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10월] '흙수저' LG엔솔, '금수저' 중국 CATL 이길 수 있다

▲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미국 등 글로벌 생산거점을 활용해 막강한 자국 시장을 가진 CATL에 맞서 글로벌 배터리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패권을 놓고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CATL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의 집계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1~8월 글로벌(중국 시장 제외)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 28.5%로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CATL(27.7%)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두 회사의 격차는 단 0.8%포인트에 불과하다. 언제 뒤집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이렇게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 경쟁을 펼치는 두 기업이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CATL가 놓인 사업 환경은 사실 완전히 딴판이다. 

세간에 도는 말로 비유하면 배터리 업계에서 CATL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금수저'인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집안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커야 하는 '흙수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CATL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 강자가 될 환경을 타고났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자국 전기차 시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키웠고 이와 관련한 배터리 산업정책도 자국 기업 중심으로 펼쳤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배터리 시장은 CATL을 비롯한 현지 배터리 기업들이 장악했다. CATL은 1~8월 중국을 포함한 세계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는 36.9%로 압도적 1위다. 이는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14.2%)의 2배가 넘는 수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다른 중국 배터리업체 BYD(15.9%)에도 미치지 못하고 3위에 머물렀다. 현재 중국 전기차 시장 규모는 세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중국은 배터리 주요 원재료 광물의 공급망도 막강하다. 중국은 주요 배터리 원재료 광물의 채굴량에선 세계 여러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이를 제련하는 능력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신증권 자료를 보면 중국은 현재 세계 리튬 정제량 가운데 절반가량을, 니켈과 코발트 정제량의 70% 가까이 차지한다. 음극재에 들어가는 흑연은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이와 달리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기업은 원재료 조달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사업 안정성과 기반 환경 측면에서 보면 CATL과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력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처럼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 일이 항상 금수저만 이기는 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흙수저 기업으로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기업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무시 못 할 장점도 가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 배터리 기업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의 품질은 중국 기업이 만드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보다 월등히 좋다. 반면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격이 싼 LFP 배터리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한국 기업 역시 저가형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CATL 역시 삼원계 배터리 못지않은 수준으로 LFP 배터리의 품질을 끌어 올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배터리 품질 문제는 전기차 시장 성장 과정에서 두 회사 사이의 경쟁 구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요소는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생산 거점이 한국뿐 아니라 유럽, 동남아, 미국 등에 고루 분산돼 있다는 점이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주요 전기차 업체의 지역별 배터리 수요에 속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다. 중국과 달리 변변한 자국 시장이 없다 보니 일찌감치 세계로 눈을 돌린 덕분이다. 이는 CATL의 창업주 쩡위친 회장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쩡 회장은 2017년 CATL 직원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태풍이 오면 돼지가 난다고 했지만 우리는 정말 날고 있는 것인가?”라며 “태풍이 지나가면 돼지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이 끊긴 뒤에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쩡 회장은 "우리가 정책이라는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잘 때 경쟁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밖에서 살아남고 있다"라고도 했다.

이런 고민에 따라 CATL 역시 미국에 비해 견제가 덜한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을 크게 높이고 있지만 아직은 현지 생산 역량 면에서 LG에너지솔루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CATL은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지었고 헝가리에서도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공장은 수율(양품 비율)이 안정화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데스크리포트 10월] '흙수저' LG엔솔, '금수저' 중국 CATL 이길 수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직원 대상 타운홀 미팅에서 회사를 세계 최고의 배터리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에 이미 2016년도에 진출해 70GWh라는 만만치 않은 생산능력을 갖춰 두었다. 이제 출발선에 막 들어선 CATL이 이를 따라가는 것은 아무리 금수저 기업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는 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전기차에 관해 반보조금 조사를 추진하는 등 견제 기류마저 최근 강해지고 있어 LG에너지솔루션이 반사이익을 입을 공산이 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에서 입지는 더욱 공고하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견제로 현지 생산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주요 배터리업체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미국 내 생산능력이 300GWh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 배터리 기업이 미국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구나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토요타를 비롯해 폭스바겐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그룹, GM 등 글로벌 탑5 완성차 기업을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 테슬라 역시 LG에너지솔루션의 고객이다.

특히 콧대 높은 세계 1위 자동차업체 토요타까지 자국 배터리 기업 파나소닉을 놔두고 LG에너지솔루션을 선택해 약 30조 원으로 추산되는 배터리 물량을 맡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높게 샀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이런 글로벌 생산능력 확대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잔고는 3분기 말 600조 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연말이면 66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예상 매출액 약 35조 원을 기준으로 20년 치 일감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5월 직원들 대상 타운홀미팅에서 "제 마지막 남은 임무는 LG에너지솔루션을 세계 최고 회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게 결코 과장된 구호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이 원재료 공급망을 활용해 강력한 견제에 나설 수 있고 차기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금수저 배터리기업 CATL의 저력도 물론 무섭다.

하지만 여러 요소를 종합할 때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 배터리업계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수준으로 이미 올라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경제의 현재를 삼성전자가 책임지고 있다면 미래는 LG에너지솔루션이 이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식에게 물려줄 만한 주식을 찾고 있는가. 그 해답을 찾는 일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