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앞줄 왼쪽 세 번째)이 2025년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동개혁 대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 토론회에 여당 의원 '세몰이'
김문수가 참석한 국회 토론회에 국민의힘 의원이 50여 명 넘게 몰렸다. 김문수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 주자임이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문수는 2025년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나경원·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노동개혁 대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 국민의힘 국회의원 108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6명이 참석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2월12일 주최한 개헌 토론회에 40명이 훌쩍 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몰려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김문수가 모습을 보인 토론회에 이보다 더 많은 의원들이 참석했다.
김문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조기대선 출마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중도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적극 반박했다.
김문수는 “대한민국의 가장 밑바닥, 청계천에서 7년 이상 다림질을 보조했고 민주화 과정에서 감옥을 2번 다녀왔다”며 “사회 약자를 보살피는 게 공직자 직분이라는 것을 삶의 사명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추진
김문수가 퇴직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퇴직연금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김문수는 2025년 2월26일 근로복지공단 서울합동청사에서 개최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푸른 씨앗) 1조 원 조성’ 기념행사에서 “퇴직연금 의무화를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금형 제도 도입을 통해 퇴직연금이 우리나라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도록 연금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은 기업이 퇴직금을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금 형태로 지급하는 법정 퇴직급여 제도다.
‘푸른 씨앗’은 2022년 4월 출범한 국내 유일의 공적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로 근로복지공단이 자산운용기관과 협력 아래 전문적으로 운용해 2024년 기준 누적수익률 14.67%, 연간수익률 6.52%를 기록했다.
김문수는 푸른 씨앗이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은 90% 이상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으나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가입률이 23%에 불과하다”며 “(퇴직연금 의무화로) 기업 규모의 격차가 근로자의 노후생활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투자전문가 집단이 가입자를 대신해 적립금(퇴직금)을 관리하면서 기금을 만들어 투자하거나 민간 금융기관에 투자를 위탁하는 방식인 퇴직연금 ‘기금형’ 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 제도는 대부분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을 맺고 스스로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계약형’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연금 자산에 부합하는 합리적 투자가 어렵고 예금 및 적금 등 원리금 보장상품에 편중돼 낮은 퇴직연금 수익율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김문수는 “하루하루 일하기도 바쁜 근로자가 복잡한 투자 상품을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에서는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렵다”며 퇴직연금 ‘기금형’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 기금형 제도 도입을 위해 김문수는 3월21일 고용노동부에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추진 자문단’을 구성했다. 자문단 논의를 거쳐 정부가 2025년 하반기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 발족
김문수는 최저임금제도를 현재 노동시장 현실에 맞게 개선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아래 연구조직을 만들었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 11월8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로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 위원들이 첫 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는 최저임금위원회 전·현직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는 연구위원들의 최저임금 심의 경험과 법·경제·경영 등 분야별 전문성을 토대로 최저임금 결정구조 등에 관해 합리적이고 수용도 높은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김문수는 “오늘날 최저임금위원회는 합리적인 기준 아래 숙고와 합의를 통해 적정 수준을 찾기보다는 소모적인 갈등만 매년 반복하고 있다”며 “이번 논의를 통해 최저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우리 노동시장의 변화를 최저임금제에 적절히 담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최저임금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 구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통해 “노동계와 어떠한 사전 공감대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구회 발족을 강행한 고용노동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최저임금위원회의 핵심 주체인 노동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연구회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논평에서 “김문수 장관은 연구회를 결성하며 '현장 목소리 경청, 국민 공감'을 강조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원이자 현장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노총을 철저히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2024년 9월13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노총 방문해 협력 요청
김문수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방문해 집행부와 노동 현안 등을 논의했다.
김문수는 2024년 9월1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잘돼야 회사가 잘되고 국가가 잘 된다”며 “우리 사회 난제를 해결하는 데 모두 다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노총의 적극적인 대화 참여가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김문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모든 열쇠는 한국노총이 가지고 있다”며 “한국노총이 가진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김문수가 경사노위 위원장을 역임한 만큼 노사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포괄임금제 문제 등 노동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 사각시대를 양산하는 포괄임금제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문제 또한 시급히 현실화돼야 한다”며 “경사노위 논의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4자 대표자 회의를 빠르게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김 장관은 2025년 3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위해 연구 용역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태조사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업종별·지역별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유형화해 임금 상승 효과나 영향을 예측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4년 9월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과 약자보호를 위한 전국기관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용노동부 장관 취임 뒤 첫 지시로 ‘임금체불 청산·체불사업주 엄벌’ 강조
김문수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취임해 첫 번째 업무지시로 임금체불에 대한 총력대응을 주문했다.
김문수는 장관 취임 이튿날인 2024년 8월31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그간 (노동부의) 노력에도 청산되지 않은 2198억 원을 전액 청산한다는 각오로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2198억 원은 2024년 6월 말 기준 임금 체불액 1조436억 원 가운데 청산되지 않은 금액이다.
이와 함께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는 큐텐 계열사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도 주문했다.
김문수는 이어 9월5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장 회의에서도 추석 전 집중적인 체불임금 청산 등을 주문했다.
김문수는 “전국 관서장과 2200여 명의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예방과 체불임금 청산, 악질체불 사업주 처벌에 더욱 전념할 때”라며 “임금체불과 청산 현황을 매일 보고받고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금체불이 경기 여건 때문이라는 생각은 과감히 버리라”며 “절도·강도가 많아진다고 경기 탓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돼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7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김문수를 지명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문수는 젊은 시절 노동현장에서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치열하게 활동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환경 분야에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했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행정력을 입증했고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실장은 "김문수는 경기도지사를 2차례 역임하면서 공약이행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행정력을 입증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속가능한 경제사회를 위한 노사정 사이 사회적 대화와 협의를 이끌면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어 "고용과 노동관련 현안이 산적한 현재 시점에서 입법과 노동 분야를 두루 경험한 김문수가 노동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문수는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맡게 되면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김문수는 지명 소감에서 "
윤석열 대통령의 법치주의 노동개혁은 지난 2년간 상당한 성과를 거둬 노사 분규로 인한 노동손실 일수가 대폭 감소됐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의 미조직 노동자들도 결혼해서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김문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8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을 강행했다.
△역대 경사노위 위원장 가운데 사회적 합의 가장 적은 2건
김문수는 2년 동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을 재임하면서 역대 위원장 가운데 가장 적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사노위에서 받아 2024년 8월7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김문수는 2022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단 2건의 사회적 합의만 성사시켰다.
구체적으로 2024년 2월6일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선언문, 2023년 3월15일 중대재해예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등 2건이었다.
경사노위는 노·사·정을 대표하는 위원과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노동정책과 관련된 조율과 타협의 결과로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 기관이다.
경사노위는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명의 위원장이 재임하면서 100건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위원장 1인이 평균 8.3건의 합의안을 도출한 셈이다.
역대 정부를 비교해보면 김대중 정부 시절 가장 많은 34건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노무현 정부가 26건,
문재인 정부가 19건, 이명박 정부가 14건으로 뒤를 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뤄진 사회적 합의 건수는 연평균 1.4건에 불과했다. 이는 5년간 7건의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한
박근혜 정부와 비견될 정도로 낮았다.
강득구 의원은 "
윤석열 대통령이 '다양한 구성원과 대화 및 타협을 바탕으로 노동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며 김문수를 지명했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김문수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부적격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경사노위는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경사노위 합의를 단순히 숫자로 평가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박했다.
경사노위는 "2024년 2월 합의를 이뤄낸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 선언문은 위원장의 끈질긴 노력 끝에 위원회에 불참 중이던 한국노총을 복귀하도록 해 1년6개월 이상 파행되던 사회적 대화를 복원한 결과"라고 말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임명
김문수는 2022년 9월29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정부, 노동자 대표, 사용자 단체가 고용노동 정책을 함께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임기는 2년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인선 배경을 놓고 "정치력과 행정력을 모두 겸비했고 특히 노동 현장 경험이 많아 정부와 사용자 단체, 노동자 대표 사이 원활한 협의와 의견 조율, 노사 협력·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를 보다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문수는 2022년 10월4일 취임식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화와 타협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문수는 취임사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천명한 노동개혁 추진의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개혁의 목적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노동시장 격차를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노사 사이 대화와 타협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모아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동개혁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사회적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문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뒤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행보를 보였다.
김문수는 10월8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 등 한국노총 임원들과 노동 현안을 놓고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10월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손경식 회장을 면담했고, 10월28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를 방문해 중견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11월3일에는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김기문 회장과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같은 날 대전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소상공인위원회의 '소상공인 계층 사회적대화·정책 간담회'에도 참여했다.
| ▲ 김문수 경기도지사(앞줄 왼쪽)가 2008년 8월4일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간담회를 갖기 전 상품들이 보관된 창고를 둘러보고 있다. <경기도> |
△총선, 지방선거 잇달아 고배
김문수는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갑 출마를 선언했다.
김문수는 대구와 가까운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지만 정치적 기반은 경기도인 데다 대선 후보로까지 꼽히던 인물이 험지가 아닌 텃밭에 출마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거 결과 보수의 성지라는 대구 수성구갑에서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크게 밀리며 낙선해 정치적 위상이 크게 깎였다.
고등학교 후배인 김부겸 후보에게 24.6%포인트라는 큰 득표율 격차를 보이며 패배했다.
김문수는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해 23.2% 득표율로 2위에 그쳐 낙선했다.
현직 시장인 박원순 후보(52.8%)에게 크게 밀렸지만 당초 목표가 안철수 후보를 이기고 2등을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 수성갑에서 패배로 정치인생을 마무리했다면 텃밭에서조차 참패해 몰락한 거물 정치인으로 기억될 뻔했으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의 요청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자유한국당이 서울 2위를 탈환하도록 하면서 어느 정도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김문수는 이후 개인 방송을 통해 보수진영 정치평론가로서 목소리를 냈다.
△'철새' 행보
김문수는 정치적 행보에 있어 철새라는 비판도 들었다.
김문수는 2012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불통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박근혜 경선 후보를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당권이 친박에게 넘어가자 태도가 바뀌었다.
그러다가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엔 비박계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관해 논의하는 비상시국위원회에 참가했다.
이후 다시 입장을 바꿔 비상시국위원회 인사 대부분이 바른정당으로 빠져나갈 때 자유한국당에 잔류했고, 2017년에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김문수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등 극우적 정치색을 보였다.
2020년에는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뒤 전광훈 목사와 함께 극우 성향의 자유통일당을 창당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자유통일당을 이끌다 우리공화당과 합당해 공동대표에 올랐지만 합당 18일 만에 노선 차이를 이유로 탈당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김문수는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59.68%의 득표율을 얻어 30.75% 득표하는 데 그친 진대제 열린우리당 후보를 누르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해 52.20%의 득표율을 얻어 47.79% 득표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를 꺾었다.
경기도지사에 재선된 뒤 2010년 취임식과 2014년 퇴임식을 의정부시 가능역 한솥나눔 119무료급식센터에서 급식 봉사로 갈음했다.
경기도지사 재임 중 경기도 최초로 대중교통 환승할인이 적용된 수도권 통합 요금제를 도입했다. 수도권 통합 요금제는 2004년 서울시의 대중교통 체계 개편 이후 2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과제였는데, 김문수가 2006년 7월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뒤 곧바로 재협상에 나서면서 급진전돼 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경기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경기순환버스도 도입했다. 경기순환버스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3년 4월1일 수원시와 의정부시를 최단거리로 빠르게 오가는 경기순환 8401번 노선을 가동했다.
김문수는 2010년 경기도지사 재선에 도전하면서 정부의 수도권 간선철도 계획을 수정해 수도권 주요 지점들을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최초로 기획했다. GTX는 김문수가 마련했지만 나중에
문재인 정부도 주요 교통정책으로 추진했다.
김문수는 2024년 4월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최초 구상자임을 밝히면서 GTX 정책이 자리잡은 것을 긍적적으로 평가했다.
김문수는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앞두고 선거공약을 준비하면서 경기도민의 최대 민원이 교통인 점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기도지사 당선 뒤 2007년 GTX를 처음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고 덧붙였다.
김문수는 이 인터뷰에서 “지하 50m를 파내려가 철도를 건설하면 토지보상비 문제도, 소송 걸릴 위험도 없어 현실적 문제들이 많이 해소될 것으로 봤다”며 “지하로 내려가 기계로 땅을 뚫고 들어가 파는 시공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GTX가 구현되고 직접 타보니 처음 구상했을 때의 예상보다 더 좋았다”며 “빠르고 조용하면서 쾌적했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도 도정에서 각종 전시성 행정으로 재정 부실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3년에 경기도에서 연간 예산의 10%에 이르는 1조5천억 원의 재정 결함이 발생함에 따라 IMF 사태 이후 처음으로 감액 추경이 편성됐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도지사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김문수는 이런 두 가지 비판을 모두 인정했다.
김문수가 두 번 도지사를 역임하는 동안 경기도의 재정자립도는 2006년 68.8%에서 2013년 60.1%로 떨어졌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와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경기도 재정 건전성과 관련해 김문수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다.
김문수는 도지사 임기를 마친 뒤에는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계 입문 및 국회의원 시절
김문수는 1990년 이재오, 장기표, 이우재씨 등과 손을 잡고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과 노동운동 세력 일부를 모아 민중당을 창당했다.
당시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김문수는 노동자 밀집 지역인 서울 구로구갑의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김문수는 전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민중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득표율 미달로 해산됐다.
이후 김문수는 택시기사로 일하다가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보수로 전향했다.
김문수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했다. 김문수는 39.19%의 득표율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측근인 박지원 후보(37.25%), 현역 국회의원인 박규식 자유민주연합 후보(16.69%) 등을 꺾고 당선됐다.
제15대 총선에서 부천 소사구에 출마해 '불이 나면 소방차 다음으로 김문수가 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부지런하게 지역을 누빈 끝에 여의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제16대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각각 61.62%와 52.94%의 득표율로 여유있게 당선됐다. 활발한 지역구 행보로 험지인 부천에서 노무현 탄핵의 역풍도 뚫고 3선까지 해냈다는 말이 나온다.
김문수는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인선 복복선을 개통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전국 최초 급행열차 개통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로 김문수의 지역구에 있는 송내역에서 구로역까지 이동시간이 7분 단축됐다.
이후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17대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 ▲ 김문수가 1988년 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민가협) 행사에 참석해 ‘양심수 전원 석방’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투적 노동운동가
김문수는 '운동권의 황태자'로 불렸다. 가장 전투적이면서 치열한 노동운동가였고, 노동운동의 전설로 남았다.
김문수는 대학생 때 심재권 전 민주당 의원의 권유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 5년 선배인 심재권 전 의원의 권유로 서울대 학생운동 모임 가운데 하나인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2학년 때 김근태 전 의원을 따라 공활(공장활동)을 한 뒤 노동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전태일 열사 사건을 깊게 공부하면서 노동운동에 집중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대학에서 제적된 뒤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일했고, 이후 염색공장 등 여러 공장을 다니며 직공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공부해 환경관리기사 2급, 안전관리기사 2급 등 국가기술자격을 획득했다.
1976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에 선출됐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회사가 노조 해산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김문수는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이후 구로 동맹파업을 주도했고, 경찰에 체포된 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서대문구치소 수감 중 기소유예로 석방돼 한일도루코에 복직했다.
한국노동자복지회를 조직해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86년 인천시 5·3 직선제 개헌 투쟁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복역하다가 2년6개월 만에 19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