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경영 전면에 활발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만큼 내년에는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대규모 인수합병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추진하는 ARM 매각 계획이 사실상 성사되기 어려워진 만큼 이 부회장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인연을 통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기회를 볼 가능성이 떠오른다.
 
삼성전자 ARM 인수 기회 오나, 이재용 손정의 각별한 관계 다시 주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7일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 인수절차가 예상보다 장기화되며 결국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최근 엔비디아에서 ARM을 인수한다면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술을 상당 부분 독점해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은 미국 연방거래위 발표가 나온 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심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고 영국 당국도 곧 해당 사안에 대해 심층조사를 시작한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320억 달러를 주고 ARM 지분 100%를 인수했는데 최근 연이은 투자 실패로 자금 확보가 다급해지자 2020년 하반기부터 매각을 추진해 그해 9월 엔비디아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와 인수계약을 매듭지어야 하는 2022년 9월까지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소프트뱅크도 다른 투자자를 찾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매각가격이 400억 달러(약 47조4440억 원)에 이르는 ARM을 인수할 만한 자금여력과 이유를 모두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가 몇 안 되는 새 인수후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해외 출장일정을 소화하는 등 활발하게 경영 전면에 등장해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을 구상하고 국내외 협력사와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이런 경영 구상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확실한 계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핵심 신사업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일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 기업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연초에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3년 안에 의미 있는 인수합병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약 100조 원에 이르는 순현금을 인수합병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모바일 분야의 핵심 반도체 설계자산을 보유한 ARM을 인수한다면 자체 시스템반도체 ‘엑시노스’ 시리즈 경쟁력 강화와 자율주행 반도체 등 새로운 분야 진출에 힘을 받을 수 있다.

애플과 퀄컴, 미디어텍 등 모바일프로세서 전문기업들이 모두 ARM 설계기반을 활용하는 만큼 삼성전자가 이들은 물론 인텔 등 다른 시스템반도체 경쟁사까지 견제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이 손 회장과 각별한 사이라는 점도 삼성전자의 ARM 인수 추진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뒤 소프트뱅크의 손 회장과 공식 회동을 포함해 여러 차례 만나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 사이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그런 점에서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 절차에 어려움을 겪을 때 삼성전자가 구원투수로 등장해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합병 논의를 진행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달리 자체 시스템반도체사업 규모도 크지 않고 시장 점유율도 미미한 수준에 그쳐 미국과 유럽 등 경쟁당국에서 독점금지를 이유로 인수를 반대할 명분도 크지 않다.

시장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프로세서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으로 5%를 차지해 4위에 그쳤다.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실적을 크게 늘리기 어렵겠지만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시스템반도체 설계역량을 단숨에 끌어올려 세계 상위기업으로 도약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재판으로 장기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상태에 놓였던 만큼 본격적으로 경영에 복귀하며 오너경영자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ARM 인수 시도는 삼성에 ‘이재용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다만 애플이나 퀄컴, 인텔 등 경쟁사가 삼성전자의 ARM 인수를 막기 위해 미국 경쟁당국 등에 로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퀄컴과 테슬라, 아마존과 구글, MS 등 글로벌 대형 IT기업들이 일제히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세계 주요국가 경쟁당국들이 자국의 반도체산업 육성을 염두에 두고 삼성전자를 견제할 가능성도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하려는 시도 역시 엄격한 규제환경 아래 놓일 가능성도 크다.

결국 삼성전자의 ARM 인수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이 부회장이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협상을 진행하지 않거나 소규모 투자를 통한 지분참여 등 다른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실패한다면 ARM의 기업공개를 추진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은 글로벌 모바일시장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소프트뱅크의 매각 시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무산되면 삼성전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된다. 엔비디아가 인수에 성공하면 삼성전자가 ARM의 최신 설계기술을 확보하기 쉽지 않게 돼 엑시노스 경쟁력을 유지하기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은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처음 매각을 추진했을 때부터 꾸준히 거론됐다.

다만 당시 삼성전자는 이런 관측에 근거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