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금리인상 끝났다는데 장기채 위기론 확산, 고금리 충격 시작됐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앞줄 왼쪽)이 지역 경제 주체들과의 만남 일환으로 10월2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요크를 방문해 케빈 슈라이버 요크 카운티 경제동맹 총재 등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금리인상이 끝났다는데 뒤늦게 고금리의 충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이나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장기채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지난 3일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세계 금융위기 전야인 지난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채권 및 주식의 동반하락과 달러 상승이 가속화되고 있다. 10년 국채가 3일 0.119%포인트가 오른 4.801%까지 급등하고, 4일에는 그보다 높은 4.88%까지 치솟았다.

이는 금융위기의 원인이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시작되던 2007년 8월 이후 최고치이다. 30년 국채는 4.95%까지 올라, 5%대로 질주할 태세도 보였다.

미 국채 금리는 올해 5월 초까지만 해도 3%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8월 4%대를 넘어선 데 이어 이제 5%대 돌파를 시험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자, 금리와 반대 방향인 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고금리 상황이 되자, 주가 역시 급락하고 있다. 채권과 주가의 동반 하락이다.

지난 8월 이후 미국 증시의 대표지수인 에스앤피가 거의 8%나 떨어졌다. 올해 들어 쌓아온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달러화가 강세이다. 엔화는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기도 했고, 연말에는 160엔까지 진입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연준이 지난해 3월부터 1년6개월 동안 무려 11차례나 공격적으로 5%포인트나 금리를 올려서, 고금리 자체는 새삼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고금리로 인한 시장의 충격과 동요가 왜 이제 나타냐는 것이다. 시장 금리는 연준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던 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 국채 등 시장 금리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지난 7월을 마지막으로 끝났다고 한 이후로 갑자기 급등하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는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보다는 조만간 금리가 인하된다는 전망이 옅어지고 고금리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유력하다. 즉, 연준 금리인상의 마지막인 지난 7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이후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깨지고 고금리 지속 상황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연속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가 식지않아서 인플레 가능성이 여전한 데다, 채권을 소화할 투자자들의 능력에 압박을 가하는 막대한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1일 발표된 노동부의 고용 통계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지난 8월에 18만7천개 등 지난 1년 동안 모두 31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며 여전히 견조한 상태이다. 지난 8월 미국의 실업률은 3.8%로 7월의 실업률 3.5%에 비해서는 올랐으나, 여전히 완전고용 상태이다. 가구 소비도 7월에 0.8%나 상승해, 지난 6월의 0.6%에 비해 오히려 상승했다.

이 때문에 미 연준은 8월 들어서 금리의 조기인하 가능성을 일축하고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는 매파 발언을 던져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0일엔 연내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다.

단기채권과 달리 장기채권에 추가되는 추가이윤인 ‘텀 프리미엄’ 상승도 고금리 장기화를 알리는 신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외국인, 미국 은행, 투자회사들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헤지로 구매하는 미 국채 수요가 줄었다. 고금리의 장기화로 국채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 연준이 2022년 3월 이후 채권을 매입해 주는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매입했던 채권들을 떨어내는 것도 채권 금리를 올리고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도 큰 요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예산 소요가 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만들면서 재정 적자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6월 말 2023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의 재정 적자 폭이 국내총생산(GDP)의 5.8%(2022년은 3.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정부 부채는 올해 6월 현재 32조 달러(약 4경3000조 원)에 달한다. 미국의 재정 적자 폭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소화하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를 배태한 경제환경이 바뀌어 이른바 중립금리 자체가 올랐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를 자극하거나 하강시키지 않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중립금리는 지난 30년간 낮았는데, 1년6개월 동안의 급격한 금리인상에도 경기와 인플레가 완화되지 않자, 중립금리 자체가 올랐다는 의견이 시장에서 다수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분석가들은 인용해 지적했다.

이 때문에 현재의 금리 수준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니고,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 세계화, 노동력 제공에 양호한 인구 구조, 풍부하고 값싼 에너지 공급 등이 그동안의 저금리와 낮은 인플레를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및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대결로 이런 요인들이 사라졌다.

최근 고금리의 충격은 장기채권 가격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시장에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 장기국채의 가격 하락이 미국의 역대 금융시장 붕괴 때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10년만기 미 국채 가격은 지난 2020년 3월 이후 무려 46%나 떨어졌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분석했다. 이는 2000년 초 닷컴버블 붕괴 이후 미 주식의 49% 하락에 버금간다. 30년 국채는 53%나 떨어져, 2008년 금융위기 절정이던 때의 자산 가격 하락인 57%에 버금간다.

장기채 가격의 현재 손실은 1981년 이후 두 번째 큰 규모이다. 1981년에 볼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금리를 무려 16%까지 급격히 올렸다. 현재의 장기채 가격 하락은 1970년대 이후 금융시장에서의 7차례 하락장세의 평균 하락치인 39%를 웃돈다. 특히, 지난해 연준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증시가 하락해 에스앤피 지수가 25%나 떨어졌다. 현재, 10년 장기채의 46% 하락은 이를 크게 능가한다.

46% 하락이 3년에 걸친 것이기는 하나, 그 절반 이상은 최근 2개월 동안 이뤄졌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이런 충격은 2020년 5월에 발행된 30년 국채 가격이 절반 이상이나 떨어져, 달러당 45센트에 거래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투자회사인 BTIG의 40년 베테랑 투자전문가인 토머스 디 갈로마는 블룸버그 통신에 “솔직히 말해서, 10년 국채의 이자율이 5%대가 될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으로 생각되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상황에서 (고금리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고 토로했다.

이런 장기채 폭락은 미 국채 등 장기채를 포트폴리오에 많이 담고 있는 금융회사나 투자회사들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장기채 폭락으로 미국 은행들의 채권 포트폴리오에서 장부상 손실은 현재 4000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이는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던 때에 비해서도 무려 10%가 증가한 것이다. 대부분의 은행, 특히 대형 은행들은 이럴 경우에는 장기국채를 팔지 않고 보유해서 손실을 현실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런 장부상 손실이 은행의 건전성을 당장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 국채에 투자했다가 금리 인상으로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중소은행에게는 당장 생존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벤처캐피탈들로부터 자금을 받아서 1200억 달러 규모로 국채에 투자했었다. 금리가 오르자 포트폴리오에서 가치가 150억 달러가 증발했고, 이는 이 은행의 전체 자본금 규모에 해당한다.

대형은행인 아메리카은행(BOA)도 채권투자의 미실현 손실이 거의 11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때문에 주가는 52주 최저치인 26달러를 밑돌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주가는 지난 한달 동안 8.5%나 급락했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은 고금리로 야기됐는데, 그 고금리 충격이 심화되면 다시 중소은행부터 시작되는 금융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

고금리의 장기화는 결국 연준과 미 정부가 추구하는 경기 연착륙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경제분석가들은 지적한다. 고금리는 미국 정부의 경기 대처 능력이나 소비자의 주머니를 마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8년 동안 미국 정부 부채는 두배가 늘어난 26조 달러이다. 현재 고금리가 지속되면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미국 정부의 채권 발행 능력을 줄이고 경기 조절에 대처할 능력도 감축한다. 가계에 최대 부담인 주택모기지 이자율도 이미 30년 기준을 7.5%여서 23년 만에 최고치이다.

고금리의 충격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그 충격이 또다른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의길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