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2월] 9년 만의 해외건설 수주 400억 달러 목표, 만만찮은 과제

▲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핵심인 최첨단 친환경 미래도시 '더 라인' 조감도. <네옴 홈페이지>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올해 해외건설 400억 달러 수주 목표를 세웠다. 2015년(461억 달러) 이후 9년 만에 400억 달러 돌파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국가별·프로젝트별 맞춤형 수주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제2 중동붐 확산을 위해 수주사업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업계에서는 올해 내수경기 둔화에 대응해 해외 사업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눈높이를 낮추는 모습이 나타난다. 해외수주 400억 달러 돌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일 해외건설협회 수주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는 2008년 476억 달러로 처음 해외수주 400억 달러를 기록한 뒤 2015년까지 8년 연속 400억 달러 이상을 수주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4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해외수주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에도 333억 달러로 4년 연속 300억 달러는 성공했으나 해외수주 목표인 350억 달러 달성에 실패했다.

정부는 1월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해외수주 목표를 400억 달러로 제시했다. 2023년 해외수주 실적과 비교하면 20%가량 높은 수치다.

지난해 해외수주 톱3는 삼성물산(71억5300만 달러), 현대건설(69억4200만 달러), 현대엔지니어링(63억7900만 달러)였다. 이들 세 회사가 전체 해외수주의 무려 61.5%를 했다.

하지만 올해 이들의 해외수주 눈높이는 낮아진 분위기다. 삼성물산은 올해 해외수주 목표로 8조 원을 제시해 지난해 실적(약 8조8천억 원)보다 10%가량 낮게 잡았다.

현대건설도 해외수주 목표를 11조8천억 원으로 지난해 실적 12조8700억 원보다 1조 가까이 내렸다.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5조5천억 원 목표를 세워 지난해 실적(5조2천억 원)보다 소폭 상향했음에도 자체 해외수주 목표가 큰 폭으로 내려간 탓이다.

이들 외에도 해외수주 전망을 보수적으로 보는 건설사들이 적지 않다. 대우건설도 지난해 해외수주 실적(3조1천억 원)보다 소폭 낮은 3조 원을 목표로 정했다. DL이앤씨는 해외를 따로 집계하지 않았지만 전체 수주 목표를 지난해 실적 14조9천억 원보다 크게 줄어든 11조6천억 원으로 잡았다.

물론 목표를 올려잡은 곳도 존재한다. 지난해 2조4650억의 해외수주를 한 GS건설이 5조4천억 원의 목표를 세웠고 삼성엔지니어링도 해외 포함 전체 수주목표를 12조6천억 원으로 잡아 지난해 8조8천억 원을 크게 상회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지난해 목표치에 크게 미달한 해외수주 실적을 거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해외수주 성장을 낙관하기보다는 지난해 못다한 수주를 만회하려는 측면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안팎의 환경변화는 올해 정부 수주목표 달성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국토교통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원팀코리아 수주지원단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하며 활발히 활동했는데 지난해 말부터 주춤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도 아직까지 수주지원단의 활동 계획이 잡혀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정치인 출신으로 원팀코리아를 주도하던 원희룡 전 장관에서 관료 출신 도시주택분야 전문가인 박상우 장관으로 교체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로 박 장관 체제 국토부에서 해외전략 변화 가능성도 감지된다. 박 장관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수주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하면서 도시개발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박 장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시절 해외 도시개발사업에 힘을 쏟으며 쿠웨이트 신도시 수출 등 성과를 냈다. 퇴임 후에도 회사를 설립해 베트남산단 개발사업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등 해외 도시개발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둬왔다.

다만 해외수주 400억 달러를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도시개발로 패러다임 전환을 논하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여전히 대형 해외 프로젝트는 도시개발 분야가 아닌 플랜트와 토목사업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해외수주액 10억 달러를 넘긴 공종은 모두 플랜트 쪽이었고 주택은 5억6천만 달러 수준이었다.

지난해 해외수주 물량의 3분의 1 수준인 100억 달러 가량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계열사의 해외공장 수주 건이었던 점도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해외 주요 발주처 역할을 했던 국내 대기업들이 올해도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시설투자(CAPEX) 규모를 지난해와 비슷하게 유지한다면서도 HBM(고대역폭 메모리)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HBM 생산설비가 국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해외투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6조5천억 원의 시설투자를 진행했는데 올해 5조6천억 원으로 줄어든 계획을 발표했다. 배터리3사는 올해도 계획대로 투자를 이어간다는 기조를 나타내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실제 투자가 얼마나 집행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든다.
 
[데스크리포트 2월] 9년 만의 해외건설 수주 400억 달러 목표, 만만찮은 과제

▲ 인도네시아 신수도 개발 및 디자인 발전 계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 신수도 인프라태스크포스>

해외시장 자체에서 파생되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더욱 확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주 진입장벽이 높아진 곳도 있다. 네옴 프로젝트 등 국내 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핵심 수주시장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부터 지역본부(Regional Headquarter) 유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기존 사업 라이센스와 별도로 사우디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으면 정부 발주 프로젝트 참여가 제한된다.

중동지역본부(RHQ) 라이센스를 따고 1년 안에 임원급 3명을 포함해 15명 이상 정규직을 채용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하다. 현재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LG전자만 RHQ 라이센스가 있고 현대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라이센스 취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정치일정도 해외수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 건설사들이 수도이전 2단계 사업 참여를 기대하고 있는 곳으로 이전부터 원팀코리아 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곳이다. 그러나 2월14일 치르는 대선 결과에 따라 수도이전 사업규모가 달라질 수 있어 업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근 국내 기업의 현지 생산시설 투자가 늘어나면서 주요 수주시장으로 떠오른 미국도 11월 대선이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현 바이든 정부와 정책 방향이 달라져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시설 투자가 위축되고 건설 수주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가 안팎의 어려움을 딛고 해외수주 목표를 달성하면 누적 수주 1조 달러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지난해 말까지 우리 기업의 해외 누적수주액은 9638억 달러로 1조 달러까지 362억 달러가량이 남았다. 지난해 수준의 수주실적이 이어진다면 1조 달러를 넘기지 못하지만 400억 달러 목표를 채우면 1조 달러를 훌쩍 상회하게 된다. 김디모데 건설&공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