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 DB하이텍이 수익성과 성장성 2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DB하이텍의 주력 제품인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반도체의 호황이 전기차와 IT시장의 성장에 따라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생산시설 효율화만으로는 수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8인치 웨이퍼 수요 전망 밝아, DB하이텍 수익과 성장 ‘선택의 기로’

▲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부회장.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이 8인치 웨이퍼 반도체 시장 성장을 타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증설로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DB하이텍은 8인치 웨이퍼 반도체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전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10위 업체다. 국내에선 세계 2위인 삼성전자 다음 두 번째로 큰 업체다.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는 자동차, 생활가전, 노트북·PC 등에 쓰이는 아날로그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업계의 주요흐름이 더 많은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12인치 웨이퍼로 넘어가면서 한물간 기술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무선이어폰 등 신규 정보기술(IT) 시장 성장세로 8인치 웨이퍼 기반 반도체의 수요가 대폭 확대되고 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력을 관리해주는 전력반도체를 비롯해 이미지, 온도, 지문, 장애물 등을 감지하는 센서들에 대한 수요가 전 산업에 걸쳐 늘어나면서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의 성장세도 지속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이 연구원은 “8인치 웨이퍼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요구되는 반도체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반도체 업체의 원가부담을 우려하는 시선도 나온다. 하지만 이보다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공급난 문제가 심화해 업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라 반도체 제작에 필요한 특수가스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이런 원가부담보다 물량확보가 중요해질 것이며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공급난이 가중될 것이다”고 말했다.

DB하이텍도 원료 수급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DB하이텍의 고객사는 우크라이나 지역과 관련이 거의 없고 원자재 수급과 관련해 미리 대비한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DB하이텍으로선 늘어나는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큰 고민일 수 있다.

DB하이텍은 경기도 부천(부천 공장)과 충청북도 음성(상우 공장)에서 2개 파운드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두 공장은 사실상 완전가동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하이텍은 2019년부터 파운드리 공장의 가동률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들어서는 기존 고객사들도 반도체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DB하이텍에 증설을 꾸준히 요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DB하이텍은 대규모 증설에 착수하기보다는 생산과정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구간을 효율화하는 방식(디보틀넥킹)으로 반도체 생산능력을 키워왔다.

DB하이텍은 생산능력이 2015년 말까지만 해도 월 웨이퍼 10만 장 규모였는데 2021년 3분기 말 기준으로는 월 웨이퍼 13만8천 장 규모로 확대됐다.

다만 디보틀넥킹의 한계점도 다가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하이텍의 병목공정 보완투자에 따른 생산량 확대가 2022년 하반기에 대부분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급부족 상황을 타고 수익성을 유지하느냐, 비용을 들이더라도 증설로 성장하느냐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DB하이텍은 2021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2146억 원, 영업이익 3991억 원을 거뒀다. 2020년보다 매출은 29.78%, 영업이익은 66.76% 늘었다. 매출보다 이익증가율이 더 높은 상황에서 성장을 위한 증설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볼 수 있다.

DB하이텍은 현재로선 신규 투자를 통한 증설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2001년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 진입할 때 오랫동안 적자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부하이텍(현 DB하이텍)은 초기 투자비용과 기술장벽에 오랜 시간 고전하다 2014년에 이르러서야 흑자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아울러 글로벌 주요 업체들의 증설로 파운드리 업황에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오는 점도 DB하이텍이 증설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DB하이텍 관계자는 “현재로선 대규모 증설보다는 해마다 1천억 원 가량의 투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생산효율화를 진행해 내실을 다지는 쪽을 경영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분간 고부가 제품 생산을 통해 성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