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리즘] 중국시장에 부는 두 기류의 훈풍, K-뷰티 재도약할 기회다

▲ 국내 브랜드들은 코로나 이후 빗장을 풀은 중국의 리오프닝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중국의 경기침체 소식은 중국 시장 진출을 오랫동안 준비했던 한국의 소비재 브랜드들을 다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시장에서 전해지는 두 가지 소식은 적어도 뷰티 분야만큼은 중국 시장에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 화장품 업계를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사진은 중국 하이난 면세점의 화장품 코너.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뷰티산업에게 중국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일까?

국내 브랜드들은 코로나 이후 빗장을 푼 중국의 리오프닝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중국의 경기침체 소식은 중국 시장 진출을 오랫동안 준비했던 한국의 소비재 브랜드들을 다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시장에서 전해지는 두 가지 소식은 적어도 뷰티 분야만큼은 중국 시장에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 화장품 업계를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먼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해 일본 화장품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초강경 대응 기조는 그대로 여론에 투영되어 ‘노 재팬(NO JAPAN)’ 기류가 전방위로 확산됐다. 화장품 시장도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SK-II, 카오, 슈에무라 등 일본산 화장품 브랜드를 정리한 리스트가 돌며 일본 화장품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일종의 불매운동이다.

심지어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는 중국 로컬 브랜드들까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본 화장품은 2016년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며 2019년부터 3년 동안 중국의 해외 화장품 수입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에서 강세를 보였다.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지금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집합소인 프랑스와 중국의 해외 화장품 수입량 순위를 다툰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일본화장품 수입액은 41억6천만 달러(약 5조6617억 원)다. 하지만 ‘신뢰의 위기’에 빠진 일본 화장품의 수입은 지난 4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4개월 만에 40% 가까이 하락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중국에선 현재의 일본 화장품이 처한 어려움을 ‘사드(THAAD)사태’ 때의 한국 화장품과 비교한다. 

2017년 한국의 사드사태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제품 불매운동이 촉발됐다. 사드 장비가 현장에 투입된 2018년 불매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후 사드사태가 정체됐지만 한국 화장품 수입량은 점차 둔화됐고 2021년 사드사태 재개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일본 화장품이 중국에서 급성장한 시기가 한국 브랜드들이 중국의 ‘애국주의’에 휘말려 고전하는 시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지금은 정반대로 일본 브랜드들이 중국의 ‘애국주의’에 휘말렸다. 일본 브랜드들은 “자사 제품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돼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았다”, “중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은 방사능 테스트를 거쳐 중국세관을 통과했다”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인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언론들은 “일본 화장품들이 한국 화장품의 전철을 밟는 것 같다”면서 “핵 폐수 방류라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은 일본 화장품 역시 오랜 기간 안개에 가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에선 일본 화장품의 공백을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이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지금은 당장 일본 브랜드들과 격차가 있지만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한참 성장하고 있는 로컬브랜드들의 성장 속도를 높이자는 시각이 대다수다.

중국 언론이나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필자의 눈에는 일본 화장품의 불행은 우리에게 굴러온 행운이다. 사드 때 일본 화장품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중국 브랜드보다는 제품 품질 면에서 앞서 있는 우리가 럭셔리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비즈 프리즘] 중국시장에 부는 두 기류의 훈풍, K-뷰티 재도약할 기회다

▲ 중국 인플루언서 리자치가 사과방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의 중국발 훈풍은 ‘립스틱 오빠’로 불리는 리자치(李佳琦)의 설화사건이다. 리자치는 2021년 한 해에 18억5530만 위안(약 3400억 원)의 순수입을 올린 중국 제1의 왕훙(온라인 인플루언서)이다.

2015년 화장품 브랜드 매장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자신의 입으로 립스틱 색상을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여러 차례 판매왕에 오른 뒤 라이브커머스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혀 최고 인플루언서가 된 인물로 판매하는 제품마다 완판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뷰티업계의 큰손이다. 

그는 최근 쇼핑플랫폼인 타오바오에서 진행한 라이브커머스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국산 브랜드 화씨즈(花西子) 브랜드의 아이브로우 펜슬 3개를 79위안(약 1만4천 원)에 판매하는 생방송을 진행했다. 

일부 시청자들이 화씨즈의 펜슬가격에 대해 “계속 오르고 있다.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계속 이 가격에 판매했는데 뭐가 비싸냐. 눈뜨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가끔은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한다”면서 “수년 동안 월급이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열심히 일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질타했다.

리자치의 발언은 곧바로 역풍에 휩싸였다. 21%를 넘는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로 실의에 빠져 있는 청년층의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보통사람보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직장인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평범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주력 고객인 젊은 여성층의 반발이 거셌다. 3일 만에 100만 명이 넘는 웨이보의 팔로워들이 그를 ‘언팔’했다. 그는 곧 웨이보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태는 단순 유명인의 말실수나 ‘화씨즈’ 브랜드에 대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청년 실업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화시쯔(花西子)'를 근로자의 급여를 측정하는 화폐단위로 삼아 ‘1화씨즈는 79위안’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화장품업계에 미친 후폭풍이다. 리자치의 설화는 중국 로컬브랜드들의 제품가격 논란, 왕훙을 통한 라이브커머스와 관련한 비판 등 중국 화장품 업계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애국소비에 편승해 승승장구하던 로컬 브랜드들을 바라보는 소비자들 시선이 차가워진 것이다.

실제 중국 언론들은 리자치의 설화 직후 화장품의 그램(g) 당 단가를 따져보며 중국 화장품의 가격논쟁을 야기했다. 

문제가 된 화씨즈의 아이브로우의 1g당 가격이 금값에 필적한다고 비판했고 나아가 다른 중국 화장품들의 가격 역시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립스틱이나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등 많은 종류의 중국 색조 화장품의 g당 가격이 글로벌 브랜드 제품보다 오히려 비싸다는 것이다.

중국 브랜드들은 제품의 정가는 비싸지 않게 유지하면서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해 왔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과대 포장으로 눈속임을 하는 국산브랜드들에게 ‘사기당했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국산(중국) 색조화장품이라면 누구나 ‘싸고 큰 그릇’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친서민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시각이다. 중국 화장품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던 ‘가성비’ 신화의 실체가 그대로 발가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왕훙에게 의존하는 라이브커머스 모델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왕훙이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제품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고비용 마케팅구조가 R&D로 가야할 자금을 왕훙들의 배만 불려 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왕훙 중심의 라이브커머스 모델 자체에 대한 비판은 좀 이른 감이 있다. 라이브커머스 채널은 큰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그간 판매채널은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전통적인 유통시스템에서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이동했고 다시 라이브커머스 기반의 판매채널로 이동 중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리자치의 실언 하나로 거스르기는 어렵다. 가령 왕훙의 수수료만 해도 그렇다. 오프라인 유통시스템에서는 제조업체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대리점, 딜러, 소매업체 등 다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게 되고 각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 수수료도 만만찮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 채널에서는 왕훙의 판매채널만이 존재한다. 유명 왕훙은 이 과정에서 트래픽을 동원하고 광고가치를 실현한다. 결정적으로 단시간에 수많은 고객들을 동원해 브랜드가 기대하는 만큼의 큰 매출을 올려 줄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볼 때 유명 왕훙을 대체할 채널이나 모델을 찾기 쉽지 않다. 수익이 왕훙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을 찾지 않을까 싶다.

또한 라이브커머스의 핵심은 공동구매인데, 팔로워가 많은 유명 왕훙들은 많은 판매량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공급가를 낮출 수 있다. 

유명 왕훙들은 판매할 브랜드들을 엄격히 선별하고 브랜드와 협상을 통해 공급가격을 파격적인 ‘이벤트’가격으로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브랜드와 제품의 수준과 실제 판매량은 시장에서 자신의 평판과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자치 설화로 인해 왕훙 중심의 라이브커머스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시각은 옳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우리 K뷰티 브랜드들은 중국의 로컬브랜드들이 유력한 판매채널로 활용하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국 언론에서도 라이브커머스 자체를 향한 비판보다는 오히려 ‘그램당’ 단가 논란으로까지 비화한 중국 화장품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전체 중국의 로컬화장품 업계 전체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소비자들에게 ‘어차피 국산 제품이 이렇게 비싼데 차라리 외국 브랜드를 사는 게 낫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두 가지 사건의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곧 수그러들 수도 있고 상당히 오랜 기간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례 모두 K-뷰티가 중국시장에 재도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임은 분명하다. 

하이앤드 시장(일본제품)과 중저가 시장(중국 로컬 브랜드)에서 경쟁 제품들이 모두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긍정적이다. 

중국 시장의 변화를 냉철한 눈으로 보자. 그리고 시장이 던져 주는 시사점을 찾아 공략하자. 중국 시장에 목마른 한국 뷰티 브랜드들이라면 조그마한 기회라도 크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 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