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신약개발 시간·자본·기술 삼위일체, 이동훈 '50조 기술' 육성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사업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신약개발은 시간과 자본과 기술의 함수다.”

18일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이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발표한 SK바이오팜의 장기적 성장전략은 이 3개 축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중점에 뒀다.

이 사장은 먼저 자본 측면에서 SK바이오팜이 국내 대부분의 제약바이오기업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봤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제품이름 엑스코프리)’의 매출이 증가하면서 조만간 막대한 현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벌어들인 현금을 바탕으로 SK바이오팜은 신약개발 기술 확보에 들어간다. 장기적으로 유망해질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선정한 만큼 기술을 고도화할 시간도 확보했다.

◆ 세노바메이트 플러스 알파로 ‘현금 폭포수’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 성인 대상 부분발작 치료제로 허가받은 약물이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미국 판매를 기반으로 올해 연말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뒤 내년에는 연간 흑자 전환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던 영업망이 회복된 가운데 높은 뇌전증 치료효과를 바탕으로 세노바메이트 처방건수가 늘고 있어서다. 

SK바이오팜은 흑자 전환 이후 세노바메이트로 벌어들이는 매출 대부분을 이익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노바메이트는 매출총이익률 90% 중반대로 원가 부담이 매우 적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법인을 통한 직접판매가 이뤄지는 만큼 다른 파트너사와 이익을 나눠가질 필요가 없기도 하다.

이 사장은 “일정 타이밍이 지나고 나면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며 “보수적으로 봐도 앞으로 7~8년 동안 4조 원의 현금흐름이 플러스로 나오고 더 열심히 뛰면 5조 원까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세노바메이트만으로 영원히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는 어렵다. 2032년 무렵 특허가 만료되면 여러 복제약이 등장해 약가와 수요가 떨어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 사장은 세노바메이트 판매 경험을 쌓은 미국 영업망을 활용해 다른 의약품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풍부한 현금으로 최소 임상3상 이상, 2~3년 안에 상업화 가능한 의약품을 사들여 현금 창출력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2025년까지 완료할 것으로 예정됐다. 

다음으로는 쌓이는 현금을 어디에 활용할지가 문제다. 이 사장은 신약개발 기술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3~4년 후에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현금을 갖고 신약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지금 미리 계획해놔야 그 때 제대로 투자할 수 있다. 지금 놀지 말고 미래기술을 선점해야 한다.”
 
SK바이오팜 신약개발 시간·자본·기술 삼위일체, 이동훈 '50조 기술' 육성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사업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50조 기술’ 지금부터 육성

이 사장은 SK그룹과 긴밀하게 소통해 SK바이오팜이 확보해야 하는 유망 기술 3개를 선정했다. 표적단백질분해기술, 방사성의약품, 세포유전자치료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표적단백질분해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분해해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다. 방사성의약품은 항체나 합성의약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부착해 특정 암세포만 파괴할 수 있게 만든 약물을 가리킨다. 세포유전자치료제는 체내 세포나 유전자에 작용하는 방식으로 각종 난치성 질환을 공략한다.

모두 원리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아직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에 있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이 지금 투자해 기술을 발전시키면 장차 해당 분야를 선점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장은 “지금 ‘핫’한 곳을 가면 경쟁력이 없다”며 “최근 화이자가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기업 씨젠을 50조 원에 인수한 것처럼 5~7년 후 50조에 팔리는 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SK그룹은 3가지 기술 확보를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한 투자계획을 세웠다.

표적단백질분해는 SK와 미국 바이오기업 로이반트의 합작법인 프로테오반트가 개발해왔다. 방사성의약품의 경우 SK가 투자한 미국 소형 원자로 개발기업 테라파워의 원자로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용 동위원소를 공급받을 권리를 확보해놨다. 세포유전자치료제도 SK그룹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기업 SK팜테코가 일찍이 진출한 분야다.

앞으로는 SK바이오팜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다. 이 사장은 제약바이오시장이 저평가된 지금이야말로 중요 자산을 최대한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는 적기라고 봤다.

그는 “인수하고 투자하고 싶은 회사의 가치가 낮아 ‘줍줍’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며 “올해부터 내후년 초까지가 싸게 살 수 있는 최대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 신속한 의사결정, ‘빅 바이오텍’ 밑거름

장기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SK바이오팜이 특정 기술, 후보물질에만 오래 집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고 중단한 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에 다시 도전한다는 게 이 사장의 방침이다. 과감한 기술수출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이 사장은 “이렇게 신성장 분야에 5년 이상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건 현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대신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에자일하게, 빠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만든 게 최고’라는 생각을 타파하는 게 조직문화다”며 “우리 현금으로 빨리 개발하고 빨리 팔고 빨리 들여오는 게 핵심이다”고 덧붙였다.

SK바이오팜은 이처럼 자본과 기술, 시간에 유연한 조직문화까지 겸비하는 방식으로 2026년 150억 달러(약 18조9천억 원) 규모 ‘균형 잡힌 빅 바이오텍’ 진입을 꿈꾸고 있다. 

보통 회사 가치가 10조 원이 넘어가는 바이오기업을 빅 바이오텍이라고 한다. 균형 잡힌 빅 바이오텍은 높은 현금 창출 및 자금조달 능력을 기반으로 활발한 비유기적 활동을 통해 혁신기술을 도입, 지속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기업을 일컫는다.

이 사장은 2022년 SK바이오팜 사장으로 선임됐으며 SK바이오팜의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 대표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바이오사업 관련 투자와 인수합병 전문가로 꼽힌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