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대통령에 ‘맞짱’ 뜬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

▲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85)는 지난해 30억 달러에 달하는 전 재산을 통째 기부했다. 그의 철학과 신념이 담긴 책 ‘Let my people go surfing’(한국판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쉬나드는 미국 환경운동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브라우어가 쓴 책(‘Let the Mountains Talk, Let the Rivers Run’)에서 영향을 받아 비슷한 형식의 제목을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타고니아>

[비즈니스포스트] “66번 국도(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도로) 어디쯤에선가 우리는 인디언 움막을 보고 차를 세웠다. 어머니는 여행을 위해 챙겨 두었던 옥수수를 인디언 아이들에게 전부 건넸다. 그 사건이 자선활동에 관한 나의 첫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85)가 쓴 책에 나오는 인상적인 한 대목이다. 쉬나드는 자신의 경영철학과 파타고니아의 비전을 담은 저서 ‘Let my people go surfing’(한국판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라이팅하우스, 2020)에서 여덟 살 시절을 그렇게 회상했다. 

캐나다와 맞붙은 미국 동북쪽 메인주에 살던 소년 쉬나드의 가족은 1946년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남쪽 캘리포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퀘백 출신의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고 어머니는 의외로 모험심이 강했다고 한다. 인디언 아이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주던 어머니의 그 ‘아름다운 손’은 훗날 아들의 ‘또 다른 아름다운 손’으로 이어졌다. 

2022년 9월, 전 세계 언론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팔순이 넘은 기업가 이본 쉬나드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키워 온 회사를 환경 단체와 비영리 재단에 통째로 기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쉬나드 일가의 지분 가치는 30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한다. 

회사 소유권을 넘긴 쉬나드의 결단력도 대단하지만 정작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외신 내용은 따로 있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전했다. 

“이본 쉬나드는 지금도 너덜너덜한 낡은 옷을 입고 오래된 일본산 스바루 차를 운전하며 소박한 집에서 휴대폰도 갖지 않은 채 지내고 있다.”(뉴욕타임스, 2022년 9월 21일)

억만장자의 삶으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쉬나드는 평소 자신을 ‘일종의 선불교 신자(kind of a Zen Buddhist)’라고 표현했다. 이는 별나고도 특이하게 살아 온 그의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절간에서 조용히 수행만 하는 선승(禪僧)처럼 살지는 않았다. 강한 투사의 이미지도 함께 지녔다. 심지어 대통령과 ‘맞짱’까지 떴다. 대통령이라면 누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사건은 2017년 12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파타고니아는 자사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검은색으로 바꿨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흰글씨로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쳤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문장을 올렸다. 

왜 그런 내용을 올렸을까? 당시 트럼프는 미국 최대 규모의 자연보호구역 해제를 발표했다. 그러자 환경보호에 강한 애착을 가진 쉬나드가 발끈했다. 좀처럼 언론에 얼굴을 내밀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앞서 그해 6월 트럼프 정부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쉬나드와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심했던 터였다. 

쉬나드는 이례적으로 CNN과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 정부는 악마(This government is evil)”라며 “악마가 이기는 걸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더 나아가 그는 환경단체들과 함께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쉬나드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트럼프의 반환경 정책이 트리거(trigger: 방아쇠)가 되면서 이듬해 파타고니아의 사명까지 이렇게 바꿨다. “우리는 고향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기존보다 더 선명한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비록 트럼프 정부는 기후변화에 등을 돌렸지만 쉬나드와 파타고니아는 지구 살리기에 필요한 퍼즐 한 조각이라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게 하나 있다. 쉬나드와 파타고니아의 행보와 맞물려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마케팅 구루’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브랜드 액티비즘(브랜드 행동주의) 개념을 내놓은 것이 그 무렵이다. 

코틀러는 같은 이름의 저서(크리스천 사카와 공저)에서 사회가 직면한 시급한 이슈에 대해 브랜드가 강한 목소리를 내는 현상을 브랜드 액티비즘이라 정의했다. 사회적 이슈를 환경으로 좁혀 본다면, 브랜드 액티비즘의 대표적 기업은 파타고니아를 가장 먼저 꼽을 만하다. 

친환경을 위장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 기업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파타고니아의 진정성은 단연 돋보인다. 

이를테면 연간 매출의 1퍼센트 이상을 환경기금으로 기부하는 ‘지구를 위한 1% 프로그램(1% for the Planet)’을 선도한 것도 그들이었다. 저탄소 사회를 위해 가장 먼저 모든 면소재 의류를 100% 유기농 생산 체제로 바꾼 것도 그들이었다. 다른 기업들보다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좀 더 일찍 인식하고 대처해 왔다는 얘기다. 그 중심에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있었다. 

그런 쉬나드의 경영철학은 ‘가치 생태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약하면 ‘이익을 추구하되 성과를 우선하지 않으며 회사의 모든 결정은 환경 위기를 염두에 두고 내린다’는 가치가 그것이다. 파타고니아의 ‘고객 충성도’가 높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라는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인 소비와 관련해, 파타고니아 고객 69%는 자신들이 구입한 제품이 어디에서 제조되고 (원료들이) 어디에서 재배되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파타고니아의 이런 고객 충성도는 재무제표에는 잡히지 않는 귀중한 자산인 셈이다. 파타고니아는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으로도 평판이 높다. 베네핏 기업이란 이윤 창출과 사회적 책임 모두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을 말한다. 파타고니아는 2012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먼저 베네핏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간다. 쉬나드의 책 제목(‘Let my people go surfing’)에 서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뭘까? 파타고니아는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의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벤튜라(Ventura)에 본사를 두고 있다. 

회사 근처인 벤튜라강 하구는 서핑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파타고니아 직원들은 파도가 높게 치는 날엔 서슴없이 서핑에 나선다고 한다. 그들에게 서핑은 놀이인 동시에 모험인 셈이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대통령에 ‘맞짱’ 뜬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

▲ 젊은 층에 인기 있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는 이본 쉬나드가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Fitzroy)산에서 영감을 얻어 브랜드명으로 정했다. 파타고니아 제품에는 피츠로이산의 스카이라인을 본뜬 로고가 그려져 있다.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쉬나드는 십대 시절부터 암벽 등반가로 나섰고 아름다운 암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자연을 덜 해치는 등산 장비 제작에 몰두했다. 함석으로 된 오두막 대장간이 파타고니아의 뿌리였고 탄생지였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쉬나드는 1963년 9월 한국 산악인들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쉬나드A와 쉬나드B 암벽 루트를 개척했다. 지금도 그는 한국 산악계엔 전설로 남아 있다. 귀국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쉬나드 장비회사(Chouinard Equipment)’를 세웠고 1973년엔 파타고니아를 설립했다.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 이름은 절친했던 친구 더글라스 톰킨스(Douglas Tompkins: 1943~2015)와의 여행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Fitzroy)산에서 두 달을 함께 보내며 루트를 개척했다. 당시의 여행을 떠올리며 브랜드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쉬나드의 인생에 그런 톰킨스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톰킨스는 노스페이스의 창업자로 은퇴 후엔 남미에서 환경보호 운동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평온하던 그의 삶은 비극으로 마감된다. 

‘The North Face founder, Douglas Tompkins, dies in Chile kayak accident’(노스페이스 창립자 더글라스 톰킨스 칠레 카약사고로 죽다) 

로이터통신의 2015년 12월 9일자 헤드라인 제목이다. 당시 사고 현장엔 쉬나드도 함께 있었다. 톰킨스와 쉬나드를 포함한 일행 여섯 명은 칠레 남부의 카레라 호수(Lake General Carrera)에서 2인용 급류 카약을 타던 중이었다. 그 호수는 맨해튼보다 21배나 더 크고 광대했다. 

당일 물살이 엄청났고 돌풍까지 겹치면서 톰킨스가 탄 카약이 파도에 뒤집히고 말았다. 카약은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헬리콥터 구조대가 도착하는 1시간 동안 톰킨스는 차디찬 겨울 호수 속에 몸을 맡겨야 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그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다행히 쉬나드와 동료들은 모두 무사했다.

‘환경 투사’ 이본 쉬나드의 종착지는 자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3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모두 기부한 건 2022년 9월의 일이다. 당시 LA타임스에는 존 엘킹턴(John Elkington)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실렸는데 꽤나 흥분한 모습이었다. 

“전적으로 이본 쉬나드다운 행동입니다.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게, 그는 항상 리더로서의 존재 이유를 보여줍니다.”(LA타임스 2022년 9월 14일)

존 엘킹턴이라는 이름은 독자들이 기억해 둘 만하다. 기업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인 그는 ‘녹색 성장(green growth)’, ‘녹색 소비자(green consume)’라는 말을 창안한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하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1994년 ‘트리플 바텀 라인(Triple Bottom Line: TBL)’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도 존 엘킹턴이었다. 트리플 바텀 라인은 기업이 재무회계 중심에서 벗어나 △기업 이익 △사회적 책임 △환경 지속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기업 실적을 측정하는 개념이다. 

엘킹턴은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트리플 바텀 라인은 단순한 회계 도구를 넘어 자본주의와 그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대통령에 ‘맞짱’ 뜬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

▲ 이본 쉬나드는 기업가라기 보다는 행동주의자(activist)에 더 가깝다. 2017년 12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최대 규모의 자연보호구역 해제를 발표하자 “트럼프 정부는 악마”라고 비난하면서 맞선 일화는 유명하다. <파타고니아>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기준을, 더 넘어선 주주 자본주의의 시스템까지 바꿔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쉬나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한 인물 이야기로 끝을 맺자. 

“There is no business to be done on a dead planet.”(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다)

파타고니아 본사 현관에 붙어 있던 문장으로 미국 환경운동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브라우어(David Brower: 1912~2000)의 어록이다. 국제 환경 NGO ‘지구의 벗(Friends of Earth)’ 창립자였던 브라우어의 이 말은 쉬나드에겐 만트라(mantra)와도 같았다. 이본 쉬나드는 브라우어의 말을 살짝 비틀어 파타고니아만의 철학이 담긴 어록을 남겼다.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주주다(Earth Is Our Only Shareholder)”.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