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오바마·디카프리오 출연 기후 다큐 출시 7년, 시간 없는데 갈 길 멀다

▲ 2014년 9월 국제연합(UN) 기후변화 평화 메신저 자격으로 연단에 선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Flickr >

[비즈니스포스트] 일론 머스크, 버락 오바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프란치스코 교황 등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모두 출연해 기후변화를 향한 목소리를 높인 영화가 있다.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포더플러드(Before the Flood)’다.

7년 전에 나온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의 기후변화 대처가 진전이 없어보여도 많은 노력이 쌓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우로서 나는 가상의 캐릭터가 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기를 해왔다. 나는 지금 인류가 기후변화 문제를 그렇게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포더플러드에서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14년 국제연합 기조연설에서 각국 대표단을 향해 한 말이다.

10일 현재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정치권부터 산업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과 2016년은 많이 달랐다.

디카프리오의 말처럼 당시 기후변화는 말 그대로 '남의 일'처럼 인식됐다. 

푹푹 찌는 더위를 겪던 베이징에 하루 만에 눈보라가 찾아오고, 뉴욕에 1년 치 폭우가 하루 안에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기후변화의 영향이 아직 크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저 멀리 아프리카나 태평양 어딘가의 섬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흔히 인식됐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주요 언론과 정치인들이 기후변화가 과학자들이 조작한 음모론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2007년 기후변화 연구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이클 에반 만 박사는 2016년 영화에서 “월스트리트저널과 팍스뉴스는 내 연구결과를 가지고 나를 악당화하고는 사기꾼으로 몰아갔다”며 “실제로 나와 내 가족에게 살해 협박이 와서 연방수사국이 출동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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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2월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마이클 에반 만 박사. <위키미디아 커먼스>

2016년에는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하기 바빴던 미국은 지금 기후변화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됐다.

미국 해양대기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후재난은 25건, 피해 복구에만 10억 달러(1조 원)가 넘는 예산이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로 대표되는 강력한 재생에너지 확산, 에너지저장장치 개발, 전기차 보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기후변화를 향한 인식 역시 크게 달라졌다.

퓨리서치센터에서 2023년 9월부터 10월까지 미국인 8842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78%가 앞으로 ‘기후변화가 미래에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답했다.

퓨리서치센터에서 2016년 10월 집계했을 때는 48%만이 ‘인류활동 때문에 기후변화가 일어난다’고 답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파리협정 당시에는 합의되지 않았던 탄소세(Carbon Tax)가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서 모양새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도 두드러진 차이점이었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와 만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탄소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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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 독일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 Flickr >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2016년 디카프리오를 만나 “화석연료는 그 어떤 다른 산업계보다도 큰 영향력과 돈을 가지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이들에게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말했다.

파리협정이 체결될 당시 탄소세는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부과돼야 하는지도 정립되지 않아 결국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화석연료 업계의 로비 활동도 크게 작용했다.

2023년 지금 탄소세는 탄소 배출권이라는 간접적 형태로 현실화됐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U ETS)가 있고 한국에서도 한국 배출권 거래제도(K-ETS)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기후변화 대처에 있어 탄소 감축이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은 향후 탄소세 등 탄소 감축 규제를 높여갈 계획을 세웠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2016년 재생에너지는 비싼 값을 못하는 물건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화석연료와 달리 설치하는 비용도 비쌌고 에너지 생산 규모도 작았다.

무엇보다 원하는 떄에 원하는 만큼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는 가장 큰 단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유럽과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태양광과 풍력은 과학자들이나 이야기하는 미래 기술이라는 인식 속에 방치됐다.

재생에너지가 이러한 인식을 벗어난 데에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통계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풍력 터빈의 가격은 2008년 1메가와트당 158만 달러(약 20억 원)에서 70만 달러(약 9억 원)로 거의 절반 이상 저렴해졌다.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 역시 크게 발전해 전기차가 세계적으로 상용화될 정도로 발전을 이뤘다.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2016년 기가팩토리 설비를 구경하는 디카프리오에게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며 “테슬라에 있는 내 팀이 계산을 해봤는데 우리 기가팩토리와 같은 시설이 세계적으로 100개가 더 있으면 완벽한 재생에너지 전환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립 재생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40기가와트를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2016년 216기가와트와 비교하면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의 증가추세는 더욱 가속이 붙고 있어 2024년에는 550기가와트가 넘을 것으로 파악됐다. 단 1년 만에 20%가 추가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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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까지 관측된 2023년 세계 평균기온 상승지표. 그래프의 끝에 기온상승 2도를 넘어선 결과가 나타나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이렇게 놓고 보면 인류는 기후변화 대처 노력은 정말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인류가 노력을 서서히 쌓아올리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올해 세계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도 이상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연구에 따라서는 올해 이미 1.2도를 넘겼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11월에는 한때나마 파리협정에서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2도의 벽조차 깨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올 여름 전 세계를 불태운 폭염을 보면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12일까지 열리는 COP28에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강력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처음으로 세계 각국의 파리협정 목표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이 열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기후목표가 합의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기후변화를 노아의 방주 일화에서 나오는 ‘홍수(flood)’에 비유한다.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홍수에 대비하지 않았던 성경 속 인간들처럼 지금의 인류 역시 기후변화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이러한 위기를 비유한 그림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2016년 당시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리협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앞으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에 고통받을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멈춰서도 안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후인 2030년은 많은 기업과 정부들이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반환점으로 삼고 있는 해다. 그때 가서 이 영화를 다시 돌아봤을 때 우리는 교황의 조언처럼 기후변화라는 홍수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