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체력 effect] 성인이 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뭘까?

▲ 나는 이미 두 번째 책 ‘마녀엄마’를 통해 자식에게 잔소리 하는 대신 “부모나 먼저 잘 살자”고 천명했다. 하지현 전문의 역시 ‘경제적 안정, 신체적 건강, 좋은 관계를 가진 부모’야말로, 성인이 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휴우, 건강과 관계는 그나마 마련되었으니 노후에 자식 도움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나 고민해 보련다. < Pexels >

[비즈니스포스트]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꾸준히 동기들을 만났다. 

젊은 시절엔 대화 주제가 중구난방이었다. 누구는 직장 문제를 털어 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연애중인 상대에 관해 고민을 나눴다. 술이 좀 들어가면 미래의 경제 좌표를 그리거나 여전히 나라 걱정에 울분을 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야기 내용이 엇비슷해졌다. 한 10여 년 넘게 주요 화제는 자식들 얘기였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엔 그나마 이런저런 자랑과 걱정거리가 등장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오직 성적과 대입만이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고맘때 자식이 받아오는 성적은 곧 부모의 노력과 능력처럼 보였다. 과정이나 수단을 떠나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승리감을 느꼈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처럼 그동안 치른 고생이나 희생을 일시에 보상받은 기분이랄까.

애면글면했던 대학 입시도 어느새 머나먼 옛일이 되었다. 딸들은 진작 졸업을 했고 아들들은 군대를 다녀왔다.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밥벌이를 하는 자식들도 꽤 된다. 그러니 60을 향해 나이 들어가는 대학 동기들은 이쯤이면 자식 걱정에서 좀 벗어났을까. 

스물일곱에 결혼하고 스물아홉에 출산을 한 나로선 서른 가까이 된 아들과 한집에서 살리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성실하게 회사는 다니고 있는데 조만간 독립하거나 결혼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방 하나 내준 하숙생이려니 여기며 잘 지내고 있다.

친구들마다 속사정은 다르다만 어른이 된 자식들 문제에서 여전히 놓여나질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언제까지 공부만 계속 하겠다는 건지 몰라 갑갑하단다. 서른도 안 된 딸이 비혼주의를 선언했다며 우울해 하는 친구도 있다. 

간신히 좋은 직장에 들어간 자식이 금세 그만둘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들이 부모와는 전혀 의논도 안 한 채 결혼 날짜를 잡고 혼인 신고를 해버렸다며 괘씸해하는 경우를 봤다. 결혼하고 나서도 부모 집에다 자기 짐을 잔뜩 남겨둔 딸 얘기도 들었다.

자식들 문제만 걱정이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사실은 본인 코가 석 자다. 예상보다 빨라진 퇴직, 서먹서먹하기만 한 부부 관계, 터무니없이 부족한 노후대책, 건강검진 때마다 나빠지는 건강 수치. 거기다 ‘인지저하증’에 접어든 부모가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도 허다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정신의학과 전문의 하지현은 동시대 중년 부모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중장년이 된 부모는 자녀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내게 의지하는 연로한 부모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느끼면서 신체적, 심리적 변곡점을 지나는 삼중고를 감당해야 한다.”

‘마치 세 개의 공을 들고 외발 자전거를 탄 채 저글링을 하는 것’ 같은 이런 어려움이 유독 나만 감당해야 할 불행이라면 얼마나 억울한가. 하지만 하늘에서 홀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닌 이상 사랑하는 가족이 나이 들고 연로하면서 누구나 맞닥뜨리는 인생의 한 과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몰아닥친 이 숙제들을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현명하게 풀어나갈까. 20여 년 동안 진료실에서 다양한 부모와 자녀를 만나 상담해온 하지현 전문의는 최근에 출간한 책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을 통해 특히 어른이 된 자녀와 관계 맺기에 다양한 사례와 해결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자녀의 대학 입시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 뒤로 취업, 결혼, 손주 육아 등 더 본격적인 문제들이 펼쳐지면서 나이든 부모 마음을 심란하게 뒤흔든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다 끝난 줄 알았던 경제적 지원이 계속 필요할 경우다. 

대학 등록금 대신 사업 자금을 대달라고 아우성치거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부중’ 프리패스를 계속 방문에 붙이고 있다. 그런 자녀를 어디까지 도와줄 것인가. 자칫하다간 부모 노후까지 타격 받을 수 있는 심각함을 야기한다. 이럴 때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더라도 부모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둘 다 살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성인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어떤 화제를 꺼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에게는 이런 팁을 전한다. 먼저 아버지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단다. 케케묵은 ‘라떼는 말야’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친구 관계 같은 일상과 고민을 들려줘라. 이때 자녀에게 교훈을 주거나 가르치려는 욕심을 부리면 역효과가 난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너무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도록 조심하란다. 본인에겐 불쑥불쑥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겠지만 자식은 철없던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듣기 싫어할 수도 있다. 자녀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부모는 조언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는 잔소리라고 여기는 말들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대개의 부모가 무심코 입에 달고 사는 말버릇이기 때문이다.

 “잘 좀 해봐라, 좀.”(아직 충분히 잘하고 있지 못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평소 흐리멍덩하니까 그렇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나는 이미 두 번째 책 ‘마녀엄마’를 통해 자식에게 잔소리 하는 대신 “부모나 먼저 잘 살자”고 천명했다. 하지현 전문의 역시 ‘경제적 안정, 신체적 건강, 좋은 관계를 가진 부모’야말로, 성인이 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휴우, 건강과 관계는 그나마 마련되었으니 노후에 자식 도움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나 고민해 보련다. 마녀체력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