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존 위해 만든 농약, 더 나은 생존 위해 다시 생각할 때

▲ 필자가 이장으로 일하던 당시 마을회관 준공식. <홀로세생태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시골로 이사온 지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던 2000년. 동네 어른들로부터 이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동네 사정도 잘 모르고 농사 경험 전혀 없이 어떻게 이장을 할 수 있느냐며 계속 고사를 하였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시는 어른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곁에서 같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얻고 어려운 이장 일을 시작했다.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첫 삽을 뜨고 한창 바쁜 시기였지만 이미 이장을 맡았으니 곤충 연구는 뒤로 하고 3년간은 이장 일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등 떠밀려 시작한 농사였지만 ‘농부’라는 단어가 참 좋았다. 농자는 천하의 근본이 되고 해와 달과 별(辰)을 헤는 마음(曲), 즉 우주의 이치를 읽는 일이 농사의 어원이니 생물들 간의 관계를 꼼꼼히 살피는 곤충 연구와 다를 바 없었다. 고달픈 노동과 수확과 결과를 기다리는 끈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농사는 처음이었고 요즘처럼 인터넷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품을 팔며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농사 정보를 얻기 위해 고추, 감자, 고구마와 쌀농사까지 16가지 작물을 심었다. 정확하게 일 년의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는 농사용 24절기를 익히고, 동네 어른들께 여쭤보며 어떤 품종을 언제, 어떻게 심고 언제쯤 수확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2년간 지었던 농사는 정말 힘들었다.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겠다고 무농약을 고집하며 끝없는 노동력을 쏟아붓고 죽을 고생을 했지만 대가는 형편없었다. 수확량도 적었고 농산물의 질도 훌륭하지 않았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존 위해 만든 농약, 더 나은 생존 위해 다시 생각할 때

▲ 벼를 수확하는 필자. <홀로세생태연구소>

일상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는 동네 분들에게 몸에도 좋지 않은 농약을 왜 그렇게 마구잡이로 쓰는지 물었지만 정작 농사를 지어보니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는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없었고 먹고 사는 최소한의 경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농약 없는 농업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당장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농약의 사용을 줄이거나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병해충의 밀도를 조절하고 환경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농약의 관리수단은 없는지? 농약이 생태학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떠한 농약에도 끄덕없이 버티며 오히려 내성을 키우는 그 독한 해충들을 잡겠다고 더 강한 약, 그보다 더 강한 약을 뿌려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들판에 어떤 생명이 살 수 있을까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농약은 농작물을 보호하는 약제의 의미로써 토양 소독, 종자 소독, 발아에서 결실에 이르기까지 병해충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농작물을 해하는 병해충, 선충, 잡초 등을 방제하고 식물의 생장을 조절해서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로 보통 살충제(pesticide)라 해서 해충 퇴치에 쓰인다.

농약의 역사는 아일랜드의 감자 흉작으로 겪은 기근부터 출발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존 위해 만든 농약, 더 나은 생존 위해 다시 생각할 때

▲ ‘감자잎마름병’에 감염된 감자잎. <강원도농업기술원>

1840년대부터 시작된 ‘감자잎마름병’은 감자의 줄기와 잎이 모두 썩으면서 말라 죽게 만드는 ‘감자 역병’이다. 아일랜드는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 역병으로 대기근이 닥쳐 아일랜드 주민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감자 잎마름병’을 필두로 식물 병원체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주는 강력한 살충제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DDT는 합성살충제로 강력한 살충 효과가 있는 기적의 약품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948년 파울 밀러(1899~1965)는 DDT의 살충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뮐러는 이상적인 살충제에 필요한 ‘포유류나 식물에 대한 저독성 또는 무독성’을 강조했다.

필자도 어렸을 적 증명되지 않은 무독성을 믿고 옷 속과 머리에 온통 DDT 가루를 뒤집어 쓴 강렬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DDT로 인한 부작용과 내성이 점점 늘어났다. 포유류에 대한 저독성 또는 무독성을 강조했지만 민간에서 DDT 사용 후 2년 만에 사망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합성살충제인 DDT가 결국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죽이는 살생제가 되었다. 기근과 생존을 위해 마구 사용했던 농약이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발생했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살충 효과를 보였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부작용은 은밀하고 간접적이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났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존 위해 만든 농약, 더 나은 생존 위해 다시 생각할 때

▲ DDT 미국 광고.

2017년 8월 살충제 달걀 파동 와중에 DDT가 친환경 산란계 사육 농장에서 달걀, 닭, 토양 등에서 검출되면서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40년 가까이 사용이 중단됐던 DDT가 독성이 사라지지 않고 땅에 그대로 남아 달걀 껍질을 얇게 하고 닭의 부리를 휘게하는 기형도 만들다니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살충제와 살균제 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한 것이다.

극단적인 산업형 농업을 추구하면서 농업용 화학물질이 점점 더 넘쳐난다. 담배잎에 다량 함유돼있는 니코틴계 신경 자극성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는 DDT보다 벌에게 약 7000배나 더 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2018년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들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이 자유롭게 유통·판매되고 있다.

한국작물보호협회 ‘농약 연보’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의 판매는 1426억 원 규모로 전체 살충제 판매량의 22.7%를 차지했다.

유독성 때문에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들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했는데 한국은 어떤 근거로 꿀벌에 미치는 위해성이 낮다고 계속 사용을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모니터링 결과 국내 4대강과 전국의 강과 지하수에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 성분들이 높은 빈도와 농도로 검출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이렇게 높은 빈도와 농도로 농약이 잔류하고 있다면 국내 자연 생태계가 농약으로 광범위하게 오염돼 수생 생물뿐만 아니라 육상 생물 등이 먹이사슬을 따라 농약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 성분들의 환경 잔류는 생태계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재해로 인식해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생존 위해 만든 농약, 더 나은 생존 위해 다시 생각할 때

▲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

기근을 극복하려다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자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농약! 놀라운 제품이었으나 뜻밖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는 해악을 끼치게 됐다.

경지 면적에 비해 농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영세한 경영 규모 때문에 구조적 한계가 있고 고령화, 인건비에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병해충으로 점점 농사짓기 힘들어져 더 많은 방제 작업을 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농약은 없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농약의 잔류성분이 땅에 남지 않는다'라는 농약 병에 부착된 설명은 믿을 수 없다. 병충해에 강한 농산물도 물론 없다. 

곤충이나 곰팡이의 생리나 생태를 파악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농약을 무분별하고 무차별하게 과다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으로는 식량 생산성을 개선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반드시 줄여야만 할 농약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