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태의 시사 줌인] 꿈의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 붕괴, 서울은 괜찮을까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인근 대로변에 홈리스들 거처로 보이는 텐트가 줄지어 들어선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텐더로인(Tenderloin) 소재 작은 숙박업소에서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제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매체 SFGATE의 끈질긴 추적취재의 결과였다.

최근 스프링클러를 작동한 적이 없다는 숙박업소 측의 주장을 SFGATE 측이 동영상 자료로 반박하면서 결국 숙박업소 측이 이를 인정하고 시스템을 제거하기에 이른 사건이었다.

우리로서는 다소 기이한 이 사건의 발단은 인근의 노숙자들이었다. 주변에 노숙자들이 늘어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숙박업소 측이 하루 몇 차례씩 스프링클러 가동을 실시했고 SFGATE 측이 이를 문제 삼았다. SFGATE 측은 노숙자들의 건강과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에는 몽고메리 스트리트에서 노숙자에게 물을 뿌렸던 한 갤러리 주인이 배상과 사회봉사 이행조건으로 검사로부터 기소를 면한 바 있다.

심각한 지역갈등의 문제가 될 만큼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증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집계수치인 PIT 카운트(Point-in-Time Count)에 나타난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수는 7754명이었다. 노숙 경험이 있었던 사람은 2만여 명에 달했다. 올 들어 그 수는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에 빈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지역 연구소인 Budget and Legislative Analyst Office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샌프란시스코의 공실 주거 수는 6만1493개로 2019년의 4만 개보다 51.5%나 급증했다. 공실률 15%로 미국 주요도시 중 최고치다.

노숙자와 주택공실은 동일한 원인의 상반된 측면이다. 그 기저에는 팬더믹이 있다. 팬더믹은 벤처기업의 쇠퇴과 재택근무의 확산이라는 예기치 않던 결과를 가져왔다. 오피스에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직장인들 역시 주거비용이 낮은 인근도시로 이동을 시작했다. 팬더믹은 끝났지만, 재택의 효능을 맛본 벤처기업과 직장인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난 1분기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공실률은 29.4%였다. 계약상으로만 공실을 면하고 있는 실질 공실 오피스까지 감안하면 34.6%에 이르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기업인 CBRE측은 샌프란시스코의 공실연면적이 3500만 평방피트라고 추정했다. 여의도 순면적 크기를 넘어서는 수치다. 셋 중 하나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퍼블릭 코멘트(Public Comment)는 팬더믹 발생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8개월 동안 약 8만9천 가구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 인구센서스 조사에서도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7.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과 2022년 사이에도 역시 0.3%가 감소했다.

인구감소의 결과는 참혹했다. 기업으로부터의 세수가 줄고 교통승객수가 감소했다. 점심식사 수요는 물론 업무 후 쇼핑까지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비즈니스 방문객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최고 수준이던 2022년 4월 샌프란시스코의 평균 주택가격은 전년대비 11% 상승한 160만 달러였다. 끝없이 오를 줄만 알았겠지만 올해 4월에는 130만 달러로 17.3%나 폭락했다.

경제력이 되는 층부터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 못한 층의 일부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보행인으로 언제나 활기에 넘치던 거리는 이제 노숙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나홀로 걸어가야 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보행인의 감소와 노숙자의 증가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마약과 절도, 노상 방뇨, 배설 등이 일상화가 되었다. 지난 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20명으로 집계됐다. 뉴스위크는 올 1분기 동안 텐더로인에서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200명 중 159명이 펜타닐로 인한 것이라 보도했다.

펜타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흔한 마약이 돼버렸다. 한 현지 원주민은 샌프란시스코가 한때 문화중심지에서 기술중심지로, 이제는 펜타닐 중심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한탄하기도 했다.

절도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소매점이 사라지는 또 다른 악순환이 자리를 잡았다. 평범한 시민들까지 절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매출감소가 겹치면서 2021년 타겟(Target)이 영업시간 단축을 발표했다. 

이것을 신호로 월그린스(Walgreens), 홀푸즈(Whole Foods), 노드스트롬(NordStrom), 올드 네이비(Old Navy) 등 유력 소매업체들이 줄줄이 매장축소 내지는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950달러 이하의 절도에 대해 경범죄를 적용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발의안47(Proposition 47)은 절도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매장에서 훔쳐 개인간 온라인 거래로 파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올들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인률은 지난 해 같은 기간 대비 8% 가까이 증가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27% 증가한 수치다. 강도사건 역시 전년 동기대비 12% 증가하고 있다. 그마나 강간과 폭행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망가질 만큼 망가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 상태다. 도시의 회복은 이제 그들에게는 주요한 과제거리가, 지켜보는 다른 나라로서는 커다란 관심거리가 돼버렸다.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상태가 과도하게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도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거주하면서 생활을 확장하거나, 신규로 유입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사업 관련 세수가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으며 오프거래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이 어둡지 만은 않다는 견해들도 나오고 있다. 시가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인다면 도시회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들이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시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 2025년까지 향후 2년 동안 11억 달러를 쏟아 붓기로 결정했다. 몇 개의 회복센터를 짓고 최근에는 길거리 치료팀을 운영하는 등 약물중독자들을 줄이기 위한 대책들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사무실을 주거 겸용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샌프란시스코의 문제는 지방정부 당국의 정책적 실패에 기인한 바가 가장 클 뿐더러, 현재 제시되고 있는 대책들도 근본적이지 못하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회복센터 몇 개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져보면 팬더믹 이후 주요 도시의 공동화 현상은 샌프란시스코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 주요 10대 도시 모두 같은 현상을 겪었고, 뉴욕의 경우만 하더라도 팬더믹 초기 35만여 명이 도시를 이탈했다.

다른 도시들이 팬더믹 이후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샌프란시스코만 그렇지 못한 데에는 이 도시만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주거비다. 주거임대료는 조사기관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팬더믹 초기까지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월 평균 임대료가 4060달러에 달했다.

비싼 주거비용은 뉴욕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여기에 맞물리는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높은 세금정책이다. 개인소득세의 경우 연간 20만 달러 소득자라면 연방세와 주세, 그리고 기타 잡세를 합해 공제해야 할 금액이 7만 달러를 조금 넘는다.

월 주택 임대료 4060달러를 그대로 가정한다면 20만 달러 중 써보지도 못하는 돈이 12만 달러에 이르는 셈이다. 적게 벌더라도 덜 뜯기면서 살고 싶다는 심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 밸리의 간판기업들 또한 하나 둘씩 발을 빼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트위터(엑스의 전신)를 인수했지만 정작 주력기업인 테슬라는 텍사스주 오스틴의 790만 평방미터 부지로 옮겨갔다. 자신의 거처도 함께 옮겼다.

오라클, 맥프리, 휴렛팩커드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이탈행렬에 동참했다. 애플이 텍사스에 자사 두 번째 규모의 캠퍼스 건립계획을 내놓았고, 아마존 역시 수 년 내에 휴스턴을 자사의 주요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반대로 그동안 기업들에게 촌구석 취급을 받던 텍사스는 손님맞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리한 기후조건, 충분히 넓은 가용 토지, 이로 인한 낮은 부동산 가격내지는 주거비용 등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주 정부의 돋보이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텍사스주의 낮은 세금정책은 가장 적극적인 기업유치 정책이다. 연방세와 주세를 합해 텍사스주의 법인세는 21%로 미국에서 가장 낮다. 연매출 118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 사이의 도소매업자에게는 0.375%의 프란차이즈세를 과세하고 있다, 118만 달러 이하가 되면 아예 낼 필요가 없다.

텍사스는 개인소득세가 없는 주 중의 하나다. 집세까지 감안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직장인으로서는 반쯤 월급이 깍이는 한이 있더라도 텍사스주로 옮겨가고픈 맘이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텍사스주는 RE100과 관련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산업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RE100은 좋던 싫던 조만간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삼성전자 텍사스 반도체 공장과 같은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반면 샌프란시스코 당국의 정책적 무능은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는 적정 비율의 주거시설을 감안하지 않고 지나치게 높은 사무실 위주의 건물을 지어왔고, 그것이 높은 주거비용의 일차적인 원인이 됐다. 뒤늦게 사무실에 주거를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라지만, 여러 가지 법률적 제약을 비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런던 브리드 시장은 민주당 출신이면서도 계속해서 극우적 성향의 정책을 내고 있다. 가령 지난 2일에는 약물갱생 프로그램에 등록하지 않은 중독자에 대해 약물치료 관련 복지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중독자들은 공공연히 약물을 사용하고 공공질서를 어기면서 실효성 없는 처벌을 받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세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태에서, 감세정책으로 떠나는 기업이나 직장인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이들을 붙잡아 둘 만한 특별한 정책개발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당국은 무능하고, 샌프란시스코의 회생은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는 몇 가지 점에서 서울과 닮았다.

굳이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서울 역시 젊은 직장인들에게 지나치게 주거비용이 높은 곳이다. 친원전이니 탈원전이니 정책적 비난만 주고받는 중에 국내에서는 RE100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담론조차 실종된 상태다. 정부의 연구개발 삭감조치는 영국의 학술지 네이처가 걱정을 대신해줘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국내 기업이나 고급인력들이 떠날 곳이 어디냐는 생각은 착각이다. 삼성전자의 텍사스 공장은 사실상 이전이다. 기업도, 개인도, 맘만 먹으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그 어느 곳으로든 한국을 떠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설마, 서울이 샌프란시스코처럼 될 리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한 때는 꿈의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 역시 지금처럼 망가져버릴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인들 했었을까? 조광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