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와 경제] 예천 삼강마을과 하풍리, 낙동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 예천 삼강마을에 위치한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돼 있다. <예천군>

[비즈니스포스트] 하회 마을에서 물길 따라 70리쯤 아래로 내려가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란 마을이 있습니다. 세 개의 강물이 만나는 곳이라 삼강이란 이름을 얻은 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냇물이라고 널리 알려진 내성천과 금천, 그리고 낙동강이 여기 삼강리에서 합류합니다.

삼강리에는 삼강주막이란 명소가 있습니다. 삼강주막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전통 주막입니다. 삼강주막 건물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고, 20여 년 전까지 많은 사람이 애용한 쉼터였다고 합니다. 

삼강마을의 주산은 거대한 노적처럼 생겼습니다. 마을의 동남쪽에 우뚝 솟았는데, 그 형상이 매우 단정하고 후덕해 보입니다. 주산이 커다란 노적과 같으니 큰 부를 이룰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또, 삼강마을 터는 하회마을과 같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 연화부수형의 명당입니다. 넓은 꽃잎처럼 생긴 삼강마을을 낙동강이 반원형으로 감돌아 흐릅니다.

마을의 면적은 하회마을의 삼분의 이 정도 됩니다. 터는 하회에 비해 좁으나, 낙동강 강물의 기운은 하회보다 훨씬 큽니다. 내성천과 금천이 바로 앞에서 합류하기 때문입니다.

삼강마을의 청룡은 용당산인데 높고 힘차게 솟아 있으며, 낙동강 하류쪽에서 강물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보호해줍니다.

백호는 낙동강 건너편에 솟아오른 산줄기인데, 백호도 적당한 높이로 튼튼하게 뻗어 있어 강물의 기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잘 막아줍니다. 또, 노적처럼 생긴 봉우리들이 여러 개 솟아 있어 부의 기운을 더해 줍니다.

안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데, 강 건너 달봉산과 백호 끝자락에 솟아오른 봉우리들입니다. 모양이 모두 단정하고 수려합니다.

조산은 내성천과 금천 뒤로 아스라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연봉들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조산이 멀고 조산 쪽에서 흘러온 물이 마을 앞으로 들어오니 마을의 복된 기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오래 유지될 것입니다.

옛날엔 삼강마을이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길이라 할 수 있는데, 경상도와 한양을 오가는 대부분의 화물과 사람들이 삼강마을을 지나갔습니다.

한양으로 가는 화물들은 배에 실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다음, 삼강마을을 지나 육로로 북상하여 문경 새재를 넘은 뒤, 한강에서 다시 배에 실려 한양으로 갔습니다.

한양에서 경상도 대부분의 지역으로 가는 화물들은 반대로 와서 삼강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조선시대 삼강마을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 오가는 사람들과 화물들로 북적였습니다. 크고 작은 나룻배 두 척이 운행됐는데, 큰 배는 화물을, 작은 배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화물들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였으니 삼강마을에선 자연스럽게 교역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해안 지역에서 생산한 소금과 해산물이 내륙의 곡물과 교환되었습니다. 또, 이런 경제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삼강마을 덕분에 큰 부를 일궜습니다. 또, 여러 지역의 많은 이들이 그 교역의 혜택을 입었을 것입니다.

삼강마을은 조선시대 말기까지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로서 큰 역할을 하며 번창했고 많은 부를 창출했습니다. 그러나, 육상교통이 발달하고 다른 지역에 서울로 가는 철도와 간선도로들이 생기면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동안 삼강마을은 찾는 이 별로 없는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습니다.

긴 세월 휴식을 취하며 깊이 잠든 것 같았던 삼강마을이 이제 다시 깨어나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마지막 전통 주막이었던 삼강주막을 찾아 옛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삼강문화단지가 조성됐습니다.

이로 인해 삼강마을의 역사와 사연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삼강마을에 서린 산천의 정기가 만개한 연꽃처럼 활짝 피어나면, 관광명소를 넘어 큰 경제력을 발휘하여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리라 봅니다.
 
[풍수지리와 경제] 예천 삼강마을과 하풍리, 낙동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 예천 삼강문화단지 조감도. <예천군>

삼강마을에서 내성천 금천과 합류하여 몸집이 더 커진 낙동강은 여기서 10여 리쯤 떨어진 곳에서 다시 한 번 크게 굽이쳐 흐릅니다.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안쪽에 예천군 풍양면 하풍리가 있습니다. 낙동강에 안겨 있는 하풍리도 삼강마을 못지 않은 복지입니다.

하풍리 마을의 주산은 이름이 청산인데 정상 부위가 일자형으로 수려하게 생겼으며, 그 오른쪽에 노적처럼 생긴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이 노적형의 봉우리가 마을의 청룡입니다.

또, 정상에서 왼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백호입니다. 주산과 청룡 백호가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청산이 크게 팔을 벌려 마을을 안아주는 것 같습니다.

마을 앞에는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들판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에 안겨 있습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여러 개의 산봉우리와 산줄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데, 공허하게 비어 있는 곳이 없어 강물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잘 모입니다.

사방의 산들이 수려하고 단정하며 낙동강이 다정하게 감싸주니 사람들이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복지입니다. 또 강물의 기운이 커서 많은 재물이 들어올 곳입니다. 하회마을 삼강마을 못지 않은 경제력을 발휘할 기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풍리의 산천에 서린 정기는 활짝 피어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젠가 그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인근의 삼강마을이 다시 깨어나는 걸 보면, 그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풍리를 지난 낙동강은 곧바로 영강과 합류합니다. 영강은 월악산에서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수많은 계곡물을 모아 흐르는 강입니다. 영강과 합류한 낙동강의 몸집은 한층 더 커지고 기운도 그만큼 장해집니다.

낙동강과 영강의 합류점 인근에는 꽤 넓은 유역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평야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면서 낙동강은 크게 굽이치지 않고 완만하게 휘어져 흐릅니다. 그러다가 양 옆에 산줄기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휘돌아 흐릅니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안쪽에 특별한 복지가 있습니다. 그곳은 상주시 중동면 오상리와 죽암리 일대입니다.

두 부락이 모두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에 감싸여 매우 큰 강물의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하회마을보다 훨씬 넓어 면적이 하회마을의 두 배 반쯤 됩니다. 강의 기운 또한 하회마을보다 훨씬 장합니다.

그리고, 이곳도 하회마을 삼강마을처럼 연화부수형의 명당입니다. 이곳의 주산은 여러 개의 산봉우리로 이뤄져 있는데, 연꽃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형상입니다. 강가에 피어난 연꽃이니 아주 큰 부를 불러올 기운이 충만합니다.

청룡과 백호는 낙동강 건너편에 솟아오른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인데 그리 높지는 않으나 이곳을 잘 보호해줍니다. 모양도 부드럽고 온화하여 맑은 기운이 감돕니다. 주산도 야트막하고 온화한 형상이니 주산과 잘 어울립니다.

강 건너 안산은 생동감이 넘치며 수려합니다. 또. 안산 양 옆에는 크고 작은 노적처럼 생긴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습니다. 이 노적들도 많은 재화를 불러오는 기운을 보태줍니다.

이곳에 서려 있는 복덕의 기운은 아주 큽니다. 이 기운이 모두 발휘되면, 하회마을처럼 그 혜택이 아주 멀리까지 두루 미치게 됩니다. 터전도 하회보다 넓고, 강의 기운도 더 장하니 그 혜택 또한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곳은 매우 큰 기운을 품고 있지만, 하풍리처럼 아직 그 잠재력을 한번도 크게 발휘한 적이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 터는 이곳의 큰 정기를 온전히 꽃피우기에는 좀 미흡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마을 터는 낙동강과 주변 산들의 정기를 모두 거두어 꽃피울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넓은 들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여기 사는 이들은 궁벽한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유족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또 워낙 좋은 정기가 크게 감도는 곳이라 마을의 분위기 또한 매우 화목했을 것입니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이곳의 복된 기운도 활짝 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연꽃 형상의 주산처럼 마음이 선하고 어진 사람들이 이곳 산천의 정기를 온전히 받아 아주 큰 복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 때는 하회마을의 류성룡 선생이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많은 백성을 구했 듯이, 여기 사는 이들 뿐 아니라, 방방곡곡의 많은 이들, 특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그 복을 함께 누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