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타임즈] 현대차 자율주행 ‘죽음의 계곡’ 두렵지 않다, ‘직접 개발’ 계속
등록 : 2023-05-10 09:17:47재생시간 : 5:30조회수 : 5,109김여진
[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2315억 원, 5126억 원, 7500억 원. 

현대자동차와 앱티브의 자율주행 기술 관련 합작회사 모셔널이 2020년, 2021년, 2022년 낸 적자 규모다. 

세계적으로 한동안 투자 붐이 일었던 자율주행 기술이 ‘죽음의 계곡’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기술이 산업에 적용될 때는 보통 기술개발(R&D), 제품개발, 상업화의 3단계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상업화 단계는 신기술이 성숙단계에 이르기 전에 넘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 관문을 무사히 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수많은 신생 기술기업들이 이 관문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기 때문에 이 단계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미 시장에는 초보적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 들어간 자동차들이 많이 나와 있다. 자율주행 기술은 상업화 단계, 죽음의 계곡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현대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버와 구글 출신 자율주행 전문가가 설립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자율주행 기업, 아르고AI는 최근 폐업을 선언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인 폴크스바겐과 포드가 자율주행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이와 관련해 “우리는 레벨4 단계의 자율율주행차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만 규모에 맞으면서 수익성을 갖춘 완전 자율주행 차량은 요원하다”며 “우리가 반드시 ‘직접’ 그 기술을 개발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팔리 CEO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직접’ 개발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차가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맞지만 그 죽음의 계곡을 정면돌파하기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그 계곡을 넘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기술과 플랫폼은 진정한 자율주행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돈을 주고 사오면 된다는 이야기다.

자율주행 관련 R&D 비용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현대차 역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대차가 자율주행 관련 투자를 중단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그 죽음의 계곡을 한번 직접 넘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경쟁사들이 이를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율주행 직접 개발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치와 관련이 있다.

현대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류 자동차 회사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를 ‘최고의 자동차 회사’라고 보지는 않는다. 현대차는 완성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들을 조금 빠르게 쫓아가고 있는 패스트 팔로워의 위치에 있다.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에도 현대차의 패스트 팔로워로서 정체성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기차 분야에서는 테슬라라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서 현대차가 리더의 자리를 잡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가 미래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업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퀀텀점프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율주행은 이 퀀텀점프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자율주행 기술의 파괴력은 이미 자동차 업계의 ‘신생아’인 테슬라가 한방에 왕좌 자치를 꿰찬 것에서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비슷한 이유로, GM같은 회사들도 여전히 자율주행 관련 R&D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하나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주주들의 것이고, 그 주주들은 현대차의 본질이 침해되어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율주행 관련 R&D가 현대차의 다른 사업, 특히 전기차 등 현대차의 본질과 관련있는 사업의 투자를 제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사들을 이기기 위해서 현대차는 막대한 투자를 예고하고 있는데, 여기에 자율주행 투자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차가 하루빨리 자율주행과 관련해 무언가를 시장에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기아가 새로 공개한 EV9에 3단계(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넣은 것이 이를 위한 대표적 노력이다. 

현대차에게 자율주행이란 그냥 단순히 차를 많이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현대차는 차량이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넘어서 고객의 삶 전체에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는, 마치 집과 같은 곳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 것이 현대차의 궁극적 목표다.

이런 목표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바로 자율주행이다. 운전은 결국 ‘일’이다. 자기 집에서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량이라는 공간이 근본적으로 휴식의, 놀이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안에서 ‘일’을 제거해야 한다.

현대차가 자율주행 분야에서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 나아가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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