에서 중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우리 기업이 고려해야 할 것은 애플처럼 되거나 아니면 KFC처럼 되는 것이다. 

애플처럼 고급화, 표준화 전략으로 중국제품이 따라올 수 없는 속칭 ‘넘사벽 제품’이 되거나 아니면 중국인 입맛에 맞게 문화적 현지화를 하여 죽도 팔고, 밀가루 튀김 꽈배기도 파는 KFC가 되는 길이다. 

삼성폰은 아이폰이 되지 못해서 실패했다. 한국 것을 그대로 들고 간 한국 영화와 드라마도 한한령과 반한 감정 때문에 실패했다. 한국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실패했다. 

하지만 중국 관객의 구미에 맞추어 현지화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女神在看)'나 연극 '극적인 하룻밤(戱劇性的一夜)'은 코로나 유행과 반한국 정서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연 시장을 장악하였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한국에서는 정을 내세웠지만, 중국에서는 유교 최고 가치인 인(仁)을 내세우고 중국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 콘셉트를 채택하여 성공했다.

중국 공산당이 외국에 높은 벽을 쌓으면서 중국적인 제도와 가치, 문화를 강조하고, 중국인 역시 소비에서 중국제품이면서 가성비도 좋은 중국산을 선호하는 시대에 이런 중국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중국 시장 진출 전략도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우리 옆에 있는 세계 최대 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통상국가인 한국은 더욱 그럴 수 없다.

만주족 청나라의 상인감각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사범대학교 대학원 고급 진수과정을 수료했고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중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jtbc '차이나는 클래스', EBS '내일을 여는 인문학'에 출연하는 등 대중과 소통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욱연의 중국 수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지성'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들풀', '광인일기',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아큐정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