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대통령께서 여전히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4.10 총선에 관한 입장을 들은 뒤 한 말이다. 
 
[기자의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절망', 박근혜가 걸었던 길로 가고자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 입장고 있다. <연합뉴스>


홍 원내대표의 말처럼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지 1주일이 지나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에게서는 국정기조 변화와 쇄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가장 먼저 나타났던 ‘인적 쇄신’ 움직임도 이런 저런 잡음만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실에선 17일 문재인 정부 인사였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으로 고려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검토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전에도 여러 여권 인사들의 하마평만 무성할 뿐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이렇다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원희룡, 권영세, 김한길 등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도 그동안 윤석열 정부에 몸담아왔던 인물들로 국민들이 볼 때 ‘변화’로 느껴질 수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패배로 대통령 지지율이 더욱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데다 남은 3년 임기 동안 ‘여소야대’가 확정된 상황에서 정부 핵심 요직에 합류할 인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상황이 이렇게나 심각한데도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와 관련해 13분 동안 쏟아낸 모두발언은 변화할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할 만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물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반성'을 언급하고 '쇄신'의 메시지도 담았다. 하지만 반성을 말하기에 앞서 기존 정부정책의 방향이 옳았다는 주장에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올바른 국정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모자랐다”며 “예산과 정책을 집중해서 물가관리에 총력을 다했으나 어려운 서민들의 형편을 개선하는데 미처 힘이 닿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가 '방향을 잘 잡아서 열심히 해왔지만 국민들이 체감을 못했다'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국정기조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해오던걸 꼼꼼히 더 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비판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불통'에 관해서도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야당 대표와의 만남에 관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국민이 100을 기대하면 한 130~150쯤 던져야 감동이 오는데 꼭 50~60만 던진다”며 “대통령의 메시지를 보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혹평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경제적 포퓰리즘’을 언급하며 야당의 민생지원 정책을 비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건전재정’은 정부의 성과라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윤 대통령에게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을 이뤘다고 자평했지만 실상은 이와 많이 다르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 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87조 원 적자에 이르렀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했던 재정준칙의 한도를 지키지 못했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재정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한국은행 마이너스 통장’이라 불리는 대정부 일시차입금도 올해 1분기에 32조5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정부의 건전재정 운용이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2년 간 국정운영은 한 마디로 나쁘지 않았으나 국민이 체감을 못하거나 또는 잘 몰랐던 게 아니다. 지금껏 하던 기조를 '완전히 바꿔야한다’는 평가가 총선을 통해 내려진 것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싸늘하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부랴부랴 비공개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들게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TV로 중계된 공개발언에서는 사과란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비공개 석상에서 사과했다는 전언을 국민들이 과연 진정성 있게 바라볼 수 있을까.

대통령실의 조직개편 방향도 민심을 반영하겠다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대통령실은 국민과의 소통이 목적인 시민사회수석실을 없애고 법률수석실을 신설하는 방향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폐지했던 민정수석 기능을 복원한 법률수석실을 신설하고 여기에 기존 비서실장 직할로 있던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장성철 공론센터소장은 이를두고 16일 MBC뉴스외전에서 "지금 시점에서 법률수석실을 만드는 건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특검법안 정국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향한 공격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소통하겠다고 했다면 시민사회수석실이 필요한데 대통령실의 조직개편은 이러한 방향과 상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복수 언론에 국정기조 변화와 관련해서는 “선거 때문에 국정기조를 바꾼다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기자의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절망', 박근혜가 걸었던 길로 가고자 하나

▲ 인천공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TV로 중계되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총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인식해 ‘잘못’을 인정하고 국정운영 방향을 대폭 수정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부터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제22대 국회에 입성을 앞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7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윤 대통령을 향해 “아직도 윤 대통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 사술로 정국을 돌파하려고 하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122석을 얻어 123석을 차지한 민주당에게 불과 단 1석 차이로 패했다. 당내 혼란과 수직적 당정 관계로 공천 파동이 불거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결국 과감한 쇄신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새누리당 내부의 갑론을박에도 급기야 친박(친박근혜)이었던 이정현 홍보수석이 새누리당 대표에 올라 수직적 당정관계가 더욱 강화했다. 

쇄신에 성공하지 못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 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야 말았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전철을 또 밟는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혼란으로 닥칠 수밖에 없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