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외국인 경영진' 국민 정서 못 읽나? 메타·아마존의 '미국식'은 달랐다
-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사과보다는 해명과 법적 논리를 앞세우는 모습을 놓고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라는 점에서 주주 이익과 향후 소송 리스크를 고려한 '미국식 경영'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수가 나와서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보다 논리적 정합성을 앞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정부와 여론의 반발만 거세지면서 이런 쿠팡의 행보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글로벌 기업인 메타와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위기 국면에서 직접 책임을 인정하고 공적 검증에 나섰던 점을 감안하면 쿠팡의 행보를 '미국식 경영'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5일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처와 관련해 국내 다른 대기업들과 사뭇 다른 대응 방식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국민적 의혹과 분노를 놓고 사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쪽을 선택했다. 2025년 말 연달아 열린 쿠팡 관련 긴급 현안질의나 청문회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의혹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전방위적인 논란만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이런 런 쿠팡의 전략 때문이었다.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국회 청문회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조목조목 밝혔다. 죄송하다거나 허리를 굽혀 저자세로 나가는 앞선 다른 기업들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쿠팡의 이러한 행보에는 기업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많다. 상장된 국가인 미국에서 이어질 집단 소송 및 과징금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사과가 자칫 소송에서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는 논리다.3분기 실적은 쿠팡의 판단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쿠팡은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이다.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의 실적 발표 기업설명(IR) 자료를 보면 쿠팡은 3분기 매출 92억6700만 달러, 영업잉익 1억6200만 달러를 냈다. 이는 달러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 49% 증가한 것이다.특히 대만 로켓배송 등 글로벌 사업이 순항하면서 '성장사업부문' 매출은 2024년 3분기보다31% 늘었다. 아울러 로켓배송과 로켓프레시 등 쿠팡의 핵심 사업을 포괄하는 제품커머스 부문의 활성고객 수는 2470만 명으로 2024년 같은 기간 대비 10% 늘고 1인당 매출도 7% 증가했다.쿠팡의 사업과 주가가 최근 안정세를 다진 점도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쿠팡의 영업이익 추이를 보면 쿠팡은 꾸준히 적자를 보다 2023년 이후 흑자로 전환했다. 주가도 상장 이후 하락세를 겪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상승세를 띄고 있다.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 <쿠팡>하지만 이런 배경들만 놓고 쿠팡의 대응을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무엇보다도 쿠팡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확대, 재생산하는 쪽으로 대응하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이 상황을 원만하게 타개하기 위해선 한국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이 필요한데 쿠팡은 하나한 법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였다면 일찌감치 총수급이 등판해 의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을텐데 김범석 의장이 어떤 의중을 지녔는지 헤아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청문회에 나와 사과만 한 번 하면 어느 정도 국민 정서를 진정시킬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오히려 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쿠팡의 판단은 실제로 쿠팡을 옥죄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의혹들을 계속해서 회피하자 영업정지 등 여러 수단을 거론하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기존 사안까지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소비자 정보 도용으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전자상거래법 제11조를 근거로 영업정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금융감독원도 쿠팡 압박에 가세했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대형 유통플랫폼의 디지털 보안의 경우 관련해 유관기관과 협력해 금융기관에 준하는 감독체계를 포함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쿠팡에서 벌어진 대규모 회원정보 유출 사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팀장을 맡고 있는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31일 쿠팡 연석 청문회가 끝난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쿠팡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해명 태도, 피해 축소 및 책임 회피적 대응이 국민적 우려와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며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고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업계 일각에서는 쿠팡 행보의 원인을 경영진의 인적 구성에서 찾고 있다.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 경영진의 대부분은 미국인이라 법적 위험을 극히 경계하는 이른바 '미국식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식 경영'에서도 '경영자의 침묵'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미국 CEO들이 공식 사과에 신중한 것은 '법률적 방어' 차원에서만 이뤄졌다. 이들은 법적으로 정제된 표현과 함께 잘못을 인정하고 공적인 검증의 장에 직접 나왔다.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18년 페이스북 이용자의 '친구정보'가 제3의 앱에 무단 제공된 사실이 공개되자 '신뢰 위반(breach of trust)'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후 미국 의회 상·하원 청문회에 연달아 출석해 총 10시간가량 쏟아지는 질문에 답했다.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의 설집자 제프 베이조스 역시 2020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독점 금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직접 소명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