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라이벌]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선택의 시간', 미중 갈등에 고심

▲ 중국 관영매체가 미국의 중국 반도체산업 규제에 관련한 삼성전자의 대응 방향을 이재용 회장에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가장 골치 아픈 과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지정학적 ‘게임’에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과 관련한 여러 리스크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2022년 10월 이재용 회장이 승진한 뒤 내놓은 논평에서 축하 대신 경고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했다. 중국이 삼성전자에 얼마나 중요한 시장인지 이 회장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인 만큼, 중국과 협력을 경계하는 미국 정부의 압박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의 보도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지만 이 회장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중장기 과제 가운데 하나를 날카롭게 짚어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양측의 움직임을 모두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장비와 부품 등의 수출 규제를 시행한 데 이어 다른 국가도 중국과 첨단 산업에서 관계를 단절하는 ‘디커플링’을 추진하도록 압박했다. 삼성전자도 중국과 반도체 거래를 축소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중국이 반도체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을 향한 규제로 확대되면서 반도체사업에 실질적 리스크로 자리잡았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말 중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를 사실상 수입할 수 없도록 하는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중국 반도체기업뿐 아니라 중국에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도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 반도체기업은 1년의 유예기간을 받아 당분간 투자를 지속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미국의 정책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미국 정부의 압박을 고려하면 유예기간에도 활발한 투자를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특히 미국 텍사스주 파운드리공장 신설을 통해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있는 만큼 더 큰 딜레마를 안게 됐다. 미국 상무부가 정부 지원을 받는 반도체 기업은 10년 동안 중국 등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에 투자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에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정부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받는 일이 필수적인데 이를 받아들인다면 자연히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는 투자를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회장에게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환영한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한 수준의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향한 반도체 규제에 확실한 승기를 잡고 있다. 중국이 추진하는 반도체사업 육성이 아직 확실한 결실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의 규제는 중국 반도체사업에 큰 타격을 줬다. 

삼성전자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쪽의 편을 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중국 반도체사업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의 라이벌]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선택의 시간', 미중 갈등에 고심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반도체공장.

아직 삼성전자는 이러한 관측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도 자연히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반도체기업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섣불리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드러내는 일은 리스크를 더욱 앞당기게 될 수 있다.

만약 중국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하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구매 물량을 축소하는 등 방식으로 보복 조치에 나선다면 당장 반도체 실적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는 한국 경제 전반에도 상당한 부담을 키우게 된다.

미국 정부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반도체 강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칩4 동맹’ 구축 시도가 대표적이다.

칩4 동맹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주요 국가와 협력체를 구성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다양한 협업 기회를 모색하자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저에는 주변 국가를 포섭해 중국을 더욱 철저하게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국 정부는 칩4 동맹 참여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대응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중국의 사드보복 사태와 같은 일이 재현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에 등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다.

바이든 정부는 결국 칩4 동맹에 집중하는 대신 일본과 네덜란드의 대중국 수출 규제 참여를 독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두 국가는 주요 반도체 장비와 소재 핵심 수출국이기 때문에 이들이 동참하게 된다면 중국을 더욱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더 강력한 압박을 받는 일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더구나 경제 성장 둔화와 소비 위축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은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사업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0% 이상 감소했다. 올해는 업황이 더 나빠지면서 연간 실적 전망에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실적에 크게 기여하는 중국 반도체시장을 수성하는 일은 삼성전자에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가 미국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실익을 챙겨야 하는 과제도 무거워졌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향한 규제 강도를 낮추는 등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안게 될 리스크는 갈수록 짙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언젠가는 중국이나 미국 가운데 한 쪽의 편을 분명하게 들면서 다른 국가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감내해야만 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미래를 판가름할 수도 있는 중요한 기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재용 회장이 승진하자마자 큰 난관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는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 내용은 핵심을 정곡으로 찌른 경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4부 - 삼성 vs CHINA
(1) 중국 ‘반도체 굴기’ 정조준한 미국, 삼성전자도 영향권
(2)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선택의 시간', 미중 갈등에 고심
(3) 중국 메모리반도체 물량공세 위협, 삼성전자 부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