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타임즈] 미중 디지털 진영화에 끼인 삼성전자, 메모리 실리의 길 있다
등록 : 2022-09-14 15:35:24재생시간 : 6:43조회수 : 2,042김원유
[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산업 기술 경쟁과 안보문제를 결합하면서, ‘신냉전’, ‘디지털 진영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완전히 끼어버린 상황에 놓여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시장이 구축한 반도체 공급망에 국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개입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 반도체 기술경쟁이 디지털 진영화로 귀착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며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조, 생산, 시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배제할 수 없어 안보와 경제의 연계 상황에서 선택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에는 칩4동맹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더욱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특히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삼성전자가 이 거대한 패권싸움 속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서로를 완전히 몰락시키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의 반도체 사슬은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보고서 역시 “냉전 시대에도 유럽이 소련의 가스를 매수하고, 소련이 IBM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던 것처럼 디지털 진영화라고 하여 특정 국가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분리하는 것은 곤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구적 공급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두 나라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낸다면, 오히려 이 지정학적 리스크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먼저 중국의 태도를 살펴보면, 사드 보복 때와 비교해 중국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관영매체가 최근 이슈인 한국의 칩4동맹 가입과 관련해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중국과 관련해 근거 없는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며 “한국에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일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중국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예시다. 대미국, 대한국 정책이 좀 더 유화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는 크게 다섯 곳을 꼽을 수 있다. 미국, 대만,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이다.

이 가운데 미국, 대만, 일본 중국을 명확하게 적대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이 협력을 구할 수 있는 상대는 한국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국이 끊임없이 ‘실리’를 강조하며 한국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을 아예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은 한국에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삼성전자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중국의 최종목표는 반도체 굴기를 통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굳건하게 혼자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를 위한 땅도, 자본도, 노동력도 모두 갖추고 있다.

유일하게 하나 부족한 것, 그것은 바로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중국으로서는 그 기술력을 확보할 때까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슬을 이어가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중국이 삼성전자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붙들어줄 ‘고리’가 바로 삼성전자인 셈이다.

현재 중국은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시가 없다면 사실상 산업이 멈춰버리게 된다. 중국 기업들의 한국 메모리반도체 의존도는 7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삼성전자에게 원하는 것은 현상유지다. 지금처럼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반도체 생산해내고, 그 반도체를 중국 기업들에게 파는 것이 중국이 원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삼성전자에게 원하는 것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장, 즉 일자리와 반도체 공급의 안정이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다. 유럽이 계속해서 사민주의 노선을 타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은 “자본주의를 넘어선 금권주의 국가다”라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철저한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이 굉장히 집착하는 것이 바로 일자리, 실업률이다. 국민들이 굉장히 예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의 안정은 바이든 행정부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니만큼 그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이 바로 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기업들이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미국이 끊임없이 삼성전자에게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것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의 우수한 기술력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력이라는 건 단순히 반도체 산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이 스스로 매우 고도화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당연히 이 반도체는 위성 통신, 무기 체계 등등 여러 안보 관련 분야에도 쓰이게 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높아지는 것은 미국이 볼 때는 ‘안보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미국으로서는 삼성전자가 중국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공장에서 최첨단 공정을 활용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장에서 삼성전자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진행한다면 당연히 기술 유출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은 첨단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랑 관계가 없기만 하다면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반도체를 팔든, 반도체를 만들든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된다. 

결국 삼성전자가 실리를 추구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중국 공장에서는 지금처럼 반도체를 계속 생산해내면서 그 반도체를 중국 기업들에게 판매해나가는 한편 미국에는 최첨단 공정을 활용한 공장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다 .

사실 삼성전자는 이미 이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미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미 중국에서 생산중인 D램이나 낸드플래시에 최신 공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최첨단 기술력을 적용한 공장을 지으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에 끼어있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그리고 특히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나아갈 길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다른 한 축인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성공 방정식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과 신냉전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영상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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