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엔비디아 젠슨 황 “곧 망한다는 심정으로 일하라”

▲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201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선정하는 ‘최고의 CEO 1위’에 뽑혔다. 2년 뒤인 2021년에는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돼 표지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젠슨 황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코드레드(Code Red). 의료시설에서 화재 등 긴급 상황 발생을 지칭하는 용어다.

지난해 연말, 구글은 오픈AI(인공지능)의 챗GPT 열풍에 화들짝 놀라 비상사태를 뜻하는 이 ‘코드레드’를 발령했다. 챗GPT 출시 두 달도 안된 시점에서 검색시장을 잠식당할 위협을 느낀 것이다.

‘불난 집’ 구글의 이런 위기 의식과는 반대로 챗GPT의 눈부신 성장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기업이 있었다.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 젠슨 황(60)이 이끄는 엔비디아(Nvidia)다. 

엔비디아는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의 두뇌에 해당하는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 공급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업계 최강자다. 테크 기업들의 AI 개발 경쟁과 GPU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최근 엔비디아는 반도체 업체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그런 엔비디아는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창업 이래 30년 동안 수장을 맡고 있다. 그렇다보니 ‘리더십 로맨스(Romance of Leadership: 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지나치게 리더에서 찾으려는 경향)’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지금은 가장 핫하고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인이지만 황 CEO는 과거 여러 차례 치명적 실패를 경험했다. 파산 직전까지 갔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록에선 절박함이 묻어난다. 

“나는 항상 30일 뒤 망한다고 생각하며 일한다.”(I always think we're 30 days from going out of business.)

어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최면을 걸었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젠슨 황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물고기떼를 뒤쫓는 선장처럼 ‘포인트’를 잘 캐치하는 경영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비디아에서 7년간 일하면서 부사장까지 지냈던 ARM(소프트뱅크그룹 자회사인 영국 반도체기업)의 CEO 르네 하스(Rene Haas)의 말을 들어보자. 

“젠슨 황은 반도체 시장에서 ‘퍽이 어디로 갈지’(where the puck is going)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인용)

퍽(puck)은 아이스하키에서 쓰는 공이다. 르네 하스의 ‘퍽이 어디로 갈지’(where the puck is going)라는 말은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가 했던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가야 할 곳으로 움직인다”(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는 유명한 명언에서 빌려온 듯하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상대편과 퍽 다툼이 한창 일어나는 곳보다는 그 퍽이 튀어서 어디로 향할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보다 퍽을 먼저 잡아 골대를 향해 샷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ARM의 CEO 르네 하스가 ‘퍽 이야기’를 꺼낸 건 발빠른 포지셔닝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수장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네 하스는 자신과 7년간 호흡을 맞춘 리더 젠슨 황에게 그런 면모를 보았던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역시 웨인 그레츠키의 명언을 좋아했다. 

젠슨 황은 잡스와도 얼핏 닮았다.

잡스가 애플과 동의어였다면 황 CEO 역시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 잡스가 검은색 터틀넥을 고수했듯이 황은 검정 가죽 자켓이 그의 시그니처다. 한술 더 떴다. 그는 엔비디아 주가가 처음 100달러를 넘었을 때 팔뚝에 회사 로고가 들어간 문신까지 새겨 넣었다. 그만큼 열정파였다.  

비디오 게임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작은 벤처로 출발한 엔비디아는 미국 베테랑 저널리스트 보 벌링엄(Bo Burlingham)이 말하는 ‘스몰 자이언츠’(강소기업)로 성장해 나갔다. ‘규모가 아닌 탁월함’(Be Great Instead of Big)으로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엔비디아의 성공을 두고 젠슨 황의 확장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전쟁을 다룬 ‘칩 워(Chip War)’의 저자인 미국 터프츠대 크리스 밀러 교수(국제사)는 엔비디아의 장점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엔비디아는 3차원 그래픽을 다루는 데 필요한 GPU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엔비디아의 GPU는 단순 계산을 엄청나게 많이 병렬 처리(parallel processing)할 수 있었기에 이미지를 빠르게 렌더링(rendering) 할 수 있었다. 인텔이나 다른 회사가 만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혹은 범용 CPU(중앙처리장치)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크리스 밀러, ‘칩 워’ p362 인용, 부키)

일반적인 CPU는 모든 계산을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하는 단점이 있기에 AI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연산력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밀러 교수의 말을 빌리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개발한 GPU는 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구조이기에 원활한 구현이 가능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젠슨 황은 2006년 CUDA라는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곤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간 CUDA를 무료 개방했다. 업계 밖에서도 엔비디아의 칩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CUDA는 엔비디아에 엄청나게 큰 새로운 시장을 열어 주었다. 밀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 무렵 젠슨 황은 어렴풋하게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병렬 처리의 가장 큰 수요처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이었다.”

밀러 교수의 말처럼 엔비디아는 GPU 제작이라는 칩 제조사에서 ‘생성형 AI의 심장’을 만드는 AI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엔비디아는 종전의 ‘스몰’을 떼어내고 그 자체로 거인으로 우뚝 섰다. 그러면서 전 세계는 젠슨 황 CEO의 경영 방식과 리더십을 학습하고 있다. 그것도 심화 학습(딥 러닝).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엔비디아 젠슨 황 “곧 망한다는 심정으로 일하라”

▲ 엔비디아의 로고를 보면 사람의 눈을 형상화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회사 이름엔 ‘다음 버전’(NV: Next Version)이라는 뜻과 부러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invidia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

사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젠슨 황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필자는 그 변곡점이 2019년이라고 생각한다. 그해 젠슨 황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선정하는 ‘최고의 CEO’ 1위에 올랐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매출과 성장만 따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한 벤처펀드의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본사를 방문한 후 자사의 홈페이지에 ‘왜 젠슨 황이 세계 최고의 CEO인가?’(Why Jensen Huang is the best CEO in the world?)라는 글을 올렸다. 한번 들어보자. 

“HBR 순위가 발표되기 몇 주 전 운 좋게도 엔비디아의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사무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몇 시간을 보냈고 회사의 최고 관리자 및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젠슨 황이 HBR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회사 직원들을 챙기는 것은 그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이며 팀은 고품질 작업은 물론 회사와 제품에 대한 높은 충성도로 보답하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을 챙기는 것은 젠슨 황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Taking care of the company's employees is one of his top priorities.)라는 대목이 핵심이다. 여기에 테크매체 와이어드의 기사 한 줄을 덧붙여 보면 황 CEO의 경영 방식이 확연히 눈에 들어 온다. 

“젠슨 황은 본사 홀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수다를 떨고 웃으며 배우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녀의 안부를 묻는다.”

한 마디로 젠슨 황은 소소한 일상에서 리더의 가치를 찾고 있는 셈이다. “리더의 할 일은 직원들의 단점이 가려지도록 장점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거창한 외침은 젠슨 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 대만에서 태어난 젠슨 황은 어떻게 미국으로 오게 됐을까? 거기엔 부모의 강한 열망과 꿈이 있었다. 대만 매체들과 CNBC에 따르면 젠슨 황의 아버지는 화학 계통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황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근로자 훈련 프로그램 덕에 미국 땅을 밟는 기회가 생겼다. 에어컨 제조업체인 캐리어(Carrier)에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두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몇 년 동안 황의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황의 어머니는 영어를 잘 했을까? 

“당시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젠슨 황, CNBC 인터뷰)

황의 어머니는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매일 사전에서 무작위로 단어 10개를 골라 두 아들에게 철자와 뜻을 묻곤 했다.  

“어머니는 제가 제대로 말하는지 아닌지 전혀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어머니의 열망과 아버지의 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젠슨 황, CNBC 인터뷰)

그런 소년 젠슨 황이 미국 땅을 밟은 건 열 살 무렵인 1973년이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훗날 자신이 창업하는 회사를 도와줄 투자사 세콰이아캐피탈(Sequoia Capital)이 바로 한 해 전에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실리콘밸리의 꿈나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젠슨 황은 수줍음을 많이 타던 소년이었다. 학창시절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Denny's)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곳은 내성적인 성격의 껍질을 벗겨내기엔 훌륭한 학습의 장이었다. 

잡스가 매킨토시를 출시하던 1984년 오리곤 주립대를 졸업한 황은 스탠포드대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실리콘밸리의 반도체기업 ADM과 LSI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1991년엔 컴퓨터 공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월드와이드웹(WWW)을 탄생시키는 대사건을 실리콘밸리에서 목도했다. 

젠슨 황이 또 다른 껍질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온 건 1992년 가을 무렵이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새너제이) 동쪽 동네에 있던 식당 데니스(Denny's). 

서른 살의 젠슨 황은 세 살 위인 친구들 크리스 말라코프스키(Chris Malachowsky), 커티스 프림(Curtis Priem)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연신 커피잔을 비우고 있었다. 엔비디아의 창업 역사는 특이하게 이 허름한 식당에서 시작됐다. 

“추수감사절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멋진 두 친구들과 거기 있었죠. 그 친구들은 선마이크로시스템즈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래픽 회사를 시작하려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었죠. 어떤 회사가 좋을지,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토의하고 상상했죠. 재밌던 시절이었습니다.” (젠슨 황, 스탠포드 공대와의 인터뷰)

이듬해인 1993년 4월, 세 공동 창업자의 의기투합으로 회사가 설립됐다. 셋은 은행에서 4만 달러를 빌렸고 세콰이아캐피탈(Sequoia Capital)이 자금을 지원했다. 회사 이름은 ‘다음 버전’(Next Version)을 의미하는 NV에 부러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invidia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30년. 이제 엔비디아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빅테크 기업 반열에 올랐다.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엔비디아 젠슨 황 “곧 망한다는 심정으로 일하라”

▲ 엔비디아의 본사 건물은 혁신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주선에서 이름을 따온 보이저(Voyager)라는 건물에 들어서면 마치 미래 세계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설계는 세계 최대 건축 회사인 겐슬러(Gensler)가 맡았다. <엔비디아>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