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의 단기적 해결방안으로 금융사의 자율배상을 강조하면서 은행권이 난처해진 모양새다.

은행권은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배임 등 현실적 문제와 금융당국의 압박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홍콩ELS 사태 공 넘겨받은 은행권, ‘자율배상’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 은행권이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 해결 공을 넘겨받고 고심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4일 방송 인터뷰에 이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도 홍콩 H지수 ELS사태와 관련한 책임 있는 자율배상안 마련을 촉구하며 연일 금융사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4일 방송사 인터뷰에서는 “금융사가 공적 절차 밖에서 우선적으로 자율배상으로 어려운 처지의 소비자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절차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4일은 이 원장이 은행의 ELS 불완전판매를 일부 확인했다고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한 날이다.

은행권은 금융권에서 홍콩H ELS를 가장 많이 판매했다. 이 원장이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자율배상을 강조한 만큼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은행권은 현실적으로 이 원장의 이 같은 압박에 선뜻 호응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여겨진다.

우선 ELS는 불특정 다수가 가입할 수 있는 공모 방식으로 판매돼 배상을 결정하면 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 원장은 자율배상의 선례로 과거 사모펀드 사태를 들었다. 하지만 대표 사례인 2019년 DLF사태에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자율배상을 결정한 투자자는 각각 1200여 명과 1300여 명 수준으로 3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H지수 기반 ELS 은행권 판매잔액은 15조9천억 원으로 계좌수는 24만8천 개가 넘는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 스스로도 배상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자율배상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콩ELS 사태 공 넘겨받은 은행권, ‘자율배상’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이복현 금감원장이 5일 서울 마포 금감원에서 열린 '2024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원장도 ‘퇴출’을 불사하겠다며 금융권에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동시에 '투자자책임 원칙' 또한 강조하고 있다.

법적 부담도 은행권의 자율배상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이 불완전판매를 우선 인정하고 자율배상을 한다면 법적으로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어려워하는 배상기준을 은행이 선제적으로 마련하기는 어렵다”며 “반대로 생각해 보면 불완전 판매를 시인하게 되는 것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자율배상 비율을 얼마로 정하든 100% 이하면 피해자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은 은행의 ELS 판매자체가 사기라며 100% 배상을 주장하고 있다. 100%보다 낮은 수준으로 자율배상이 이뤄진다면 지속해서 금감원에 사태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KB국민은행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은행은 H지수 기반 ELS를 8조 원 가량 팔았다. 금융사 가운데 가장 많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까지 자율배상과 관련해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이 배상안을 내놓는다면 그에 맞춰서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한동안 ELS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자율배상을 부드럽게 압박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율배상이 어렵다는 금융사에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며 “ELS사태는 횡재세나 은행권 상생금융 같은 이슈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 상생금융 압박 사례 등을 놓고 볼 때 이 원장이 점진적으로 압박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원장은 지난해 ‘신관치’ 논란에도 연일 은행권에 상생금융 확대를 압박했고 그 결과 지난해 말 은행권은 자영업자에게 이자를 돌려주는 2조 원 규모의 민생 지원방안을 내놨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