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미국의 중국 규제 확대 곤혹, 박정호 돌파구는 첨단 메모리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미중 반도체 갈등심화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비중을 더욱 늘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한국 반도체업체들에게 중국에서 생산하는 레거시(구형)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을 축소하라는 요청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외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모두 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메모리 사업만 펼치고 있어서 중국 사업과 관련한 미국의 압박에 어려움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중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에서 첨단 메모리 생산 비중을 높여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패건 와사니 테크놀로지스(Fagen wasanni Technologies)를 비롯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국에서 레거시 메모리 생산을 제한하라고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언론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위에 있다”며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하는 것을 규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의 40%를, 중국 다롄에서 낸드플래시의 20%가량을 제조하고 있는데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에 이어 이번에 레거시 메모리 생산량까지 제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신용평가업체들은 미국의 압박이 지속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중국 의존을 줄이는 시나리오를 모색해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대응 시계가 빨라질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중국 외의 지역에서 생산기반을 조정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재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호 부회장은 그동안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에 따라 국내에서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 비중을 늘려갔는데 이런 전략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고부가 메모리 확대 사례로는 세계 최초 321단 4D낸드플래시 시제품 공개가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23’에서 세계 최초로 321단 4D낸드 플래시 시제품을 선보이며 첨단 제품에 힘을 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에도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층인 238단 4D 낸드플래시를 공개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고성능 D램 분야에서 올해 4월 12단 적층 고대역폭 메모리 4세대 제품인 HBM3를 가장 처음 개발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질 정도로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을 고도화함으로써 고객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고부가 제품의 전체 생산 비중을 늘려 기업체질을 개선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 부회장은 올해 2월 서울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지고 관련 기술이 진화하면서 글로벌 데이터 처리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며 “SK하이닉스는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대 큰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의 이와 같은 구상은 기존의 국내 생산기반에 더해 새롭게 조성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미국의 중국 규제 확대 곤혹, 박정호 돌파구는 첨단 메모리

▲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 <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는 첨단 메모리 반도체에 첨단 노광공정을 적용하기 위해 이미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기를 들여온 바 있는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추가 배치를 염두에 둔 대규모 공장을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국내 기업들로서는 유관기관과 협력해 협상력을 끌어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계획을 이미 알린 바 있고 반도체 공장(팹)을 짓는데는 수조원의 비용이 드는 만큼 국내에서 고부가 첨단 반도체 비중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공급망 디커플링 갈등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