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반려 식물과 함께 삽니다, 강요하진 않아요

▲ 캐나다에는 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캐나다홍작가>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에서 살 때 비혼, 조기은퇴자, 프리랜서라고 하면 반려동물을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아지가 손이 많이 가서 부담스러우면 손 덜 타는 고양이는 어떠냐는 식의 레파토리다.

독거 가구가 행여나 심심할까 봐 좋은 의도로 권하는 말이었을 테니 그냥 괜찮다, 바쁘다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다 보면 개인마다 인생 우선순위나 생활방식, 추구점 등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이해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상대가 굳이 서로 깊게 이해해 보자고 꺼낸 말도 아니었을 것이므로 흘려듣고 흘려 답하는 정도가 사교생활에는 편하다.

규칙적인 책임과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고 그 불편함보다 얻는 보람과 행복이 더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반려동물이 좋은 식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있으면 보람과 행복이 크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개나 고양이급 반려동물은 맞지 않는다.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반려 식구가 있으면 내 기분이 안 좋다고 며칠 모른 체 하고 내 안녕에만 몰두할 수 없다. 내 건강이 안 좋다고 반려 식구를 굶기고 배설물 처리를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규칙적인 관리, 계속되는 애정을 줄 수 있어야 생명을 기를 기본 조건을 갖춘 것이다.

어른 간의 사랑이야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되지만, 아이나 반려동물처럼 한쪽이 다른 쪽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라면 끝까지 책임질 각오가 더 커야 한다.

이 크기를 제대로 알고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이 크기를 제대로 알고 피하려는 이들의 의사도 존중받아야 한다.

준비도 없이 덜컥 시작했다가 감당 못 하고 파양하거나 심지어 유기하는 것보다는 기르지 않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해마다 유기되는 동물 수가 11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자연사나 안락사로 보호소에서 죽는 비율이 40% 이상이다.

그럼 기르기의 즐거움은 다 포기하고 살 것인가? 내 손으로 정성 들여 무얼 키우는 재미와 보람을 다 놓치는 것이 아깝다면 대안은 있다. 적은 수고, 비정규적 노력으로도 가능한 반려 존재를 찾아보면 된다.

서울에서 워커홀릭으로 바쁘게 살던 이삼십대 때는 어항에 물고기들을 길렀다. 산소기, 여과기, 순환기, 먹이 자동급여기 등을 다 갖춘 큰 어항에 건강한 종인 시클리드들만 키웠기에 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청소해주고 매일 들여다볼 때마다 별일 없는지 관찰해서 약 타주는 정도가 관리의 전부다. 나머지는 아름다운 색깔의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즐기는 일뿐이었기에 십 수 년 간 취미로 이어갈 수 있었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반려 식물과 함께 삽니다, 강요하진 않아요

▲ 요즘은 먹을 수 있는 식물들 위주로 수경재배하는 즐거움이 크다. <캐나다홍 작가>

마흔에 조기은퇴를 하고 캐나다로 온 지 오 년 차, 지금은 여러 식물들을 기르고 있다. 각종 꽃과 관엽 식물들을 키우다가 요즘은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재배한다.

야외 발코니에서 여름에는 방울토마토나 딸기, 애호박 등이 자란다. 실내 수경재배기에는 쌈 채소와 바질, 파슬리, 고수, 민트 등 각종 허브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리 때마다 허브를 툭툭 따서 넣는 재미가 쏠쏠하다. 냉장고에 별다른 식재료가 없는 날은 상추나 케일을 따서 계란 후라이 하나 올리면 비빔밥이 완성된다. 민트는 줄기 채로 씻어서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로 마신다. 따서 말리고 볶고 하는 과정을 생략하니 허브차도 쉽다.

인터넷 덕에 각종 식물들 특성을 쉽게 찾아 노트에 적고 관리하는 데 참고하고 있다. 매일 관찰하고 물주고 영양제 타주고 잎 솎아 주는 등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정도 노력은 물고기 길렀을 때 했던 공부나 수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축에 속한다. 적은 노력으로 큰 만족을 얻는 구조이니 고생은 덜하면서 뭔가를 길러보고 싶은 이들에겐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다.

이런 화분들을 기꺼이 ‘반려 식물’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늘고 있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게 바쁜 한국 직장인의 생활을 고려하자면, 적은 수고로도 기르는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에게 반려라는 높은 타이틀을 주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식물 기르기의 쉽고 편한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여기저기 화분 선물을 즐겨한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반성하고 지양하고 있다. 그것도 내 오지랖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칼럼을 쓰게 된 더 큰 이유이다.

식물 기르기가 아무리 반려동물 기르기보다 편해도 엄연한 생명 기르기로서의 부담이 있는 활동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내 자유나 편안함이 침범되는 걸 허용할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르다. 

기르는 귀찮음을 허용할 의사가 상대에게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내 멋대로 화분을 안긴 것이니 실례일 수 있다. 개나 고양이를 권하는 이들에게 공감하지 않아 놓고 ‘화분 하나 정도야 뭐’라며 내 취향을 들이민 모순적 행동이었다.

소셜미디어를 보니 자식 자랑, 애인/배우자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니 애기 너나 이쁘지’, ‘네 연애 얘기 너나 재밌지’란 말들을 하더라. 이런 글을 보면서 맞장구치고 웃던 기억으로, 식물 키우는 재미를 전파해보고 싶다는 욕심과 오지랖을 꽁꽁 단속하는 중이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