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거국내각' 요구 솔솔, 윤석열 협치 안 보이고 전례 없어 가능성 낮아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정치권 일각에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에 거론됐던 거국내각 구성 요구가 흘러 나온다. 

4.10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민심을 받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야당 인사를 포함해 내각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뒤에도 야당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별달리 보이지 않는 데다 대통령책임제와 맞지 않는다는 명분 아래 여야 모두에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아 거국내각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16일 야당에서는 총선 뒤 처음으로 나온 윤 대통령의 이날 국무회의 발언을 놓고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그동안 정책의 방향성은 옳았으나 세심한 부분에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요지로 발언했는데 총선에서 여당 참패로 나타난 민심을 받들어 국정운영 방향을 쇄신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조금이라도 국정의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을 철저히 외면했다"며 "불통의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 대신, 방향은 옳았는데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처럼 용산 주도의 불통식 정치로 일관하겠다는 독선적 선언이었다"며 "야당을 국정운영 파트너로 인정하라는 총선 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국혁신당도 "윤 대통령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잘 해왔는데 국민이 체감 못한 것이 문제라고 한다”며 “국민이 외려 몰라 봬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나”라고 꼬집었다.

이런 윤 대통령의 기조와 과거 사례로 볼 때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거국내각 구성 요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실현된 전례가 없는 데다 대통령책임제 성격에 맞지 않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더구나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최근 거국내각 논의가 활발했던 때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 농단 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민심이 악화하자 2016년 10월30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청와대에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김성원 당시 새누리당 대변인은 여의도 당사 긴급 최고위원회 뒤 “새누리당 최고위에서는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내각 구성을 강력히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야당과 아무런 논의 없이 2016년 11월2일 돌연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내정자로 지명해 논란을 불러왔다. 야당에선 극렬하게 반발했고 결국 김 교수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고 거국내각 논의는 완전히 무산됐다.

그나마 거국내각에 가장 가까운 사례는 1992년 10월 출범한 현승종 내각을 꼽을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충남 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로 위기를 겪자 민주자유당 총재직을 사퇴한 뒤 탈당하고 여야 합의로 현승종 내각을 출범시켰다. 

다만 이는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라 여당으로서도 부담이 아니었고 여야 양쪽이 모두 수용 가능한 정치색이 낮은 인물들로 내각을 꾸렸기 때문에 야당이 적극적으로 국정에 참여하는 거국 내각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제의 시초인 미국에서도 전시 상황을 제외하곤 거국내각이 구성된 적이 없다. 

1864년 공화당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당시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기간에 링컨 대통령은 민주당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으로 임명한 사례 정도가 있을 뿐이다.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낮은 19%라는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거국내각에 대한 요구는 없었다. 

거국내각에 대해 여야 모두 반대의견도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 전 민주당 의원은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거국내각 논의에 대해 “책임 정치에 안 맞다”며 “대통령이 그 당에 계속 남아야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경기 포천·가평 당선인은 전날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에서 거국내각에 대해 “대통령제에서는 그게 맞지 않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이 있다”며 “국민들께서 어쨌든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으로 뽑아주셨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 방향이라든 기조라든지 철학이라는 것이 저는 전반적으로 맞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좀 거칠었던 측면이 있고 이런 것들을 수정해 나가는 것들이 필요하지 거국 내각이 여기에 나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가운데 낙선자가 많은 만큼 정부 아래 공공기관장 자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 탈당과 야당에게 장관을 양보하는 거국내각을 꾸리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의 거국내각 논의는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남 해남완도진도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불을 지폈다.
 
정치권 '거국내각' 요구 솔솔, 윤석열 협치 안 보이고 전례 없어 가능성 낮아

박지원 전 국정원장.


박 전 원장은 지난 1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 대통령이 지금도 총리, 비서실장 등의 인적 쇄신을 전부 자기 식구들에게서 찾고 있다”며 “윤 대통령이 탈당한 뒤 거국내각으로 가야만 이 난마 같은 정치를, 민생경제를, 외교를, 민주주의를 풀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 당선인도 같은 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의 엄중한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내각 총사퇴와 거국내각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신임 국무총리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대통령 스타일상 (김 전 총리를) 임명하겠느냐”면서도 “만약 야당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분을 총리에 임명한다면 표면상으로는 거국내각이라고 언론에서는 평가하지 않겠느냐”고 바라봤다. 

미디어토마토에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6.3%로 떨어졌다. 국민 4명 가운데 3명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이 거국내각 논의를 부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거국내각은 사실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대국민 발언으로 미루어봤을 때 ‘최후’라는 인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어 거국내각은 정치권 논의로만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