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인플레이션은 잡힌 듯, 그런데 고금리와 부채는?

▲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11월27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의 제임스 브래디 언론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11월14일 미국 노동통계국은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월에 비해 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2%를 기록해, 지난 7월의 3.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를 기록한 것은 2021년 전반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앙등한 이래 인플레와의 싸움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이다.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지난 12개월의 소비자물가지수가 3.2%로 지난 2022년의 6.5%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 3개월 동안 매월 평균 20만4천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는 장기적 일자리 창출 추세를 웃도는 규모이다. 이에 따라 실업률은 4% 이하로 196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연율 2.3%로 2000년 이후 평균보다도 높다.

이에 11월을 기점으로 미국 안팎에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드디어 승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준 등 미국 당국이 경제활동이나 취업에서 심각한 쇠퇴 없이 인플레를 잡으려는 노력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가 등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당국에 비판적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치 컬럼비아대 교수 등도 인플레가 어느 정도 잡혔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서 나타난 ‘디스인플레이션’이 무엇 때문인지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던 지난 2021년에는 인플레의 원인을 놓고 두 진영이 논전을 벌여 왔다.

재무부 장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하버드대 총장 등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의 구호안 등 대규모 돈풀기 등으로 자극된 과도한 총수요가 인플레의 원인이라며, 인플레는 지속적이고 장기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 등 강력한 통화긴축 및 노동시장 축소 등 경기둔화만이 인플레를 진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등 미국 경제 당국에 비판적인 진보적인 학자들은 인플레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외부충격에 따른 공급망 교란이 초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경제의 자기 조정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과도한 금리 인상은 경기를 침체시키고, 소득불평등을 악화해 저소득층을 고통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진영의 논전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연준의 연속적인 금리 인상에도 인플레가 진정되지 않자, 서머스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지속적 인플레 팀’이 크루그먼 등의 ‘일시적 인플레 팀’에 판정승한 것으로 한때 평가됐다.

하지만, 지난 10월 미 장기국채 이자율이 5% 이상으로 급등하는 고금리 쇼크를 정점으로 인플레가 급격히 진정되자, 그 평가는 다시 ‘일시적 인플레 팀’의 판정승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11월13일 ‘프로젝트 신디게이트’에 ‘일시적 인플레이션 팀을 위한 우승 기념 경기장 선회’라는 기고에서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을 질타하며 ‘일시적 인플레 팀’의 승리를 규정했다.

그는 중고 자동차 가격 폭등을 예를 들어, 이는 필수부품인 컴퓨터 칩이 코로나19 봉쇄 사태에 따라 공급이 교란돼서 일어난 현상임을 지적했다. 또, 코로나19로 대도시보다는 쾌적한 재택 근무가 가능한 값싸고 넓은 교외 주택에 선호도가 높아지는 등 수요의 변화가 진행되면서도 임대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임대 수요 상승에 금리인상에 더해져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연준의 금리인상 시작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에너지와 식료품 부문도 인플레 폭등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중동에서 가자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인플레는 진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3%대의 인플레가 연준의 목표치인 2%보다도 경제에 좋다는 증거는 사실 없기도 하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금리인상이 공급 측면 및 수요 변화 인플레라는 우리가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디스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조처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일어난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고유가의 망령을 다시 키운 최근의 중동 분쟁 발발 이전에 인플레 대한 승리를 거뒀다“며 “인플레 매파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실업률 증가 없이도 이를 달성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플레가 지속적일 것이라는 주류 경제학자를 옹호하는 제프리 프랜켈 하버드대 교수는 11월17일 ‘프로젝트 신디게이트’에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잡았나’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이번 인플레가 주로 공급망 교란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연준 등의 노력이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프랜켈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인플레를 두고 “더 좋은 설명은 2020~21년에는 상당했고, 2023년에는 누그러진 공급망 교란”이라며 “뉴욕연준이 발행하는 세계공급망압력지수에 따르면 공급망 교란은 2021년에 절정에 달했고, 2022년 4월부터 점차적으로 감퇴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급망 교란 완화로 인해 “총공급 관계에서 우호적인 변화는 낮은 인플레를 가능케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연준이 2022년 3월 이후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다면, 미국 경제는 우호적인 공급 변화에 상관없이, 아마 계속 과열되고, 인플레는 여전히 현재도 높았을 것”이라며 “공이 돌아갈만 곳에 공을 주자. 연준이 그에 대해 일정한 몫이 있다”고 평가했다.

2022~23년 인플레 사태는 이제 코로나19, 미-중 대결,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의한 공급망 교란 및 수요 변화가 원인인 것으로 판정이 나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가 진정된다고 해도, 이제 문제는 고금리와 불어난 부채이다.

연준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5.00%포인트 인상했으며, 6월에 동결, 7월에 0.25%포인트 인상하고, 9월과 11월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현재 연준의 정책금리는 5.25%~5.50%이다. 인플레의 진정 조짐에도 금리가 조기 인하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간에 인플레와 이에 대한 대처로 내놓은 고금리 처방으로 세계경제는 당분간 고금리와 부채 증가라는 큰 짐에 눌려있다. 2022년 현재 세계의 공공 및 민간 부채는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의 330%로 늘었다. 선진국은 420%이고, 중국도 300%가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각국 경제가 돈을 쓸 일이 더욱 많아진다는 점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예언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1월24일 ‘프로젝트 신디게이트’에 ‘우리의 대형 위협의 시대’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주요 국가들이 (진짜 전쟁을 포함해) 적어도 6개의 전투에 매여서, 더 큰 수준의 지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어서, 적자는 증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6개의 전투로 △서방과 중국-러시아 진영의 대결 및 중동분쟁 등 ‘지정학적 불황’ △기후변화에 맞서는 전투 △코로나19 같은 향후 대질병에 대한 전투 △육체 및 지식 노동자 모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 자동화와 세계화가 결부된 글로보틱스의 교란적 효과에 대한 동원 △소득 및 불평등에 대한 싸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세계적인 노령화를 적시했다.

그는 총공급 쇼크와 총수요 변화에 따른 인플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이나 신흥국, 개발도상국 모두가 지출이 증가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은 고금리와 부채 사태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준의 “더 높게, 더 길게” 이자율 정책이 이미 앙등한 채권 이자율을 지속시킨다면, 미국이 피했다는 경기침체는 다시 찾아올 공산이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루비니 교수는 무엇보다도 지정학적 대결의 해결을 촉구했다.

미-중 대결,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등 중동분쟁은 현재 미국 등 서방 대 이란·북한 등이 가세한 중-러 진영의 대결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인플레 사태를 두고 공급망 쇼크가 주요 원인이었다고 판정한다면,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이런 지정학적 대결이 심화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그보다도 더 큰 공급망 쇼크 및 수요 변화를 격발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엔 단순히 인플레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총체적인 교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의길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