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프리즘] 중국에서 멀어지는 K뷰티, 멀리 보고 다시 경쟁력 키워야

▲ 10월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 경기에서 일본에 패배한 한국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얼마 전 일간지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녀농구대표팀은 일본에게 참패했는데 그 원인을 분석한 글이었다. 당시 한국 남자팀은 3진급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 졌다고 한다. 

이 글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국 팀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감독이나 선수들이 팀 성적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170cm 이하의 키 작은 선수는 슛 감각이 아무리 좋아도 외면당한다. 

반면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높이싸움으로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스피드와 득점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들은 ‘방과 후 활동’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커나간다. 이렇게 성장한 단신의 선수들이 빠른 스피드와 창의적 플레이로 경기흐름을 쥐고 흔들고 이들이 일본 프로리그의 최대스타로 등극한다. 

그 차이가 일본팀보다 평균 신장이 4센티미터나 큰 한국이 참패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우리는 ‘눈앞의 승리’에 목말라 한국농구의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큰 그림’을 놓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갑자기 중국시장에서 고전 중인 한국의 화장품이 떠올랐다.
    
최근 더블 일레븐(11.11)으로 불리는 중국 최대의 쇼핑 행사인 광군제가 막을 내렸다. 우울한 일이지만 한국 화장품은 주연이 아니었다. 아니 조연도 못됐다. 우리나라 화장품의 대장급인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은 판매순위 Top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광군제에서 매년 최대매출을 경신하는 주요 브랜드였다. LG생활건강의 '후' 브랜드는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에스티로더, 랑콤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일부 브랜드들은 광군절이 끝나면 실적을 발표했지만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이유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언론보도를 보면 최근 중국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국내 화장품 회사들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마케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광군제 매출도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한다. 

다시 중국의 광군제로 돌아가 보자. 뷰티분야에서 올해의 광군제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브랜드들의 약진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브랜드들의 쇠퇴이다.

중국 로컬 브랜드인 프로야는 로레알을 제치고 티몰과 중국 틱톡인 더우인 등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반면 SK-II, 시세이도 등 최상위권을 맴돌던 일본 브랜드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 화장품에 이어 일본 화장품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진단한다. 물론 중국시장에서 일본 화장품의 인기가 식고 있는 것은 핵 폐수 방류 사태로 야기된 ‘반일정서’가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시세이도의 실적하락은 핵 폐수 사태 이전부터 시작됐고 지난해 순이익도 2019년 대비 반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들은 시세이도가 저가 화장품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하이앤드 제품의 비중을 확대하기도 어렵고 고가 제품으로 복귀를 포기한다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지위를 잃고 점점 평범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화장품의 전철을 일본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뉘앙스다. 

필자는 비즈니스 관계로 중국 화장품 트렌드 추이와 기사들을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프로야나 위노나 같은 중국 화장품의 약진에 “이제 세계시장으로 가자”고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물론 이런 흐름이 중국 특유의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중국 화장품의 성공비결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들은 흔히 중국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중국인들의 ‘애국소비(궈차오·國潮)’ 또는 점증하는 ‘반한감정’을 꼽는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언론들도 중국 뷰티브랜드의 성장이 저렴한 가격과 ‘자국 제품 선호’ 풍조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서 뷰티업계의 최대 화두는 ‘혁신’과 ‘품질’이다. 중국 저장성에서 열린 한 뷰티 컨퍼런스에 참석한 중국의 한 당 간부가 나서서 “혁신과 품질은 업계의 공통된 이해이다. 앞으로 가격 전쟁에 의존하고 품질 없이 마케팅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비즈 프리즘] 중국에서 멀어지는 K뷰티, 멀리 보고 다시 경쟁력 키워야

▲ 두 여성이 11월11일 중국 베이징의 거리에 설치된 광군제 광고판 앞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말하는 혁신은 간단하다. 브랜드는 점점 더 개인화되는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존제품의 수요를 지속적으로 세분화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맞춤형’ 서비스로 가고 있다. 

또한 가격만을 따지던 중국의 소비자들도 변했다. ‘품질 대비 가격’이 중요한 소비의 가치가 되었고, 특히 화장품의 ‘성분’을 꼼꼼히 따진다. 성분 효능이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제품을 보증하기 위한 경쟁 포인트가 됐다. 

의약, 식품 등 분야의 다양한 성분들을 화장품에 접목하는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화장품의 원료는 휴대폰의 칩만큼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성분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 깊이 관여하고 중국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브랜드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 화장품의 성공사례를 살펴보자. 

광군제 판매1위에 오른 프로야는 높아진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성분’에 집중했다. 2008년 설립한 자체 연구소에서 ‘과학적 스킨케어’를 컨셉으로 안티에이징 라인의 히트상품을 개발했다. 아침에는 비타민C로 미백을 저녁에는 비타민A로 리페어 하는 아이크림도 인기를 끈다. 

또 다른 로컬 브랜드인 화씨즈는 화장품에 중국전통문양을 새기는 등 중국식 미학을 접목하고 리자치 등 유명 왕홍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중국의 색조화장품과 향수 분야에서 대표브랜드가 됐다.

중국 시장에서 로레알이나 랑콤 같은 글로벌 명품들은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광군제에서도 프로야에게 1위 자리를 내어 주긴 했지만 로레알과 랑콤, 에스티로더는 나란히 2-4위를 유지했다. 

이들이 ‘글로벌 명품’이라는 인지도만을 의지해 중국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소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브랜드들도 있지만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의 소비자와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하나가 중국 로컬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다. 

에스티로더는 지난 9월 중국 로컬 브랜드 코드민트 등 2개사에 지분투자를 발표했다. 

로레알도 지난해 5월 혁신적인 뷰티 기술 투자를 목적으로 중국 시장에 투자회사를 설립한데 이어 중국 혁신 생명공학기업과 향수 브랜드에 투자했다. 로레알은 2020년부터 중국에서 ‘로레알 빅뱅 뷰티 기술 창조 캠프’를 진행하는 등 중국 뷰티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제6회 중국 국제수입 박람회(CIIE)는 로레알 글로벌 뷰티 기업들이 자신들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제품들을 중국에 첫 선을 보이는 경연장이었다. 로레알 같은 회사는 아예 ‘혁신 인큐베이팅’ 구역에 부스도 차렸다. 로레알 차이나의 CEO인 페이 보루이가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는 곱씹을 만하다. 

“중국 시장은 로레알 그룹 사업 성장의 중요한 엔진이다.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소비자 그룹을 확장하, 더 큰 시장 잠재력을 활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혁신’이 핵심이다. 지난 5년 동안 중국 소비자 시장의 성숙도는 크게 향상됐고, 이는 중국 시장에 혁신적인 제품과 고품질 서비스를 가져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주요 뷰티 브랜드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시장에서 고전하자 글로벌 사업의 지형을 미주와 동남아시장 등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한다. ‘숫자’로 이야기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대응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5천억 위안 규모의 세계 2위의 뷰티 시장인 중국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바른 선택일까. 

나는 한국의 뷰티 브랜드들이 ‘한국의 농구’처럼 단기적인 실적 올리기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글로벌 브랜드들처럼 더 깊게 ‘중국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중국 시장에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가 동남아와 유럽 등 다른 시장에 눈을 돌리면 K-뷰티가 살아날까. 아마도 자국시장에서 경쟁력과 자신감을 키운 C-뷰티가 머지않은 미래에 몰려올 것이고 그들과 다른 시장에서도 경쟁해야 할 것이다. 결국 중국시장에서의 화두처럼 K-뷰티가 ‘혁신’의 글로벌 리더가 되고 중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물론 한국의 화장품업체들의 중국 시장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중국향 뷰티 회사 대표의 말이 귀를 맴돈다. 

“이제는 한국 브랜드들은 중국에서 더 이상 보호 ‘마스크’가 없습니다. 예전처럼 ‘한국 프리미엄’은 없다는 겁니다. 브랜드 대 브랜드, 제품 대 제품으로 진검승부를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성분’과 ‘효용’으로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아직은 중국에서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 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