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은 정책 하나를 새로 시행하는데 꼼꼼하게 여론을 살폈다.

세종 12년에는 수확량의 10분의 1을 징수하던 기존 방식에서 토지 단위 당 정해진 양을 걷는 정액제로 세제를 개편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데스크리포트 2월] 의대 정원 확대, 의료개혁인가 포퓰리즘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호조에서 전국 17만 명을 대상으로 5개월에 걸쳐 여론조사를 했다. 당시 추정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조사였다. 그 결과 찬성 57%, 반대 43%라는 결과가 나왔다. 

왕조시대에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까지 거쳤으니 세종이 세제 개편을 바로 시행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세종은 평야 지대와 산간 지역 백성 사이에 토지 비옥도에 따라 찬성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바로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다. 꾸준히 의견을 청취하고 반대하는 이들을 차근차근 설득해 나갔다. 그렇게 14년에 걸쳐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한 뒤 세종 26년에야 법률을 확정 짓는다. 

제도 개편으로 피해를 보는 이가 최대한 나오지 않도록 하고, 혹시 나타날 부작용을 살피고 또 살핀 후에야 제도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물론 사회가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에 와서 이처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공론을 수집해 정책을 시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사회제도를 바꾸는데 있어 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혹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살피며,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이치다. 

#2.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르면 6일, 늦어도 설 연휴 전후로는 2025학년도에 적용할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규모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2035년 기준 1만5천 명이 부족한 의사 수급 상황을 고려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전문의 양성에 10년가량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2025학년도 입시의 의대 증원 규모는 최소 1500명 이상에서 최대 2천 명선까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의대 정원은 2006년 3058명으로 정해진 뒤 17년째 유지되고 있다. 복지부는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다 갑작스럽다는 비판에 부딪혔고 코로나19까지 확산하면서 논의가 흐지부지되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그 뒤 의료계와 소통 행사를 수십 차례 이상 가지며 소통했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들었다. 대학과 의대 정원 확대 수요 조사를 진행하며 여론을 조성했다.

필수의료에 수가(의료행위의 대가)를 인상하는 요지의 건강보험 종합계획뿐 아니라 전공의 처우 개선, 의사의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 의료계를 달래는 정책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필수의료 확대, 지방의 의료사각시대 해소 등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 때문에 여론도 의대 정원 확대에 매우 우호적이다. 

일례로 최근 세계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봐도 '1천 명 이상 의대 증원'에 찬성응답이 78%나 나왔다. 대체로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선 지금껏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찬성하는 결과가 나오는 여론조사가 많았다.

#3. 하지만 의료계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 같은 의사단체들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응해 집단휴진, 파업 같은 집단행동도 예고하고 있다.

이를 놓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일에 대해 밥그룻 지키기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많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의 반대 논리를 놓고 보면 단순히 기득권 유지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매도하기도 힘들다.

의료계에서는 의대 정원을 정치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련 토론회 등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정리해 보면 우선 의대 정원과 관련해 객관적 근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계해야지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따라 다수의 의견이 모이는 방향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인구변화와 의료수요 전망에 근거한 객관적인 의료인력 추계 데이터는 현재 국내에 존재하지 않으며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정부도 관련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응급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포함해 현재 조명되는 각종 의료문제는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 체계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외래 이용 숫자를 볼 때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한 게 맞느냐는 근원적 의문도 나온다. 아울러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의학교육 부실 문제와 의료비 확대 가능성 등도 제기된다.

종합하면 필수·지역의료 살리기에 맞는 의료체계와 의학교육 정책을 먼저 개발한 뒤 그에 따라 정원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대 정원 확대 반대 논리를 요약할 수 있다.

#4.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 개혁을 일부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계가 단체행동에 돌입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도 내보이고 있다.  
 
[데스크리포트 2월] 의대 정원 확대, 의료개혁인가 포퓰리즘인가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 앞서 '스마트 시뮬레이션센터'를 방문, 전공의들의 외과 수술 실습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의료정책은 범죄 수사가 아니다. 반대 목소리를 제압하고 밀어붙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의견 수렴을 더욱 촘촘히 하고 정원 확대 외에 다른 대안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특히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공공병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수익성만으로 있을 수 없는 곳에 우체국이나 소방서, 파출소를 두는 것처럼 의료 취약지와 필수의료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공공병원을 늘릴 정부의 의지와 실효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놓고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 의료개혁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세종이 그랬던 것처럼 혹시 나타날지 모를 부작용까지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의료정책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다. 만에 하나 예상못한 풍선효과가 발생한다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박창욱 정책경제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