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회용 빨대, 일회용 정부

▲ 종이 빨대 제조업체 대표들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플라스틱 사용 규제의 계도기간 무기한 연기 철회와 국내 종이 빨대 제조·판매 업체 생존권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저물고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찾는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뜨거웠던 여름 자주 커피숍에 들러 아아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아아를 먹을 때 사용하는 빨대의 재질이 매장에 따라 플라스틱과 종이로 다르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함께 간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만 신경을 쏟았다.
 
그러다가 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다. 빨대가 다 같은 빨대가 아님을. 그제서야 음료를 먹을 때 재질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플라스틱 빨대에서는 눈치 챌 수 없었던 다소 불편함을 주는 종이 빨대. 입술은 쑥 도드라지고 볼은 쏙 오므라지도록 어는 정도의 흡입력이 필요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끔 종이 보풀을 입술에서 걷어내야 하는 수고로움도 생기곤 했다. 아마도 액체에 담겨있거나 닿은 부분이 종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부풀어져서 통로가 좁아진 이유인 듯하다. 

하지만 작은 실천을 통해 환경 보호에 조금이나마 동참한다는 위안이 그 불편함을 누그러뜨렸다.

정부는 지난 7일 종이컵을 일회용품 사용제한 품목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에 대한 사용금지 단속시행을 돌연 유예하는 ‘일회용품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내 눈에는 말로만 유예이지 사실상 ‘일회용품 제로 정책’을 폐기하는 걸로 보였다. ‘과태료 부과’에서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정책’으로 전환한다고 밝히며 일부 자영업자의 시설 투자 비용에 따른 부담과 소비자 불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세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표의 주체가 ‘산업부’가 아닌 ‘환경부’라는 사실이다. 부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기모순이 아닐수 없다. 한때 세간에 떠돌던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다름 아니다. 

총선을 앞둔 소상공인과 국민을 편가르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에 억울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환경부가 나설 일은 아니지 않는가?

플라스틱과 비닐 등 일회용품에 의한 환경 파괴는 꼭 수치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생태계 다큐멘터리 한 시간 시청으로 충분하다. 한 해에 수억 톤이 쌓이고 또는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는 통계수치보다 해양 생물 사체의 위(胃)에 남아있는, 아마 죽기 전까지 참을 수 없을 고통을 주었을 쓰레기를 보면 숫자는 너무 점잖아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작년 10월 환경부 의뢰로 여론조사기간 엠브레인퍼블릭이 전국 만 15세 이상 69세 이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원순환 분야 정책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회용품 사용량 절감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97.7%,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응답자가 87.3%에 달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높은 수치는 자발적 참여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빨대 중 선택에 대한 수치가 아니라 종이 빨대를 강제하면 불편하더라도 따르겠다는 강제된 참여 의지이다.

친환경 정책과 기후위기 대응은 먹고 사는 문제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한가하고 철없는 주장으로 보일 수 있다.

이렇듯 환경과 기후에 대한 주장이 공허해지는 약점을 파고들어, 유럽의 우파 정당들이 “친환경 정책이 경제를 망친다”라며 환경과 경제를 갈라치기 하여 약진 중이다. 

부러우니 닮고 싶은 것인가? 탈원전 이슈로 진영을 대립시키고 기후위기 대응을 진영논리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치적 성향은 기후위기 및 환경파괴에 대한 심각성의 종속적 변수가 되어서는 안 되고,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나누어야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공통 분모가 돼야 한다.

또한, 정부의 정책 시행을 앞두고 서둘러 많은 시간과 설비를 투자한 ‘친환경 소비재 제조업체’의 낙담과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기고] 일회용 빨대, 일회용 정부

▲ 지남섭 미래와선택 성북인포럼 대표.


정책의 성공은 신뢰에 좌우된다, 그 신뢰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견인하는 의지의 마중물이며 정책 성공의 주춧돌이다. 그래서 신뢰는 만들기보다는 쌓는다는 서술어와 어울린다. 

하지만 이처럼 행정에 무책임하고 의무를 저버린다면 어는 경제 주체가 믿고 따르겠는가? 

특히, 환경과 기후 정책은 미래세대를 위한 의무인 만큼 일관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수행하며 적정한 규제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어떠한 정책이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경제 주체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생존을 위한 산업 전환의 정책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주체를 폭넓고 깊이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과 소임이지 정책 폐기가 답은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Remembering not to lose preciousness as being deceived by familiarity.)”라는 글귀가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은 위 글귀에서 ‘소중함’을 ‘생존’으로 바꿔야 할 만큼 위태롭다. 이런 식으로 기후위기와 환경파괴가 초래할 파멸을 고민하지 않은 채,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보기 위해, 찔러보고 떠보는 일회성 정책으로 틀 짖고 편가르는 정치는 폐기됨이 마땅하다. 

정책 변화를 당부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기해야 할 것이 썩지 않는 일회용 빨대뿐만 아니라, 변화 없는 일회용 정부가 우선일 수 있다. 지남섭 미래와선택 성북인포럼 대표 겸 고려대학교 산업경영공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