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터뷰] 문석, '거제 벨버디어'로 한화 리조트사업 미래 열다

▲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가 12일 오전 서울 63빌딩에 있는 집무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서로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자.”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의 좌우명이다.

밋밋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무게감이 다르다. 문 대표에게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한화그룹에서 자랑스러운 직원이자, 한 회사의 자랑스러운 대표이사가 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 대표가 그룹과 직원의 자랑이 되기 위해 택한 길은 100년을 바라보는 혁신과 도전이다. 리조트업계 1위 자리를 뺏긴 지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남들이 가는 길로 가서는 승산이 없다’고 바라본다. 

한화무역에 입사해 ‘무역쟁이’가 될 줄 알았지만 리조트사업으로, 도시개발로 길을 틀었다가 다시 리조트사업에 돌아올 정도로 변화를 거듭해왔는데 이번 도전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30년 '한화맨'으로 한화그룹 호텔과 리조트사업을 이끄는 문석 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를 비즈니스포스트가 12일 만났다. 

◆ 문석, ‘거제 벨버디어’에 승부수 던졌다
[CEO 인터뷰] 문석, '거제 벨버디어'로 한화 리조트사업 미래 열다

▲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

‘거제 벨버디어’는 문 대표의 승부수다. 이 리조트는 ‘고급 이미지’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데 총 투자규모가 3천억 원 가까이에 이른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매출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 왜 하필 거제인가? 

“내가 대표이사로 오기 전에도 거제 벨버디어 프로젝트가 검토되고 있긴 했지만 3천억 원 가까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회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밀어붙였다. 미래를 향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거제시는 제주도 못지 않게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인근에 비행장이 많아 접근성이 좋은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소비시장이 큰 부산과 가깝지만 부산같지 않은 곳이 바로 거제다.”

거제 벨버디어에는 건물 외부와 옥상에 수영장이 두 곳 설치됐고 고급 스파시설도 갖춰져 있다. 인근 지역의 ‘맛집’을 엄선해 리조트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셀렉다이닝까지 꾸며졌다. 거제 벨버디어에서 휴식과 오락, 맛집 탐방까지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셈이다. 

- 거제 벨버디어의 성공 전략은? 

“최근 30, 40대 고객들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서도 어린 자녀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우리는 아버지 손을 잡고 왔던 아이가 다시 아버지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린 자식들과 다시 거제 벨버디어를 찾기 바란다.

그러려면 가족 손님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왁자지껄한 단체손님을 위한 연회장을 없애고 가족손님을 위한 어린이 시설들로 채웠다.”

문 대표는 ‘꼬마가 아버지가 되어 다시 찾는 곳’이 될 수 있느냐에 거제 벨버디어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본다. 거제 벨버디어의 표어가 “추억이 시작되는 곳”인 이유다. 

- 개장일을 미룬 이유는? 
[CEO 인터뷰] 문석, '거제 벨버디어'로 한화 리조트사업 미래 열다

▲ 한화호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 전경.



“올해 초 준공 직전의 거제 벨버디어를 방문해보니 ‘사람들이 이곳을 1, 2년 뒤에 또 방문하고 싶을까’하는 회의감이 들더라. 그래서 단체손님을 위한 연회장을 빼는 등 이미 설치돼 있던 부대설비들을 싹 갈아엎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성수기인 7, 8월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룹으로부터 경영평가를 받을 때 나쁜 평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업부장 등 임원들도 거제 벨버디어로 평가받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평가도 달려있지 않나.

하지만 임원회의를 소집해 내 생각을 말하니 모두 동의해줬다. 6개월 동안 다시 공사해야 할 것을 3개월 만에 끝내느라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

거제 벨버디어는 당초 올해 7월 문을 열어 휴가철 성수기 고객들을 맞이하려고 했지만 10월로 개장일을 미뤘다. 

- 개장 전 반응은 어떤가?

“르씨엘이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몰랐다. 르씨엘 98칸 가운데 20칸 정도가 인기리에 분양됐다. 하지만 시설만 보고 고객들이 구매한다면 르씨엘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우선 분양을 중단했다.

르씨엘의 정수는 서비스에 있다. 방에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모두 할 수 있고 KT의 인공지능 스피커 ‘지니’를 설치해 둬 말 한 마디만으로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르씨엘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앞으로는 고객들이 이 객실에서 하룻밤 묵은 뒤 분양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거제 벨버디어의 출발 조짐은 좋다. 핵심이자 모험이기도 한 최고급 객실 '르씨엘' 분양은 완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스몰 테마리조트, “시장이 없으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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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

고객이 원하지만 기업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곳. 문 대표는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면서도 글로벌 대형 리조트 기업과 경쟁해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거제 벨버디어는 그래서 문 대표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문 대표는 단순히 고객을 끌어 모으는 리조트 사업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문 대표는 생각한다. 그래서 ‘고급스러움’을 앞세운 거제 벨버디어가 탄생할 수 있었고 이는 ‘스몰 테마 리조트’라는 실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 스몰 테마 리조트를 추진하는 곳은?  

“서핑, 스키 등을 즐기는 전체적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사업을 하면 위험성이 크고 승산도 낮다.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고객들은 하와이로 서핑하러 갈 시간이 없다. 양양으로 가기에는 시설이 쾌적하지 못해 이들은 고민하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 큰 여유가 없는 20대 친구들도 해외여행을 다닌다.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들, 서핑을 즐기기 위해 해외로 가는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스몰 테마 리조트는 전국 각지의 관광 테마가 뚜렷한 장소에 건설되는 고급 리조트다. 문 대표는 이를 가리켜 “실험적, 모험적”이라고 말했다. 

첫 모험의 대상지는 바로 강원도 양양이다. 문 대표는 양양이 한국 서핑객의 성지로 불린다는 점에 착안했다. 양양은 상대적으로 숙박시설 등 관광자원이 낙후되어 있는데 이곳에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리조트를 올해 말부터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 대기업이 지역 소규모 리조트사업에 뛰어드는 데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고민이 많다. 이런 전략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지, 수요를 창출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하지만 실험도 안 해보고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은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비겁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모험을 했다.

한국에서 돈 쓸 수 있는 사람이 돈 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리조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우리도 이런 게 생겼네’하면서 좋아할 수도 있잖나.”

문 대표는 서민들의 먹거리까지 잠식한다는 비판이 일 수 있어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저가형 리조트로 객실을 늘린다면 이것은 에어비엔비, 게스트하우스, 펜션 등 서민들의 시장을 침범하는 일일 거다. 하지만 스몰 테마리조트는 고급 리조트 수요를 겨냥하고 있어 서민 사업자들과 타깃층으로 여기는 시장부터 다르다.

더군다나 중소기업이 이런 실험을 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실험을 해서 성공하면 중소기업도 뛰어들면서 시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이는 대기업으로서 해야 할 선구자적 사업일 수 있다.”

문 대표는 “(스몰 테마 리조트를 향한) 반응이 궁금하다”며 웃었지만 얼굴에는 자신감도 묻어났다. 

- 해외에도 진출하나? 

“더이상 국내에서만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스몰 테마리조트가 해외여행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일본, 베트남, 필리핀, 하와이까지 진출할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최근 글로벌 시장전담팀도 만들었다.”

◆ 도전의 원동력, 한화그룹의 ‘신용과 의리’
[CEO 인터뷰] 문석, '거제 벨버디어'로 한화 리조트사업 미래 열다

▲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

문 대표에게 도전의 원동력을 묻자 “한화그룹이 든든한 뒷배경”이라고 말했다. 올해 12월1일로 한화그룹에서만 만 30년을 일한 문 대표로서는 당연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 30년 '한화맨'의 비결은? 

“처음에는 한화그룹의 가치인 ‘신용’과 ‘의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것만큼 맞는 말도 없더라. 그룹이 내게 보여준 신용과 의리는 힘이 됐다. 30년 동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그룹이 나를 불합리하게, 불공평하게 대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신입사원으로 한화무역에 입사했을 때 기획 부서에 배치를 받았는데 당시 부장에게 패기 넘치게도 ‘기획이 아니라 영업을 배우러 왔다, 날 영업부서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그때 부장이 그러더라. ‘당장은 이 곳에 당신이 필요하다, 기다려라, 당신이 원하던 대로 될 수 있다’고. 면접을 볼 때도 솔직하게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는데 그런 나를 한화그룹이 뽑아줬다. 그때부터 그룹을 향한 믿음이 생겼다.”

옳은 길을 간다면 믿어준다는 믿음, 한화그룹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가 도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었던 셈이다.

- 한화그룹 호텔리조트 사업의 목표는? 

“목표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그룹이 신경쓰는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을 보여줘야 그룹에서도 ‘막내한테 신경 안 썼는데 의외로 쓸만하네’하지 않겠나.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그룹 내 매출비중이 1~2%에 그치는 비주류다.

그룹에서 이 회사를 전략사업으로 키울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할 정도다. 나도 그룹본부에서 일할 때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잘 안다. 그룹에서 내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관리 중심형 회사였던 이곳에 나를 보낸 것은 뭔가 새롭게 탈바꿈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100년의 숲' 조성사업은 왜 추진하나? 

“그룹과 회사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00년의 숲 조성 계획을 세웠다. 올해 착공식도 했다. 삼림보호지역에는 숲을 가꾸고 나머지 가용부지에는 아름다운 리조트를 지어 모든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오는 관광지로 만들겠다.”

문 대표는 경기도 양평에 ‘100년의 숲’을 조성한다. 대를 이어 한화그룹의 자랑거리가 될 만한 숲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100년의 숲은 한화그룹이 리조트 등 유통사업에 4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8월 밝힌 데 따른 계획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양평에 보유한 270만 평의 부지 가운데 당장 개발할 수 없는 삼림보호구역을 아름다운 숲으로, 100년 뒤 아시아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숲으로 키워내는 것을 뼈대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인 한화그룹은 입사 초년생이었던 문 대표에게 자랑이었다. 문 대표는 한화건설이 중동 허허벌판에 분당을 그대로 짓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스마야 신도시’사업을 지휘할 정도로 한화그룹의 인재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문 대표의 도전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그룹의 자랑거리로서 다시 세우는 일로 이어졌다. 거제 벨버디어, 스몰 테마리조트, 100년의 숲까지 이어지는 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
 
문석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는 19634월에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화도시개발사업본부장,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인력팀장, 한화중동법인장 등을 두루 거쳐 2016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리조트부문장에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