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박근혜 게이트로 정부의 입김이 약해진 틈을 타 농협금융지주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김병원 회장은 농협금융지주의 인사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연임 결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김병원 회장이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김용환 회장도 연임을 위해 농협중앙회와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 농협중앙회, 농협금융 영향력 확대할까

30일 금융계와 농협중앙회, 농협금융지주에 따르면 김병원 회장이 김용환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시기를 앞두고 농협금융지주에 중앙회의 영향력을 얼마나 확대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김용환 회장의 임기는 오는 4월에 끝난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그동안 주로 관료출신들로 채워졌다.

신경분리 이후 유일하게 내부출신으로 초대 농협금융 회장에 올랐던 신충식 회장은 취임 3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 뒤 농협금융 회장에 오른 신동규 회장과 임종룡 금융위원장, 김용환 회장 모두 관료출신이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농협금융지주 이사회에도 농협중앙회 출신 인사들이 있는 만큼 농협금융지주의 인사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정부측 인사가 배치된 것은 정부와 관계 때문이다.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는 농협중앙회 입장에서 정부와 관계를 매끄럽게 맺어줄 수 있는 인물을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로 정부여당이 흔들리고 있어 김병원 회장은 농협금융지주와 관련된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을 차단할 적기를 맞은 셈이다.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된 특검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가 발표될 가능성이 높은 오는 3월 김용환 회장도 임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인사권을 바탕으로 농협금융지주에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금융지주가 계열사의 인사권과 성과평가권을 갖도록 금융지주 운영체계 모범규준을 만들어 금융지주 중심의 경영방식을 안착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김병원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에 대한 영향력을 미리 다져야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 김병원, 농협금융지주 인사에도 영향력 확대

김병원 회장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농협금융지주의 인사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김용환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농협금융지주의 인사권에 김병원 회장의 영향력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기봉 NH농협생명 대표는 은행에서만 경력을 쌓아왔는데 김병원 회장과 돈독한 관계를 발판으로 NH농협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NH농협은행 인사에도 중앙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2월 부행장 11명 가운데 9명을 교체하는 등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실시했는데 신규 선임된 부행장과 지역 영업본부장에 중앙회 출신들이 포함됐다.

김병원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해 범농협 전반을 파악한 뒤 인적쇄신을 위해 경영진 교체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불법선거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는 등 농협금융지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중앙회 조직을 안정시켰기 때문에 정권의 입김이 약해진 틈을 타 영향력 행사에 나선 셈이다.

김병원 회장이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의 사업부문 대표들에게 사표를 받으면서 이미 금융지주의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일괄적으로 사표를 받았다는 말도 농협금융 안팎에 퍼져 있다.

◆ 김용환, 농협중앙회와 관계개선 주력

지난해 12월 실시된 농협금융지주의 인사를 놓고 김병원 회장과 김용환 회장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의 인사권은 공식적으로 농협중앙회와 독립돼 있는 만큼 농협금융지주의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김용환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중앙회의 인사입김을 최대한 배제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중앙회 출신들이 포함됐는데도 “농협금융지주의 임원 인사는 전적으로 내가 했다”며 선을 그었다.

농협금융지주의 계열사 대표들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낸 것도 김병원 회장과 김용환 회장 사이의 사전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용환 회장이 연임을 목표로 농협중앙회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환 회장은 지난해 빅배스 등을 통해 농협금융지주의 부실을 털어낸 상황에서 일찍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또 세워놓은 장기전략을 구체화하고 싶어 연임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성과평가뿐 아니라 선임과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 농협금융지주의 비상근 이사 1명은 농협중앙회 출신으로 김용환 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에서 김용환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경영활동과 주요결정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그동안 농협중앙회와 정부 사이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그런 점에서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역할이 박근혜 게이트로 약화한 것도 김용환 회장이 농협중앙화에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용환 회장의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김용환 회장이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김병원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에 대한 충분한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