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랑스의 재정적자와 공공부채 확대가 유럽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현지시각)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행진하는 시위대 모습. <연합뉴스> |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부채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당시 그리스에 비교해 프랑스는 현재 더 규모 부채를 안고 있을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번진 가운데 2009년 10월 그리스는 정권 교체 뒤 실제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에 달한다고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앞서,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6%라고 발표했었다.
그리스의 실제 재정적자 폭로를 계기로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른바 ‘피그스’(PIIGS) 국가들의 재정적자 심각성도 드러나 국채 금리가 폭등하며 연쇄적인 재정위기로 이어졌다. 이 국가들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고, 위기는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
당시 유럽 부채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의 일환이었으나,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로 묶인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증폭됐다. 즉, 미국이 진원지였으나, 취약한 유럽의 주변 국가들에서 불길이 더 거세진 것이었다.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유로화를 도입한 뒤 독일에 준하는 낮은 금리로 손쉽게 돈을 빌렸다. 유로화의 가치는 유로존의 최대 국가인 독일의 경제력에 근거했다. 남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력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통화를 향유했으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쉽게 빌린 돈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고 복지를 확충했으나, 제조업 등 국가 기초 경쟁력은 독일 등에 밀려 만성적인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에 시달렸다. 유로화 체제 하에서 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막대한 수출 흑자를 기록한 반면, 경쟁력이 낮은 남유럽 국가들은 적자만 쌓여갔다. 북유럽 은행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남유럽 국가의 국채나 부동산 시장에 대출해줬고, 이는 남유럽의 자산 버블과 부채를 더욱 키우는 부메랑이 됐다.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남유럽 국가들을 진원지로 하는 유럽 부채위기가 터진 것이다. 유로화에 묶인 남유럽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길 카드를 박탈당해, 해결책은 결국 구제금융 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2010년 국내총생산의 80%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현재 119%로 폭등했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한다.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의 58%에 달한다.
프랑스의 이런 취약한 재정구조는 이란 전쟁 이후 국채 급락 사태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채 10년물 이자율이 현재 1994년 이후 최고인 5.3%를 넘는 국채 위기는 프랑스의 공공부채 및 재정적자 위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한때 24년 만에 최고치인 5%를 돌파했다.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독일 10년물 국채 금리 격차는 약 140∼150bp(1.4∼1.5%포인트) 수준으로 벌어졌다. 최근 장중에 151.95bp를 넘어서며 2011~2012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 15년 만에 가장 넓은 폭으로 벌어졌다.
유로화는 1유로에 1.12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1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4% 이상 하락한 상태이다. 파운드, 스위스 프랑, 일본 엔화 대비로도 약세를 보였다. 엔화 대비로는 한 달 사이 약 4% 가깝게 하락하는 흐름이다.
현재,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4.9% 안팍,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3.4∼3.5% 안팍이다. 이탈리아와 독일 간 금리 격차도 거의 130bp까지 벌어지며 코로나19 위기 이후 최대 주간 상승 폭을 나타냈다.
경제분석가들은 유로화가 1.10달러 선을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외환 전략가들은 독일 대비 프랑스 국채 금리 격차가 10bp 벌어질 때마다 유로/달러 환율이 0.4% 하락하는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2010년대 유럽 부채위기 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수습할 능력이 없었던 것처럼 프랑스 역시 이를 수습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프랑스는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예산을 긴축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5년 동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행정부는 6명의 총리를 교체했으나, 그 누구도 재정적자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줄이지 못했다. 적자 감축 목표는 거듭 완화됐다. 계획된 지출 삭감과 연금 개혁은 국민적 저항에 의해 희석됐다. 약속된 재정 절감 효과는 애초 발표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마크롱의 여당은 의회에서 소수파이고, 의회는 극우 국민연합의 득세로 극도로 분열됐다. 이대로라면 내년 대선에서는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에 공공부채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의지가 있다 해도, 2010년대 유럽 부채위기 때의 남유럽 국가들처럼 유로라는 구속복에 갇혀있다. 프랑스는 긴축의 수축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통화 가치를 절하할 수도 없고 금리를 인할 수도 없다. 따라서 프랑스에게 ‘재정 건전화’는 지출 삭감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는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경기침체는 정부 수입감소와 사회적 지출 증가를 야기한다.
2010년 부채위기에 비해 더 나쁜 점은 유럽 경제의 기관차인 독일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2010년대 독일 경제는 세계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침체에 빠지지 않는 경쟁력을 보였고, 남유럽 구제금융에 나섰다. 현재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한 제조업 경쟁력 상실에 몰리고 있다. 독일이 유럽연합 회원국 지원에 나선다면, 독일에서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부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정위기에 빠진 유로존 국가를 돕기 위한 무제한 채권 매입 프로그램인 ‘파급경로보호장치’(TPI) 등이 준비되어 있다. 2010년대 유럽 부채위기 때와 비교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프랑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설사, 독일이나 유럽연합의 사정이 좋다고 해도, 프랑스에 대한 지원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프랑스에 대한 지원 자체만으로도 유로존 경제는 파탄을 의미한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6일 유럽중앙은행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프랑스의 부채위기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갈 길을 잃고 있는 유럽과 그 경제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프랑스가 구제금융이나 디폴트 사태로 치닫지 않는다고 해도 만성적인 침체에 빠지며 해체 위기까지 거론되는 유럽연합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2010년 유럽 부채위기가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약한 고리였다면, 현재 프랑스 재정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이 세계경제에 가하는 충격의 약한 고리일 것이다. 정의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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