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고공행진에 미국 연준은 신중, 한은 이창용 하반기 금리인하 고민 커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지금 상황에서 하반기 금리인하를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자동차운전에 빗대 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깜빡이’를 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깜박이 켰다는 것은 차선을 바꿔서 좌회전하려고 준비한다는 뜻인데 저희 상황은 깜박이를 켠 것은 아니고 자료를 보고 깜박이를 켤까 말까를 고민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지난번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금통위원 중 1명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기하며 통화정책 전환 기대감을 한껏 키웠던 것과 달리 이번 회의 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기대감을 크게 낮춘 것이다.

이 총재가 불과 50일 만에 정책전환을 두고 고심에 빠진 이유는 ‘물가’에 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지수인 근원물가 상승률은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국제유가 움직임과 농산물 가격 추이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3월 국내 물가를 살펴보더라도 근원물가 상승률은 2.4%로 낮아지면서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인 2%대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농산물 가격과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2월과 같은 3.1% 수준을 유지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는 올해 말에는 2%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5월 전망에서 좀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바라봤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 전환의 전제 조건이 물가 안정화에 있다고 밝힌 만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대로 수렴하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다면 기준금리 인하 시기는 한층 불투명해질 수 있는 셈이다.

국내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나오는 점도 하반기 국내 기준금리 인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개한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낮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물가 목표치인 2%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신뢰를 얻기 전까지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조됐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3개월 연속 시장 전망을 웃돌고 있어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늦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준의 대표적 금리인하론자인 라파엘 보스틱 애틀란타 연방준비은행 총재조차 최근 기준금리를 올해 4분기에 한 차례만 인하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져 올해 연준에서 3차례 정도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낮아지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물가 둔화 흐름을 조금 더 확인하자는 차원에서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은 6월보다 7월로 미뤄질 전망이다”며 “이에 한국은행의 첫 금리 인하 시점도 8월 이후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일각에서는 연준이 개인소비지출(PCE) 지수 하락 추세를 고려하며 내년 3월에야 금리하락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4월 들어 연고점을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있는 점도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치솟는 환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어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 수준에서도 부담이 큰 환율과 유가가 추가로 오른다면 3분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다”며 “유가와 원/달러 환율 안정 여부는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물가 고공행진에 미국 연준은 신중, 한은 이창용 하반기 금리인하 고민 커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증권가에서도 애초 시장의 기대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뒤로 밀리고 인하 폭도 작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2회 인하를 단행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며 “3분기 말과 4분기초께 한 차례 만 인하해 올해 말 기준금리를 연 3.25%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예상을 웃돈 물가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급제동이 걸렸다”며 “올해 기준금리 인하 횟수를 기존 3회에서 2회로 낮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0회 연속 동결했다. 국내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부터 연 3.50%로 유지되고 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