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올해 말 한시적으로 확대한 국내주식의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재점검하기로 한 만큼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국내주식 비중 확대에 따른 변동성과 손실 위험을 관리할 운용기준을 정비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자산배분 변경의 적절성을 검증하면서 투자전략의 비밀을 보호할 국회 차원의 감독 절차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의 배경과 책임에 대해 국정감사뿐 아니라 향후 국정조사와 특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상 규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연금이 주가 상승기에 리밸런싱을 통해 국내주식을 매도했다면 최근 증시 급락 때 주식을 다시 매수할 여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국민연금의 자산배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코스피는 15일 7.57% 하락한 5554.22로 마감한 뒤 16일에는 2.05% 오른 5668.05로 거래를 마쳤다. 급락과 반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결정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앞서 14일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기존 규칙대로 리밸런싱했다면 하루 8천억 원가량의 주식을 매도해야 해 시장에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국내주식 비중 확대와 리밸런싱 유예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며 5월 자산배분 조정도 정기 일정에 따른 것으로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기금위는 올해 말 국내주식의 SAA 허용범위를 재점검할 계획을 갖고있다. 지난 5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높이면서 허용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한 데 따른 후속 절차다.
기금위는 1월26일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4%에서 14.9%로 조정하고 SAA 허용범위를 벗어날 때 실시하는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규모 매도가 반복되면 시장에 과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어 5월28일에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였다. 상법 개정 등에 따른 국내 증시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과 실제 보유비중 확대를 고려해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리밸런싱 유예는 6월 말 종료됐지만 기금위는 국내주식의 SAA 허용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하루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줄이는 등 운용 규칙을 조정했다. 2027년 국내주식 목표비중도 올해와 같은 20.8%로 정했다.
목표비중은 자산배분의 기준이며 SAA 허용범위는 자산군별 기준비중이 시장 변동에 따라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는 폭이다. 기준비중이 허용범위를 벗어나면 매도·매수 등을 통해 허용범위 안으로 조정하는 리밸런싱이 이뤄진다.
목표비중 상향이나 리밸런싱 유예가 그만큼 주식을 추가 매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국내주식 보유비중을 낮추거나 다시 높여야 하는 기준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기금의 위험관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공단이 공개한 7월 말 기준 국내주식 자산은 418조6천억 원으로 전체 기금의 24.9%를 차지했다. 목표비중인 20.8%보다 4.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주가 상승기에 리밸런싱을 유예한 결정이 최근 하락장에서 추가 매수 여력과 자산배분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다만 7월 말 보유비중만으로는 당시 적정 매도 규모나 현재 추가 매수 여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올해 1~7월 국내주식 누적 수익률은 60.11%로 전체 기금 수익률(14.84%)을 크게 웃돌았다. 상승장에서는 높은 국내주식 수익률이 기금 운용성과에 기여했지만 국내주식 비중이 커진 만큼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도 커졌다. 다만 이는 7월 말까지의 운용성과로, 최근 증시 급락이 반영된 현재의 수익률과는 구분해야 한다.
리밸런싱 기준은 주가 상승기에 주식을 파는 시점뿐 아니라 하락기에 다시 사들이는 시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주식 기준비중이 허용범위 상단을 넘어서면 매도를, 하단 아래로 떨어지면 매수를 통해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확대된 허용범위의 구체적인 상·하단이 공개되지 않아 최근 주가 하락으로 매수 기준에 도달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연말 재점검에서는 리밸런싱 완화가 대규모 매도에 따른 시장 충격을 줄인 효과와 함께 국내주식 집중에 따른 손실 위험도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어떤 기준으로 자산비중을 조정할지, 한시적으로 확대한 허용범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검토 대상이다.
국민연금의 공식 기금운용원칙도 시장 충격 완화와 투자 위험 관리를 함께 요구하고 있다. 공공성·유동성 원칙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자산 매각에 따른 시장 충격을 고려하도록 하고, 안정성 원칙은 수익률 변동성과 손실 위험을 허용범위 안에서 관리하도록 규정한다. 운용 독립성 원칙은 다른 목적 때문에 기금운용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원칙에 비춰 올해 이뤄진 리밸런싱 유예와 국내주식 목표비중 상향 결정이 적절했는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 운용성과뿐 아니라 기존 자산배분 기준을 유지했을 경우와 비교한 수익·위험 변화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대규모 매도는 주가와 나머지 보유자산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단순히 과거 주가를 적용해 매도했을 경우의 이익을 계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당시 예상한 시장 충격과 주가 하락 위험, 대안별 검토 내용 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 ▲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사결정 근거를 검증할 기금위 회의록 제출을 놓고도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은 국내주식 비중 확대와 리밸런싱 유예 과정의 정치적 개입 여부와 위험관리의 적정성을 확인해야 한다며 상임위 차원의 회의록 제출 요구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진행 중인 투자전략이 노출돼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현행 국민연금법 제103조의2는 기금위 회의록을 회의 개최일부터 1년이 지난 뒤 공개하도록 하되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주거나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안건은 기금위 의결을 거쳐 공개 시점을 4년 뒤로 늦출 수 있도록 규정한다. 올해 1월과 5월 자산배분 관련 회의록도 2030년 공개 대상으로 거론됐다.
다만 같은 조 제3항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요구하면 기금위 위원장이 회의록을 비공개로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외 공개를 유예하더라도 국회가 의사결정 근거를 검증할 수 있는 법적 통로는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가 비공개 회의록 제출 절차를 활용해 자산배분 변경의 적절성을 검증하면서도 투자전략 유출을 막을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금위가 연말 재점검에서 달라진 시장 환경에 대응할 위험관리 기준을 구체화하고 당시 자산배분 결정의 근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지가 국민연금 운용의 신뢰를 확보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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