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사실상 연임에 성공하면서 국내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3명이 최소 한 번은 연임에 성공했다.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연임은 필수, 재연임은 선택’이 되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용병도 연임, 4대 금융지주 회장 모두 연임 성공하나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회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이제 손태승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연임은 필수 재연임은 선택, 장기집권 빛과 그림자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


손 회장의 연임 여부는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에 따른 금융감독원의 제제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 1월이 돼야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손 회장도 연임에 성공하면 4대 금융지주 회장 4명이 모두 연임에 성공하게 된다. 특히 이 가운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해 무려 9년 동안 하나금융지주를 이끌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계열사 CEO 임기보다 보통 1년이 길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역시 한 차례 연임해 6년 가까이 KB금융지주를 이끌고 있다. 윤 회장이 내년 연임에 또 성공하면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9년 동안 회장을 유지하게 된다.

금융권은 물론이고 일반 대기업에서도 오너가 아닌 이상 10년 가까이 CEO 자리를 지키는 일은 매우 드물다. 5년만 넘어가도 장수 CEO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오너와 비슷하게 많은 권력이 집중된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오히려 연임이 더 자연스러운 양상이 되고 있다.

장기 집권에 따른 권력 집중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 모두 오랜 기간 견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한을 누렸는데 둘 모두 떠나는 뒷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 은행장 임기는 2년으로 짧아져, 줄서기 등 부작용

같은 기간 은행장 임기는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지주 회장의 재임기간은 길어지고 은행장 임기는 짧아지면서 회장 1인의 권력 집중이 더 공고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회장 연임은 필수 재연임은 선택, 장기집권 빛과 그림자

허인 KB국민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금융지주 아래 있는 은행에서 은행장 임기는 모두 2년이다. 과거 통상 3년의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최근 들어 모두 임기가 단축됐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은 최근 2년 임기를 마친 뒤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 임기는 1년이다.

신한은행 역시 은행장 임기가 2년이다.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은 그나마 2년도 채우지 못했다. 위 전 행장의 후임인 진옥동 행장의 임기는 2020년 말까지로 1년9개월에 그친다.

지성규 하나은행장과 손 회장이 겸직하고 있는 우리은행장 역시 임기가 2년이다.

이렇게 되면 회장 재임기간에 은행장 선임이 필수로 이뤄져 행장 자리를 위한 줄서기나 알력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회장이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지난해 말 위성호 전 신한행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된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위 전 행장은 “회장후보군 5명 가운데 4명이 퇴출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용병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위 전 행장에 이어 진 행장의 연임 여부도 조 회장이 결정하게 됐다.

은행장의 임기가 짧아진 데 따른 부작용은 내부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불거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 역시 짧은 임기로 당장 눈 앞의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은행장의 조급함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있다.

회장이 오랜 기간 자리를 공고히 지키는 사이 회장과 회장후보군의 그룹 내 입지와 경험, 연륜 등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점 역시 문제다. 회장 한 명의 카리스마가 강해지면서 연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중은행에 다니고 있는 한 직원은 “회장의 뒤를 이을 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아직은 회장을 대체하기 어려운 만큼 회장이 연임할 것으로 보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 외풍 막고 자율성 독립성 보장하는 장점도 있어

물론 장기 집권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조금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오래 임기를 지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금융지주가 관치와 낙하산 등 외풍에 취약할수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진출과 인수합병이 금융지주에게 필수로 떠오른 지금 꾸준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장수 CEO가 많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JP모건을 이끌고 있다. 그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CEO도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오랫동안 임기를 지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여러 차례 연임하는 과정에서 한 명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폐해가 생기고 물러난 뒤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나금융지주에서는 김승유 전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한동안 ‘고문’을 유지하며 그룹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정태 회장 역시 더 이상 연임은 불가능한 만큼 이번엔 물러나더라도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9년 동안 사실상 김정태 회장 1인체제가 유지됐는데 김 회장의 존재감을 단번에 지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장후보군에 들어있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물론 주력 계열사 CEO 모두 김정태 회장 재임 시절 선임된 인물들로 이른바 ‘김정태 라인’으로 분류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