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쿠팡과 갈등했던 제조사들이 쿠팡으로 유턴하고 있다.

사실상 유통업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쿠팡과 척을 져서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대세’와 화해하는 제조사들, 쿠팡으로 쏠림 현상 더 강해진다

▲ 쿠팡과 갈등했던 제조사들이 다시 쿠팡과 거래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의 대세 손을 다시 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관계자들의 반응이 나온다. <쿠팡>


각 사업영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조사들이 쿠팡을 다시 찾으면서 쿠팡으로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유통업계의 흐름을 살펴보면 쿠팡과 갈등하며 수년 전부터 납품을 끊었던 제조사들이 최근 쿠팡에 제품 공급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크린랩이다. 크린랩은 창사 40년이 된 주방 일회용품 전문기업으로 식품 포장 분야에서 점유율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크린랩 제품은 그동안 쿠팡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쿠팡이 크린랩 제품을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으로 공급하고 싶다며 본사와 직거래를 요구한 것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쿠팡은 크린랩 본사가 요청에 응하지 않자 대리점을 통해 사들이던 물량 발주를 중단했고 결국 2019년 7월부터 거래 관계가 끊어졌다.

하지만 지속적인 소통 끝에 결국 20일부터 거래가 재개됐다. 현재 쿠팡에서는 크린랩 제품 일부가 판매되고 있다. 앞으로 품목 수는 모두 40여 종으로 늘어난다.

크린랩의 사례는 앞으로 더 많은 제조사들이 쿠팡과 다시 협력 관계에 나설 신호탄일 수 있다고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바라본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 입장에서도, 제조사 입장에서도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서로 좋지 않다”며 “쿠팡에서 업계 1위 제품을 구매할 수 없다고 하면 쿠팡이 고객을 계속 유인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며 제조사에게도 소비자의 불만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유통사와 제조사의 갈등은 봉합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으며 이런 관점에서 결국 시간 싸움일 뿐이다”며 “서로 윈-윈하는 밑그림을 그린 뒤 거래를 재개하는 단계로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LG생활건강이 쿠팡과 납품 갈등을 겪은 지 4년여 만에 코카콜라 등 일부 음료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다는 말이 돈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다만 LG생활건강과 쿠팡 측은 이와 관련해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통상적으로 논의하던 수준의 협상만 진행하고 있다는 뜻을 보였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반 쿠팡연대’의 전선이 깨지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쿠팡과 납품 갈등을 벌였던 제조사들이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놓고 ‘반 쿠팡연대’가 생겼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이를 이탈하는 업체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쿠팡이 유통업계의 1위 기업으로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점을 연대에 균열이 생기는 이유로 꼽는 시각이 많다.

쿠팡은 올해 상반기에 오프라인 유통공룡으로 평가받는 이마트를 매출에서 앞질렀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네이버와 격차도 벌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네이버는 2분기에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거래액 성장률 8.6%를 기록했는데 이는 쿠팡의 성장률 21%와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로서는 더 이상 쿠팡과 등을 진 상태로는 실익을 거두기 힘들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제품을 가장 많이 팔아줄 수 있는 플랫폼인 쿠팡과 차라리 손을 잡고 기업의 실적을 높이는 것이 이들에게는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쿠팡이 납품 갈등으로 발주를 중단한 제조사 제품들을 중심으로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개발하거나 중소기업과 협력해 대체재를 만들고 있다는 점도 제조사들의 쿠팡 유턴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쿠팡은 6월 보도자료를 통해 즉석밥과 즉석국, 냉동식품 등의 판매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중소중견기업들의 제품 판매량이 최대 100배 이상 늘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당시 보도자료는 사실상 CJ제일제당의 주력 제품이 빠졌어도 쿠팡에는 타격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쿠팡에서 그동안 구입할 수 없었던 크린랩 제품을 봐도 쿠팡은 자체 브랜드 코멧을 통해 개발한 대체 상품으로 이미 많은 소비자를 모았다.
 
‘유통업계 대세’와 화해하는 제조사들, 쿠팡으로 쏠림 현상 더 강해진다

▲ 쿠팡은 2022년 말부터 CJ제일제당과 납품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둘의 갈등이 봉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통사와 제조사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쿠팡의 자체 노력이 계속되는 이상 제조사들로서도 더 이상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마트가 10~20년 전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할 때도 제조사들과 납품 가격을 두고 갈등을 겪었지만 대세로 올라서면서 이런 갈등은 대부분 봉합됐다”며 “전례를 감안하면 쿠팡을 향한 납품 재개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CJ제일제당이 쿠팡과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이 극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서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협력 관계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잘 나가는 유통회사와 손을 잡는 것은 최근 제조사들에게 흔한 일이 되고 있다. 특히 패션 브랜드에서 이런 흐름이 자주 관찰된다.

‘요가복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룰루레몬은 23일 SSG닷컴의 라이브방송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룰루레몬은 자사몰 중심의 온라인 판매 전략을 중요하게 생각해왔지만 결국 유통을 꽉 쥐고 있는 기업들과 협력할 필요도 있다는 내부 판단이 선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키도 2019년 ‘탈 아마존’을 선언한 뒤 자사몰 중심의 유통전략에 힘을 쏟았지만 최근 미국 주요 유통사들에 대한 납품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