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1984' 빅브라더의 기시감,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진짜 공포

▲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김태준, 2022)는 스마트폰을 잃어 버렸을 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부주의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여주인공(천우희)은 스마트폰을 돌려받지만 범인이 심어둔 스파이웨어에 의해 감시 대상이 된다. <넷플릭스>

[비즈니스포스트]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SNS 활동을 하고 정보를 얻고 물건을 구매하고 음악을 듣고 영상을 감상하는 등의 일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진다.

‘12시간 동안 핸드폰 없이 살아보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을 정도로 스마트 폰은 우리의 삶과 밀착돼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생활 비중이 늘어날수록 개인주의가 강화된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인 면이 있다. 유튜브나 쇼핑몰 등은 개인의 생활 패턴을 다 꿰뚫고 있다.
 
1949년 조지 오웰이 내놓은 소설 ‘1984’는 빅브라더라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디스토피아의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삶을 불현 듯 돌아보면 ‘1984’의 기시감이 겹쳐진다. 누군가 맘만 먹으면 개인의 모든 히스토리를 파헤칠 수 있다. 빅브라더가 특정되지 않아서 방심하고 사는 걸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김태준, 2022)는 스마트폰을 잃어 버렸을 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부주의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여주인공(천우희)은 스마트폰을 돌려받지만 범인이 심어둔 스파이웨어에 의해 감시 대상이 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상대방의 사생활을 엿볼 수도 있고 지인이나 취미 등 모든 걸 알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개인정보는 매우 취약한 상태로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타겟’(박희곤, 2023)은 동떨어진 공포가 아니라 현실 공포를 보여준다. 

건축업체에 근무하는 수현(신혜선)은 새로 이사한 집에 놓을 세탁기를 중고거래 사이트로 주문한다. 그런데 고장 난 세탁기를 받게 된 수현은 판매자를 추적해 사기꾼이니 조심하라는 댓글을 달고 그때부터 사기꾼은 수현을 표적으로 삼는다. 

승부 근성이 있는 수현은 사기꾼과의 온라인 싸움에서 전의를 불태우며 공방전을 이어간다. 그런데 사기꾼은 수현의 신상 정보를 캐내서 점점 그녀의 생활공간을 침범하기 시작하고 단순한 사기꾼이 아닌 연쇄살인범이라는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과장한 면이 있겠지만 마냥 비현실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섬뜩하다. 

최근 스트리밍 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은 평범한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이 목포까지 가는 장거리 손님 금혁수(유연석)를 태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제목을 따왔다. 운수 좋은 날인 줄 알았던 인력거꾼의 하루가 사실은 운수 나쁜 날이었던 것처럼 오택도 돈벌이가 되는 장거리 운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목숨을 건 끔찍한 여정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금혁수의 정체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으로 그가 죽음으로 내몬 대학생의 엄마(이정은)도 추격에 가세하면서 스릴은 가중된다. 사이코패스 금혁수가 대학생을 사지로 몰아간 방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악의적인 댓글과 포스팅을 달고 지속적으로 협박하고 린치를 가하는 금혁수의 행동은 상대를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언제든지 빼내고 범죄에 이용하는 모습은 금혁수가 특출한 재주가 있어서라기보다 정보 유출이 그만큼 쉽다는 걸 보여준다. 

‘라방’(최주연, 2023)은 몰카 라이브 방송 링크를 받고 접속한 취준생(김선호)이 자신의 여자 친구가 방송에 나오는 기가 막힌 사태를 마주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방송 진행자(박성웅)는 신고하거나 접속을 끊으면 여자 친구의 몰카 영상을 유포해 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접속 상태를 유지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밤거리를 뛰어 다니며 협박범에게 보낼 돈을 빌리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안쓰럽다. 경찰서 문 앞까지 갔다가 차마 신고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는 공분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다소 어이없는 반전으로 마무리돼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주인공의 딜레마만큼은 절박했고 생생했다. 

내가 모르는 내가 인터넷 세상에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오싹하다. 공포영화는 어떤 장르보다 갈래가 다양하다. 미치광이 살인마, 흡혈 식물이나 거대 곤충, 귀신 들린 집, 악마, 좀비 등 무서운 존재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내 정보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익명의 존재야말로 진짜 공포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