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의 모든 것]  상속을 포기해도 유족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까?

▲ 상속을 포기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까? 아직은 유족 고유재산이라거나 상속재산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씨는 A사의 근로자로 일하던 도중 사망했다. 김씨는 생전에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실을 보았다. 그 때문에 상당한 채무가 있었다. 김씨에게는 A사에서 지급될 퇴직금 외에는 다른 재산이 없었다. 

김씨에게는 부인과 딸이 있었는데 이들은 김씨의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김씨의 부인이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니 유족이 상속을 포기하면 김씨의 퇴직금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족들이 퇴직금을 수령해서 사용하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런데 A사에서 연락이 왔다. A사는 유족들에게 퇴직금을 직접 지급할 예정이니 계좌를 알려달라고 한다. 김씨의 부인은 변호사와의 상담 내용을 떠올리며 퇴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A사는 회사의 단체협약 및 퇴직금 규정에 “근로기준법이 정한 범위와 순위에 따라 그 유족에게 사망 퇴직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유족들이 퇴직금을 받아도 된다고 한다. 김씨의 부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망인의 빚이 많아서 상속인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상속포기·한정승인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상속인의 고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피상속인(망인)의 빚은 피상속인의 재산에서만 갚고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상속인의 고유재산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일단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가 완료되면 상속인의 고유재산으로 피상속인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고유재산이라는 것은 상속인이 이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말한다. 상속으로 취득한 재산인 ‘상속재산’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해 비로소 발생하는 연금 등은 상속재산인지 고유재산인지가 애매하다. 그래서 유족들은 이 돈을 받을 때 신중해야 한다. 잘못하면 망인의 빚을 모두 떠안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분류는 다음과 같다. 

각종 유족연금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해 공무원연금법,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군인연금법, 별정우체국법, 국민연금법 등에 의해 유족에게 지급되는 유족연금은 당해 법률에서 수급권자의 순위나 지급 방법을 재산상속과 별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족연금, 유족연금부가금, 유족연금 특별부가금, 유족연금일시금, 유족일시금, 유족보상금, 순직 유족연금, 순직 유족보상금 등은 수급권자의 고유 권리로 상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유족의 고유재산이므로 이 돈으로 망인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유족이 한정승인을 진행하는 경우 재산목록에 기재할 필요도 없다.

사망조위금, 사망위로금

공무원 재해보상법 등 각종 연금 관련 법률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되는 사망조위금이나 재직하던 회사나 상조회사의 내부 규정으로 지급하는 사망위로금은 유족에게 곧바로 지급되는 돈이다. 유족의 고유재산이지 망인의 상속재산이 아니다. 

부의금(조의금)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주는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유족에게 지급되는 돈이다. 상속재산이 아닌 유족들의 고유재산이다.

위와 같이 망인의 사망을 이유로 발생하는 채권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고유재산으로 보는 경우들이 많다. 

다시 사례로 돌아와 보자. 위 사례에서 김씨가 남긴 것은 퇴직금뿐이다. 만약 망인이 생전에 퇴직금을 받아서 망인의 통장에 두고 있었다면 상속재산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에게 사망 퇴직금, 퇴직연금 등의 형태로 지급되게 된다. 마치 각종 유족연금과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망 퇴직금은 고유재산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상속재산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하급심 판례는 상속재산이라는 취지의 판례도 있었고 고유재산이라는 취지의 판례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특정한 조건하에 사망 퇴직금의 성질을 유족의 ‘고유재산’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퇴직금을 근로기준법이 정한 유족보상의 범위와 순위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정하였다면 개별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이와 다른 내용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수령권자인 유족은 상속인으로서가 아니라 위 규정에 따라 직접 사망 퇴직금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의 사망 퇴직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수령권자인 유족의 고유재산이라고 봐야 한다”고 선고했다.

위 판례는 김씨의 경우처럼 단체협약에서 유족들에게 사망 퇴직금을 주도록 규정돼 있다면 이는 유족들의 고유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족들이 상속포기·한정승인 절차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이 퇴직금을 가지고 김씨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김 씨의 유족들은 A사로부터 퇴직금을 수령해서 사용하더라도 김씨의 빚을 전부 승계하지 않는 길이 있기는 하다.

망인이 빚이 많아서 퇴직금 채권에 대해 압류가 들어온 경우 회사는 보통 퇴직금을 공탁한다. 그리고 공탁금을 누가 어떤 비율로 가져갈지를 채권자끼리 다투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이 판결은 특정한 조건에서 나온 결론이기 때문에 앞으로 실무상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 봐야 한다. 곧바로 사망 퇴직금이 고유재산이라거나 상속재산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