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폭락으로 이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면서 금융권이 얼어붙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은행과 증권사의 홍콩ELS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며 2019년에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사모펀드 사태로 처음 도입한 ‘배상비율 기준안’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면서다.
 
[데스크리포트 12월] 홍콩ELS 손실 공포 확산에 금융권 냉가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월29일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된 상품에 대해 가산 차감 요인을 고려해 손실액의 최대 80%까지 배상 비율이 정해진 바 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홍콩ELS의 경우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판매된 상품인 만큼 불완전판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다며 금융당국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반시장적 행보라는 지적에도 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1월 29일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도 눈에 잘 안 읽히는게 ELS 상품 약관"이라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ELS 불완전판매 논란을 두고 “ELS는 파는 사람도 상품 구조를 모르고 판 경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은행권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최근 홍콩 H지수의 흐름으로 보면 ELS 상품의 손실이 확정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예컨대 H지수가 1만2000선에 위치했던 2021년 상반기 3년 만기짜리 ELS 지수 상품에 가입했고 손실 구간이 65%라고 가정하면, 2024년 상반기 만기 때 지수가 7800 위에 있어야 원금을 지킬 수 있다.

6일 H지수가 5663.92로 마감한 것을 감안하면 만기까지 40% 가까이 올라야한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 환경이 단기 급반등을 뒷받침할 모멘텀 확보가 어려운데다 지수 영향 주요 변수인 중국 경기상황도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홍콩ELS 2024년 상반기 만기도래 물량은 약 8조4100억 원이다.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 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NH농협은행(1조4833억 원), 신한은행(1조3766억 원), 하나은행(7526억 원), 우리은행(249억 원)이 뒤를 잇고 있다.
 
[데스크리포트 12월] 홍콩ELS 손실 공포 확산에 금융권 냉가슴

▲ KB국민은행의 내년 상반기 홍콩ELS 만기 도래 물량은 4조 원대에 이른다. 사진은 KB국민은행 한 지점의 영업창구 모습. <연합뉴스>


수 조원대 손실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는 가운데 불완전판매 여부와 고객의 재가입률이 배상 적용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단 금융권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사모펀드 및 DLF 사태로 금융소비자 보호 절차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은 ELS 판매 과정에서 녹취, 설명 의무범위 확대, 확인 절차 추가 등 강화된 업무 프로세스를 이행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ELS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있다. 특히 고령투자자는 투자성향분석 단계부터 전체 과정을 녹취하며 원금손실 가능성, 투자 위험, 보수수수료 등을 이해했는지 추가 확인을 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상품 가입 절차를 밟는데 빨라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고객 성향에 따라 2시간 가량 걸리는 경우도 있다”며 “이 모든 과정을 사내 컴플라이언스팀에서 확인해 문제가 된다고 여겨지면 고객에 알려 다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금융상담시스템'을 구축해 AI가 표준스크립트에 따라 상품 녹취 내용을 분석해 불완전판매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ELS가 보편화된 공모형 상품으로 소수 투자자들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와 달리 재가입률이 높아 제한적인 배상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권에 따르면 ELS 상품의 경우 만기 이후 또다시 ELS에 투자하는 가입자가 70~80%에 이른다.

시중은행 영업점 한 관계자는 “ELS 상품에 5번 이상 가입하는 패턴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80%는 넘는다고 봐야한다”며 “재투자자의 경우 투자 위험성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배상 가이드라인을 온전히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내다봤다.

2013∼2014년 증권사들이 판매한 원유 파생결합증권(DLS) 손실 사태의 경우 투자자들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 등을 냈지만 대부분 패소했다. 이유는 원고 상당수가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풍부해 상품 위험도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태진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