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SUV 최강자 기아 '아픈 손가락' 준대형 모델, EV9로 위상 되찾는다

▲ 국내 SUV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기아는 준대형 차급에서 유독 부진한데 최근 출시한 전기 SUV EV9이 해당 차급 판매에 활로를 뚫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기아 모하비. <기아>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시장을 꽉잡고 있는 기아가 준대형 SUV 차급에서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기아는 최근 플래그십 전기차인 준대형 SUV EV9를 국내에 출시했는데 해당 차급 판매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29일 기아 판매실적 자료를 보면 준대형 SUV 모하비는 올해 1~5월 국내에서 2497대가 판매되는데 그치며 전년동기(4913대)와 비교해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쟁쟁한 SUV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기아는 셀토스, 스포티지, 쏘렌토가 각각 국내 소형, 준중형, 중형 SUV 차급에서 압도적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하지만 유독 국내 준대형 SUV에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준대형 SUV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제네시스 GV80은 올해 1~5월 국내에서 각각 1만9684대, 1만1824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기아 모하비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데는 현재 디젤 모델만 판매하고 있어 친환경차 전환기 디젤차 수요가 줄어든 영향을 받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델 노후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하비는 2008년 출시된 뒤 단 두번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을 거쳤을 뿐 완전변경(풀체인지) 없이 1세대 모델이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2019년 9월 2차 페이스리프트에서 큰 폭의 디자인 변화를 주긴 했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 신차 효과가 사라진 상황이다.

기아에게 모하비의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기아가 북미 전략 차종으로 2019년 1월 현지에 내놓은 준대형 SUV 텔루라이드는 올해 1~5월 미국에서 3만7707대가 판매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는 기아의 글로벌 최대 볼륨 모델인 스포티지의 미국 판매량(3만8203대)에도 뒤지지 않는 판매실적이다.

국내에도 텔루라이드 출시를 바라는 고객이 많지만 기아가 지금껏 내놓지 못한 데는 사정이 있다.

2019년 5월 말 기아 노조가 공개한 제57차 정기대의원대회 결정사항에 따르면 텔루라이드의 화성공장 생산을 요구하는 건을 고용안전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텔루라이드는 전량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생산된다.

사측은 기아 화성공장이 풀가동을 하고 있어 특정 모델을 단산하지 않으면 국내 생산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텔루라이드를 모하비의 후속으로 국내에서 생산할 순 있어도 두 모델을 병행 생산해 판매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텔루라이드를 역수입하는 방안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

기아 단협 제51조 6항은 "해외 생산 차종의 해당 국가 이외 국가로의 수출로 인해 국내 공장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의견 일치하여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아 노조로서는 국내 생산 모델의 판매량을 일정부분 빼앗아갈 수밖에 없는 인기 차종의 수입에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기아는 2019년 9월 모하비 더 마스터 출시 행사장에서 "텔루라이드 북미 수요가 높아 현지에서 증산을 논의 중"이라며 "국내 출시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것으로 전해진다.

텔루라이드는 미국에서 애초 6만4천대 규모로 생산됐으나 판매 호조 속에서 2019년 8만 대, 2020년 10만 대로 2차례 증산을 단행했다.

기아는 모하비 후속모델 개발을 건너띄고 최근 플래그십 준대형 SUV EV9를 국내에 출시했다.
 
국내 SUV 최강자 기아 '아픈 손가락' 준대형 모델, EV9로 위상 되찾는다

▲ 기아 EV9. <기아>

EV9는 고성능 라인업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출시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상품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EV9는 4륜구동 모델 기준 전·후륜 모터를 기반으로 최고출력 283kW(킬로와트), 최대토크 600Nm(뉴턴미터)의 성능을 낸다. '부스트' 옵션을 구매하면 최대토크 700Nm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3초 만에 가속할 수 있다. 1회충전 주행거리는 트림별로 443~501km로 브랜드 최대치를 새로 썼다.

파워트레인이 다르지만 단순비교하면 4륜구동 모델 기준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SUV GV80과 최고출력은 비슷한 수준이고 최대토크는 20%가량 더 높다. 

다만 플래그십 모델이자 전기차인 만큼 높게 책정된 가격은 EV9 국내 판매실적에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V9 판매가격은 트림별로 7337만~8781만 원으로 프리미엄 내연기관차인 GV80(6430만~7360만 원)보다 한 단계 높은 가격표가 붙었다. 다만 서울 기준 국비 보조금 330만 원 및 지방비 보조금을 모두 받으면 기본 모델은 6920만 원대에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높은 가격에도 최초의 국산 준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전기차로서 국내 고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EV9는 사전계약 8영업일 만에 1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EV9 구매의사를 가진 고객 가운데는 신규 수요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는 최근 EV9 시승행사 간담회에서 "EV9 사전계약 전후에 인접 차급 등 계약 출고 추이를 보면 변동이 없었다"며 "이번 사전계약 고객 가운데 55%가 기존에 기아를 선택하지 않았던 고객"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차급이 올라갈수록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지는데 플래그십 세단 K9의 새로운 고객 유입은 40% 이하에 머문 것으로 파악된다. 

EV9이 새로운 수요층을 발굴한 모델인 셈이다.

내연기관차로 국내 준대형 SUV 시장을 평정한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브랜드 첫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7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SUV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기아가 선제적 EV9 출시를 바탕으로 전기차 시대엔 기존에 '아픈 손가락'이었던 국내 준대형 SUV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