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급과잉에 미국정부 지원도 불투명, 삼성전자 투자 축소 언급할까

▲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급과잉에 따른 미국 정부 반도체 지원법 여론 악화에 대응해 투자 축소 계획을 언급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빠르게 완화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기업의 미국 생산투자를 돕는 바이든 정부 지원 법안의 필요성과 관련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지원법 통과를 위한 여론을 조성하고 공급 과잉에 따른 실적 타격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 축소 계획을 제시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 논평을 내고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은 심각한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추진동력으로 삼고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 공급부족 사태가 해소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제조기업들이 반도체 수급 차질로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중국에 반도체 공급망 의존을 낮추기 위해 520억 달러(약 69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 둔화로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둔화하면서 반도체 수요도 크게 줄어 공급부족 사태는 사실상 정상화 국면에 가까워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들의 주력 분야인 메모리반도체는 오히려 급격한 수요 둔화에 공급 과잉 현상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업황 악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넗은 “한국은 6월에 반도체 재고량이 지난해 6월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며 “반도체 수요 감소에 맞춰 공급부족 사태도 완화한 것”이라고 바라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미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내년 반도체 시설투자 규모를 기존 계획의 25%가량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 측은 아직 내년 투자 계획과 관련해 확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도 이른 시일에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고 공급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 수익성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이를 피하기 위해 수요 둔화에 맞춰 반도체 출하량을 대폭 낮출 것이라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도 반도체기업들의 감산 계획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투자 축소 보도가 나온 뒤 주가는 7% 이상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현재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이른 시일에 파운드리 및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모두 과감한 수준의 투자 축소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반도체 시설 투자 규모가 앞으로 미국 의회의 반도체 지원법 통과는 물론 메모리반도체 수익성 유지를 통한 실적과 주가 방어에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통과와 관계 없이 앞으로 10년 동안 진행할 투자 규모를 30% 이상 높여 내놓았다는 데 주목했다.

삼성전자의 사례와 같이 반도체기업들은 굳이 미국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없더라도 대규모 투자를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어 정부 지원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논리다.
반도체 공급과잉에 미국정부 지원도 불투명, 삼성전자 투자 축소 언급할까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공장.

인텔은 미국 의회에서 반도체 지원법 통과를 두고 시간을 끌자 현재 오하이오주에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반도체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늦추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회에서 입법 절차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미국이 인텔 반도체공장 건설을 통해 볼 수 있는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및 경제적 효과가 낮아질 수 있다며 사실상 엄포를 놓은 셈이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인텔과 같은 입장에서 투자 축소 가능성을 충분히 언급할 수 있다.

이는 인텔이 먼저 앞세웠던 논리에 힘을 실어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반도체 지원법 통과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 이어 메모리반도체 투자 축소를 발표한다면 반도체업황 악화 기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현재 삼성전자는 세계 D램 및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모두 선두업체인 만큼 삼성전자의 시설 투자 및 공급량 조절 전략은 업계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당분간 자제하고 출하량도 축소해 업황 정상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한다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경쟁사도 적극 동참할 공산이 크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3사가 모두 반도체 투자 및 공급 조절을 통해 업황 개선을 추진한다면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 상황이 빠르게 해소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수익성 회복에 모두 기여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파운드리 및 메모리반도체 투자 계획에 관련해 언급하지 않았다. 28일 열리는 삼성전자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이런 내용이 언급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는 “한국 반도체기업들은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 악화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앞으로 투자 확대를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