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이 독과점 해소 방안 마련을 위한 시간벌기에 일단 성공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일부 노선에서의 독과점 해소 방안이 담긴 시정조치안을 마련해야한다. 다만 장거리 노선에 신규 진입할 국내항공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 승인 시간벌기 성공, 조원태 독과점 해소 난제는 여전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승인을 위한 독과점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합뉴스>


29일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심사를 위한 조사를 잠정중단하면서 심사결과 발표가 약 2개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심사기한 연장은 대한항공의 시정조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명확한 날짜가 예고되지 않은 만큼 대한항공이 독과점 해소를 위한 시정조치안 준비에 시일이 걸리는 상황으로 읽힌다.

다만 독과점 우려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한항공으로선 아쉬움이 클 수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결의되고 지난해 2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의 첫 기업결합 승인을 받을 때부터 일부 노선 독과점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다.

대한항공과 유럽연합은 약 2년의 사전 협의를 거친 뒤 올해 초 심사에 들어갔는데 결과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단계 심사 돌입당시 예고된 대로라면 7월5일 심사결과가 나왔어야 했다.

그동안 유럽연합을 설득할 시정조치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조 회장의 속도 타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100여 명 규모의 전문가 그룹을 운영해왔고 2020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국내외 자문사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1천억 원이 넘는다.

영국과 중국에서의 승인 사례와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은 독과점을 줄이기 위한 슬롯 양도 및 신규 항공사 진입 지원방안, 시장지배력 남용 방지 등을 담은 시정조치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쟁당국의 우려대로 일부 노선의 독과점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해당 노선에 신규 진입할 '국내항공사'의 존재가 간절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에서는 합병 승인을 위해 대한항공이 해외항공사에 슬롯을 내주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슬롯 양도가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논리다.

국내에서는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장거리 노선 운항 경험과 기재를 갖춘 항공사로 평가된다. 두 항공사 역시 대한항공이 내놓을 슬롯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관련해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의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이후 출범할 항공사는 △인천~프랑스 파리 △인천~이탈리아 로마 △인천~스페인 바르셀로나 △인천~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4개 노선에서 독과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서유럽 지역까지 운항 가능한 장거리 기체를 충분히 보유했는 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에어프레미아는 23일 △인천~프랑크푸르트에 주 3회 취항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이후 독과점 수준을 낮추고는 있지만 현재 기체 보유 대수가 B787-9 드림라이너 5대에 그치고 있다. 내년 4대를 추가도입할 예정이다. 

티웨이항공의 경우 현재 서유럽 전역에 취항할 수 있는 기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초 실시한 운항데이터 기반한 성능분석에서 A330-300 여객기의 서유럽 및 미주 일부 노선에 대한 운항 가능성 정도만 확인했다.

티웨이항공은 현재 중장거리 기체 A330-300 3대를 호주 시드니,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등에 투입하고 있다. 2024년 A330-300을 2대를 추가 도입할 예정인데 유럽 노선 운항에는 모자란 숫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항공이 티웨이항공에 A330-300 및 A330-200을 저가로 임대해주고 유지 보수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물밑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통합 항공사의 화물노선의 독과점 문제를 푸는 것은 더욱 어려운 난제로 꼽힌다. 

두 항공사의 유럽 노선 항공화물 점유율은 대한항공 54.0%, 아시아나항공 26.8%로 통합 시 점유율이 80%가 넘어갈 것이 유력하다.

특정 항공사가 핵심 전략물자의 운송을 독차지하게 될 경우 공급망의 불안요인이 된다는 분위기가 유럽연합에서 흐르고 있다. 문제는 항공화물은 화주를 상대로 한 영업활동인 데다 고도의 운송기술 및 경험이 요구되기에 국내 저비용항공사에 넘기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는 화물전용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조 회장은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합병 승인과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고차방정식을 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필수승인 국가 3곳의 심사만 남겨놓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합병에 반대하는 기류가 포착된다. 

조 회장은 5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100%를 걸었다”며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키겠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