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며칠 동안 이어진 폭우로 전국 각지에서 수해가 일어났다. 인명 피해 규모는 지난해를 뛰어넘었다.

집중호우가 예상된 상황에서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지며 앞으로 책임 소재를 묻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복된 여름 재해, 대통령 부재·장관 직무정지에 책임 소재 향할 곳은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7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희의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정부서울청사에서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복구 작업과 재난 피해에 대한 지원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한 후속 조치를 신속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집중호우로 인한 국내 피해가 확대되자 순방중임에도 수차례 화상회의를 열고 소관 부처에 피해 상황 점검 및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피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조기 귀국을 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한 일이 적절치 않았다는 시각이 떠오른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한 논평을 통해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이번 주말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며 “그런데 대통령이 귀국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번 수해에서 정부기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호우대처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으나 산사태 취약지역 등 위험지역 관리 및 진입 통제에 소홀해 참사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역시 중대본 회의에서 위험지역 통제 등 재난 대응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재난 상황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이 2월부터 탄핵소추안 의결 및 탄핵심판 청구 때문에 직무 정지된 상태라는 점이 대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호우 대처를 위한 중대본이 7일부터 가동됐으나 본부장은 한창섭 차관이 맡았다.

관할 지방자치단체 역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주 흥덕구청은 환경부 산하 금강홍수통제소에게서 홍수 위험 통보를 받았음에서도 도로 침수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이 논란이 됐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 4시간 전인 15일 새벽 4시10분 미호강 미호천교 지점의 홍수주의보를 홍수경보로 변경 발령하고 6시31분 미호천교를 관할하고 있는 흥덕구청 건설과에 미호강의 위험 상황을 전하고 교통통제·주민대피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알렸다.

흥덕구청은 이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사고 첫날인 15일 홍수통제소로부터 위험 상황을 전해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다가 16일에야 통보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김동련 흥덕구청 하천방재팀장은 16일 “한 직원이 통보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며 “주민통제·대피 등 매뉴얼대로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기후 변화로 대한민국의 기상 현상이 극단적으로 바뀌며 예상치 못했던 형태의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이번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들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름대로 관계 당국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피해가 커져 대단히 죄송스럽다”면서도 “매우 극한적인 지역적 호우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패턴의 기후 변화가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짐작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중대본 회의에서 기후변화가 이번 참사의 배경에 있다는 점을 짚었다. 다만 그는 “기후변화 상황을 늘상 있는 것으로 알고 대처해야지 이상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뜯어고쳐야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도 비슷한 형태의 집중호우가 발생해 중부지방이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지난해 수해를 고려해 사전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유사한 집중호우를 예상하고도 제대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에서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6월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회 중앙지방정책협의회’와 ‘제3차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주재하며 “지난해보다 더 많은 비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는 풍수해를 철저히 대비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 수습을 마무리하면 이번 참사의 책임 소재 파악에 전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국무조정실은 오송 지하차도 사망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모든 관련기관을 대상으로 감찰에 나선다고 밝혔다.
 
반복된 여름 재해, 대통령 부재·장관 직무정지에 책임 소재 향할 곳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7월16일 침수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충북 청주 오송 궁평제2지하차도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7일 충북 청주 오송 궁평제2지하차도 수해 현장을 방문해 전체 시스템에 문제는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책임과 관련해 대통령의 문책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으나 지금은 사고 현장을 빠르게 수습하고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책임 문제, 피해자 지원 등은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또한 도로와 제방 관리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을 마련했다. 충북경찰청은 실종자 수색이 마무리되면 전담수사팀 또는 수사전담본부를 구성해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 미호강의 제방 관리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우선적으로 관계부처, 지자체 쪽에서 책임을 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와 관련해 김영환 충북도지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형사처벌을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해야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데 오송 지하차도 같은 터널은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중대시민재해 발생시 처벌 조항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들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2020년 7월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 침수사고와 비교하는 시선도 떠오른다. 당시 부산지역 폭우로 초량지하차도가 침수돼 3명이 사망했는데 부산 동구 부구청장 등 공무원 11명이 기소돼 지난해 9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 역시 폭우가 예보됐음에도 통행을 제 때에 통제하지 않은 점을 놓고 책임소재 공방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16일 간부공무원들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과 괴산 수해지역을 잇달아 방문해 이재민과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근무자들에게 선제적 수해 대응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사고 수습과 피해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김 지사는 17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뒤에는 충청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인명피해 예방을 위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비장한 각오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긴장을 높여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오송 침수사고는 미호천교 개축을 위해 쌓은 임시제방이 무너진 것이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사를 발주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제방을 제대로 점검했는지도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호천교 개축 공사에 하천 점용허가를 내준 당국과 미호천의 관리를 위임받은 지자체가 임시제방의 위험성을 사전에 점검하고 관리했는지 여부를 놓고도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