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택배기사 사망사고에 선 긋는 쿠팡, 책임 떠넘기기 대기업 닮아가나

▲ 쿠팡이 하청업체 소속 택배기사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보여준 모습은 꽤 안타까웠다. 쿠팡 배송차량 모습. <쿠팡>

[비즈니스포스트] 기업과 사회적 책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필수라는 뜻이다. 대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향한 요구는 더 거셀 수밖에 없다.

‘이커머스 1위’ 업체인 쿠팡도 이런 요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회사다.

쿠팡은 2010년 7월 조그마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2021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 일명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창업 11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오른 회사는 매우 드물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쿠팡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도 빠르게 커졌다.

쿠팡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쿠팡이 몸집을 크게 불린 뒤 부쩍 강조하는 것은 ‘중소상공인과 상생’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판로가 없는 중소상공인에게 쿠팡의 물류 서비스를 제공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알린다.

하지만 택배기사 처우와 관련한 문제만 보면 쿠팡의 태도는 너무 아쉽다.

최근 경기 군포에 있는 한 빌라에서 쿠팡이 택배 위탁업무를 맡긴 물류회사에 소속된 한 60대 택배기사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 노동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즉각 택배기사 사망사고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쿠팡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당일인 13일 뉴스룸 ‘알려드립니다’ 코너를 통해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배송 업체 A물산 소속의 개인사업자다”며 “현재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쿠팡 근로자가 아님에도 택배노조는 마치 당사 소속 배송기사가 과로사한 것처럼 허위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택배기사의 머리맡에 쿠팡 프레시백 3개가 놓여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손사래를 치며 ‘우리 소속은 아니다’며 애써 거리를 두려는 말은 꽤나 잔인했다.

“대기업은 모두 안 좋은 쪽으로 한결같이 비슷하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쿠팡과 같은 대응은 다른 기업에서도 숱하게 목격한 바 있다. 하청업체 또는 하청업체의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원청기업들이 한 말은 모두 같았다.

“우리 소속이 아니다.”

하청업체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발생한 문제를 왜 원청기업에 뒤집어씌우려고 하냐는 이들의 문제 제기는 항상 반복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이들의 볼멘소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쿠팡은 기존 대기업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불과 11년 만에 대기업집단이 된 ‘젊은 기업’인 만큼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다른 대기업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일을 놓고 ‘그 사람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런 기대가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재벌들이 발언해 숱하게 욕먹었던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쿠팡의 발언은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을 보면 택배서비스사업자는 업무를 위탁한 영업점이 해당 영업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택배서비스종사자에 대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교육을 이행하는 지를 관리해야 한다.

쿠팡이 아무리 하청을 줬다고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의무는 여전히 쿠팡에게 있다는 뜻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숨진 택배기사의 1차 부검 결과 사망사고의 원인을 심근 경색에 따른 심장 비대 때문인 것으로 조사했다. 만약 이 질환의 원인이 과로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쿠팡이 져야 할 책임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도 쿠팡을 나무랄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근 26일 진행될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 쿠팡의 물류 자회사 쿠팡CLS의 홍용준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택배기사 사망사고와 관련한 쿠팡의 책임을 질타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 이번 국정감사 출석을 앞두고 앞으로 기업시민으로서 앞으로 어떤 모습을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봤으면 한다.

‘법적 책임이 없다’는 말만 할게 아니라 쿠팡 서비스의 핵심인 배송 전선에서 앞장서 뛰는 택배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소 자주 홍보하는 ‘중소상공인과 상생’ 소식만큼만 택배기사를 한 번만 더 챙겨봤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택배회사들보다 그나마 처우가 낫다'는 말로 자기위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쿠팡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곳보다 나은 회사'가 아니라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회사'일 것이라고 기자는 믿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