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명절 해외출장 행보를 재개할까?

이 부회장은 이전부터 명절 연휴를 해외출장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왔으나 최근 2년은 명절 출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에 올해 설 명절 이 부회장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오늘Who] 유럽? 중국? 삼성전자 현안들이 이재용 설 출장 기다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1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설 연휴를 끼고 해외출장에 나설 가능성이 나온다.

매주 목요일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재판이 설 연휴 다음날인 2월3일에는 열리지 않는다. 

최대 2주의 여유가 생기는 만큼 이 부회장이 이 시간을 삼성의 글로벌 현안 해결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3년 전인 2019년만 해도 설 명절을 맞아 중국으로, 추석 명절을 맞아 중동으로 각각 출장길에 올랐다. 당시 그는 중국에서 삼성전자의 시안 반도체공장 2기 라인 건설, 중동에서 삼성물산의 사우디아라비아 도심지하철 공사 등 현안을 점검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수감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명절 해외출장을 떠나지 못했다.

올해 설 명절은 해외 현장경영을 위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만큼 이 부회장이 명절 해외출장 행보를 재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유럽과 중국이 유력한 출장 후보지로 꼽힌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지난해 12월 중동 출장으로 현지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등 시급한 현안을 정리하거나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크 복원에 힘쓴 만큼 이제 유럽과 중국을 돌아볼 차례라는 것이다.

이 두 지역에는 미국 투자 못지않게 중요한 현안들이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설 명절을 맞아 유럽 출장길에 오른다면 네덜란드의 ASML 본사를 방문해 극자외선(EUV)장비 확보와 관련한 논의를 하는 것이 필수 코스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극자외선장비는 반도체 미세공정의 필수 장비다. 세계에서 ASML만이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연 생산량이 고작 40대 수준에 그치는 ‘희귀품’이다.

한동안 극자외선장비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두 파운드리회사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메모리반도체 생산에도 D램을 시작으로 극자외선공정이 도입되면서 장비 수요가 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인텔까지 파운드리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면서 극자외선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반도체회사들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9일 ASML은 3일 독일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극자외선 장비 생산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삼성전자의 장비 반입 일정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 ASML 본사를 방문해 삼성전자가 극자외선장비 예약 대수를 확보하는 물꼬를 텄다. 당시와 같은 역할이 이번 설 명절에도 기대되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유럽에서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돌아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100조 원 이상의 현금 보유량을 활용한 ‘의미 있는 인수합병’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아날로그 반도체, 특히 차량용 반도체회사들이 인수합병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을 향한 시장의 기대감이 한층 높아져 있기도 하다.

이에 앞서 5일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 내정자는 CES2022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러분의 생각보다 저희(삼성전자)는 훨씬 빨리 뛰고 있다”며 “조만간 인수합병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중국 출장길에 오른다면 시안 반도체공장의 가동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현지의 코로나19 봉쇄조치 탓에 지난해 12월29일부터 시안 반도체공장의 가동을 축소해 비상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은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가량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동 축소 상태가 장기화하거나 봉쇄조치 강화로 공장이 아예 멈춰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시안 반도체공장의 비상 운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앞으로의 공장 운영과 관련해 현지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현지 정·관계의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시안 반도체공장의 가동 회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중국 출장길에서 현지 스마트폰사업 현황을 점검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정기 인사와 함께 실시한 조직개편으로 완제품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 아래 중국사업혁신팀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현지에서 고전하는 스마트폰사업의 부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정부의 한한령(중국의 비공식적 한국상품 금지조치)으로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들은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점유율 1% 미만의 ‘그 외(Others)’로 분류한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옛 무선사업부)장 사장은 CES2022 기자간담회에서 “한종희 부회장 중심으로 중국사업혁신팀을 만들었고 여러 분석과 고민을 기반으로 휴대폰 비즈니스도 방향성을 잡고 있다”며 “이런 노력들이 아직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지만 브랜드 지표 등의 지수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 시장 조사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중국은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의 25% 안팎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이 부회장이 설 명절 출장지를 중국으로 선택해 삼성전자의 현지 반도체 관련 사업현안을 해결하고 스마트폰 관련 전략을 가다듬고자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출장 일정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