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자본주의] 디지털 시대, ESG 정보 관리도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정보와 ESG 투자상품 통계 등 ESG정보를 한 곳에서 조회할 수 있도록 만든 'ESG 포털 서비스' 홈페이지 초기화면. < ESG포털 홈페이지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갑질. 최근 언론에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뉴스 가운데 하나다. 임금을 계좌이체나 지폐가 아닌,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동전 갑질’도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동전 갑질’ 사례가 하나 발생했다. 정비업소에서 근무하던 한 남성이 일자리를 그만두며 임금체불을 고발하자 해당 업체의 사장이 기름 묻은 1센트짜리 동전 9만 개로 급여를 지급한 것이다. 

1센트의 무게가 25g정도라고 하니, 해당 남성은 9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 가량을 225kg의 동전으로 받은 것이다. 최근 접해 본 ‘동전 갑질’ 사건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런 류의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뭐가 문제일까? 돈은 다 같은 돈인데 말이다. 실제로 계약서에 급여를 지폐나 계좌이체로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다면, 동전으로 임금을 지급한 업체의 사장을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돈은 다양한 속성을 가진다. 돈이 가진 ‘가치의 저장 수단’이라는 측면만 고려한다면,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나 1센트짜리 동전 1만 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다 100달러의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다. 물건 하나를 사기위해, 100달러짜리를 내미는 것과 계좌에 연결된 페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그리고 25kg의 동전을 지급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비단 한 필을 구매하기 위해 쌀 열 가마니(800kg)를 지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듯, 기술의 발달과 함께 계좌이체, 신용카드 및 페이 서비스 등이 일상화되었다. 

이제 동전은커녕 지폐조차 구경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우리가 동전 갑질에 분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보의 가치와 디지털화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못지않게 어디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도 정보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대학교 도서관의 문서 저장고에 직접 찾아 가야지만 열람할 수 있는 고문서 속의 정보와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화 된 정보의 가치는 같지 않다. 

물론 ‘희소성’만 생각한다면 전자의 가치가 높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지식전파의 수단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후자의 가치가 월등히 높을 것이다. 

디지털화 된 정보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구글이 2004년에 시작한 ‘도서관 프로젝트’다.

구글은 세상의 모든 책을 스캔하여 공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전세계 주요 도서관의 장서를 스캔하여 공개했다. 정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광학문자인식(ORC)이라는 기술을 적용해 책 속의 문자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 프로젝트’로 이제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해당 대학 도서관에 있는 문서를 언제든 볼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일 년에 한 두 번 볼까 말까 하던 고문서들도 이를 필요로 하는 전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접근성이 높아졌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아울러 두꺼운 책을 한 장, 한 장 손으로 넘겨가며 찾아야 했던 책 속의 정보를 키워드 검색만으로 쉽게 찾고 분석할 수 있게 됐으니 편의성과 활용성도 크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ESG 정보의 중요성 

도이치방크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세계 투자자금의 90% 이상이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 즉 ESG 정보를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ESG 투자 흐름을 반영해 기업 ESG 정보공시 의무화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U는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을 제정하여 종업원 250인 이상 기업의 ESG 정보공시를 의무화했고,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사업보고서(Form 10-K)를 통한 기후정보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도 산하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올해 6월 지속가능성 공시(S1, S2)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한국회계기준원 산하에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설립하고, IFRS 기준 채택을 준비 중이다. 

금융기관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는 상장기업은 국내에만 2000여 개에 이른다. 전세계적으로는 약 5만8천여 개의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이 돼있다.

이에 더해 기업이 관리하고 공시해야 하는 ESG지표가 최소 수십 개 이상이라는 점과 이러한 데이터가 매년 쌓인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ESG데이터는 그야말로 빅데이터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 즉 사람의 손으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비효율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ESG공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정책입안자들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만 뒤쳐진 ESG 정보 공시 디지털화

미국 SEC는 기후공시규정 초안에 기후정보 공시에 재무보고용 국제표준언어인 XBRL(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를 적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XBRL은 보고하는 정보에 표준 식별코드, 즉 태그를 달아 정보이용자가 대량의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감독기구는 공시대상 기업에게 어떠한 데이터를 어떤 항목에 보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부 분류체계(taxonomy)를 제공하고 보고기업은 분류체계에 따라 공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EU도 기업 ESG 공시에 ‘디지털 분류체계에 따른 디지털화된 태그가 부착된 지속가능성 데이터의 보고’를 요구하고 있고, 관련 준비를 진행 중이다. IFRS재단도 디지털ESG정보공시를 위해 필요한 분류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회계 및 재무영역에서 XBRL은 낯선 용어는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국가에서 재무제표 보고에 XBRL 적용을 의무 또는 권고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부터 재무제표 보고에 XBRL적용을 의무화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비금융기업의 재무제표 본문에 XBRL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금융기업 및 재무제표 주석에도 XBRL 적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Open Dart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화된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기업 간 비교·분석과 핀테크 기업을 위한 재무정보 오픈AP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해외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ESG 정보에 대한 XBRL 적용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ESG 데이터에 대한 XBRL 적용 효과는 다양하다. 먼저 기업의 보고부담 감소다. XBRL을 적용한 의무공시가 정착되면 문화계에서 말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가능해진다. 

기업이 표준화된 ESG 데이터를 한 번만 공시하면 평가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ESG 정보 이용자들이 손쉽게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업에 대한 별도 정보공개 요구는 줄어들 것이다. 

두 번째는 ESG 데이터의 투명성 및 신뢰성 향상이다. 디지털화 된 정보는 쉽게 눈에 띈다. 데이터의 비교∙분석 과정에서 누락, 왜곡된 데이터의 발견 가능성이 높아지면, 감독기관의 점검도 용이해진다. 잘못된 데이터의 발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의도적 왜곡, 누락 및 보고실수가 줄어들어 정보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향상된다. 

다음은 ESG 평가의 전반적 수준향상이다. ESG 평가 시 가장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는 작업은 평가자체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이다. 평가기관마다 평가 결과가 들쑥날쑥한 원인 가운데 하나도 바로 데이터 수집 능력의 차이다. 

XBRL이 일반화되면 데이터 수집 부족에 따른 평가 수준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평가기관의 비교우위 요소도 기존의 데이터 수집능력에서 평가능력 자체로 옮겨갈 수 있어 ESG 평가기법의 고도화 및 다양화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은 ESG 데이터를 활용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활성화다. 공공데이터의 개방과 그에 따른 빅데이터 스타트업의 활성화 양상을 보면, 그 효과를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팩스로 확진자 정보를 집계하던 일본은 전세계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가 집계한 정보를 믿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그 동안 ESG 데이터는 PDF로 만들어진 보고서를 사람이 일일이 찾아가며 발췌하고 정리하는 수작업을 거쳐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 국가들은 ESG 정보의 디지털 전환에 나서고 있다. 일본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ESG 정보의 디지털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
 
태한 수석연구원은 2011년부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재직 중이다. 국민연금법, 자본시장법, 전기사업법 등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및 기후변화 대응 정착을 위한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정보공개 플랫폼인 CDP와 RE100, SBTi, PCAF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한국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을 공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