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무빙’ ‘천박사의 퇴마연구소’, 초능력자와 퇴마사 필요한 시대

▲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와 부모의 희생을 마음 아파하는 자식이라는 가족 관계는 한동안 구닥다리 느낌을 주어 이야기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유행하면서 신파적 가족 관계는 한국 드라마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즈니스포스트] 요즘 드라마와 영화에 초능력자와 퇴마사가 넘쳐난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이 최근 화제 속에서 종영되었다. 초능력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모들과 초능력을 물려받은 자식들의 이야기라는 특이한 소재였다. 

가족 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 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브래드 버드, 2004), ‘인크레더블 2’(브래드 버드, 2018)를 연상시킨다. 인크레더블 시리즈는 세계적인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상과 미국비평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명작 애니메이션이다. 실사 히어로물 이상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과 캐릭터들의 개성이 돋보였다. 

‘무빙’은 할리우드의 전매특허 같은 히어로물에 한국적 색을 입혀 놓은 것이 성공 요인이다. 

1화에서 7화까지는 고등학교가 주요 배경으로 청소년 드라마 분위기로 전개된다. 국정원은 은퇴 뒤 숨어사는 초능력자 2세들을 지방 소도시 한 고등학교에 모아 놓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서로 우정을 쌓고 질투를 하며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K콘텐츠에는 유독 학원물이 많다. 좀비도 고등학교에 출몰하고(‘지금 우리 학교는’), 복수극의 출발도 고등학교였다.(‘더 글로리’) 한국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축약해 놓은 듯 보이는 공간이 고등학교여서 그런 것 같다.

신파적 정서 또한 K콘텐츠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돈가스 집을 운영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한효주)와 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들(이정하), 새로운 동네에 치킨 집을 개업한 아버지(류승룡)와 어떤 상처도 회복되는 능력을 가진 딸(고윤정)은 서로를 끔찍이 아낀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와 부모의 희생을 마음 아파하는 자식이라는 가족 관계는 한동안 구닥다리 느낌을 주어 이야기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유행하면서 신파적 가족 관계는 한국 드라마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빙'에는 흥행할 만한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 신파적 정서, 분단 상황, 현대사의 아픈 사건들 등을 가미한 서사는 한국적 정체성을 살려 주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벌이는 액션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히어로들을 집합 시켜 놓은 ‘어벤져스’ 시리즈는 미국 역대 흥행 순위 안에 모두 상위 랭크되어 있다. ‘어벤져스’(조스 웨던, 2012) 1편을 볼 때만 해도 한국적 히어로물이 만들어질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국적 히어로물은 악귀를 퇴치하는 퇴마사들 이야기로 먼저 등장한다.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1(2020~2021)과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2023)는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악귀 사냥꾼들이 낮에는 국수집으로 위장한 아지트에서 장사를 하고 밤이면 악귀를 잡으러 다닌다는 내용이다.
 
[CINE 레시피] ‘무빙’ ‘천박사의 퇴마연구소’, 초능력자와 퇴마사 필요한 시대

▲ 올해는 부쩍 악귀들이 극성이다. 추석 연휴 개봉 예정인 ‘천박사의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김성식 감독)에도 악귀가 등장한다. < CJ ENM >

올해는 부쩍 악귀들이 극성이다. SBS 드라마 ‘악귀’도 있었고, 추석 연휴 개봉 예정인 ‘천박사의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김성식 감독)에도 악귀가 등장한다. 가짜 퇴마 의식을 연출하며 사업을 하던 천박사(강동원)가 할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악귀(허준호)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코믹, 호러, 액션 혼합 영화다. 

2000년대 후반 ‘추격자’(나홍진, 2007), ‘세븐데이즈’(원신연, 2007), ‘악마를 보았다’(김지운, 2010) 등 사적 복수를 실천하는 스릴러 영화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바탕에 깔린 이런 복수극들은 관객에게 후련한 기분을 안겨주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사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제작되다 보니 유행의 사이클이 빨리 막을 내렸지만 이런 류의 서사는 시대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최근 초능력자와 퇴마사들이 대거 출몰한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일반인이 육체적, 정신적 온힘을 다 모아도 처치할 수 없는 악당과 악귀들이 많아졌다는 것일까? 

시즌3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SBS 드라마 ‘모범택시’는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사적 복수 대행업체가 등장한다. 사이코 연쇄 살인마(하정우)를 잡기 위해 전직 형사(김윤석)가 미친 듯이 달리고 육탄전을 벌였던 ‘추격자’의 시대에서 진화되었다. 달리 보면 이제 혼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악을 제거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