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후계자 포커스⑦] 정기선 HD현대 '3세 경영시대 개막', 수소·로봇·SMR 신사업과 지배력 강화 주목
- <편집자주>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세대교체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경영 후계자로 일찍이 낙점되거나 유력하게 거론되는 오너일가 구성원이 이에 맞춰 차근차근 존재감을 쌓고있다. 이들은 빨라지는시대적 변화 속에 그룹 안팎에서 경험을 쌓거나 역할을 점차 확대하며 차기 경영승계를 위해 역량을 키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주요 대기업 후계자들의 2026년 행보를 짚어본다. 이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혈연이 아닌 능력으로 정당한 리더십을 인정받을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SK그룹 3세전면 등판가시권, 경영참여 시작한 '최윤정' 외부경험 쌓는 '최인근' ② CJ 이재현 후계자 교육 속도, 아들 이선호 '전천후 경영인'딸 이경후 '문화 전문가'로 ③ 롯데그룹 사업군 넘나드는 신유열, 신동빈 승계수업 가속화에 대관식 다가온다 ④ '한우물' 허세홍 허윤홍 '다양성' 허서홍, GS그룹 위상 후퇴에 오너4세 부담커져 ⑤ 한화 금융계열사 이끄는 김동원, 인니·미국 성과로 승계 정당성 굳힌다 ⑥금호건설 '빅배스' 후 1년 여전한 압박, 박세창 미등기 조용한 경영 언제 깨나 ⑦정기선 HD현대 '3세 경영시대 개막', 수소·로봇·SMR 신사업과 지배력 강화 주목 ⑧ 이규호 신사업부터 민간외교까지 넓어진 보폭, 코오롱 경영승계에 다가오는 전환점 ⑨ LS그룹 '포스트 구자은' 후보들 내년 과제는, 구본규 '미국 증설'·구본혁 'AUM 확대'·구동휘 '전구체 수율향상' ⑩ 신약 개발 도약 꿈꾸는 셀트리온 서진석, 내년부터 임상 결과도 속속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 정기선 부회장이 지난달 HD현대 회장에 오르며 '오너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HD현대는 최근 조선과 전력기기 등 핵심 사업 호황에 따라 시가총액이 상승세를 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또 다른 핵심축인 정유, 건설기계 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이 부문의 회복이 정 회장의 시급한 해결 과제로 꼽힌다.또 정 회장이 앞으로 경영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소, 로봇,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사업을 차기 그룹 성장사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이와 함께 확실한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 상속에 따른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그에게 놓인 숙제다.20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HD현대가 올해 10월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경영 체제로 전환하며, 책임경영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HD현대는 1988년 정기선 회장의 부친 정몽준 전 회장이 정계 진출을 선언하며 일선에서 물러난 뒤 37년 동안 이어져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끝냈다.1982년생인 정 회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현 HD현대)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를 취득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2년간 재직하다,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로 복귀한 뒤, 주요 업무를 맡으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그는 경영수업 과정에서 사업구조 개편과 영업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비핵심 부서였던 선박 수리·부품 공급 사업을 분리해 HD현대마린솔루션을 출범시켰고, 현재 시가총액 10조 원이 넘는 핵심 계열사로 키웠다. 또 오랜 기간 조선 수주 영업을 수행하며 관련 분야 네트워크를 쌓아왔다.현재 HD현대는 조선과 전력기기 사업 호황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년전 6조 원 대였던 HD현대 시총은 올해 11월 17조 원을 넘었다. 그룹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은2012년 23조 원 수준이었으나, 올해 140조 원을 웃돌고 있다.정 회장은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조선과 전력기기 부문 투자를 확대할 전망이다.정 회장은 오는 12월1일로 합병되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법인을 통해 상선과 특수선 사업을 강화한다.이번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중형선박·유조선·벌크선 등 상선 선종 투자를 강화해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공세와 독주를 막아낼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미국 해군 함정 건조·유지·보수(MRO) 사업도 적극 확대해 2035년까지 특수선 사업에서 연간 매출 10조 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전력기기 사업을 담당하는 HD현대일렉트릭 투자도 지속 확대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전력 수요에 맞춰 울산 공장과 미국 알라바마 공장 증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투자 규모 확대 관련 논의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부진한 실적이 지속되는 건설기계와 정유 사업 정상화 작업도 진행한다.HD현대의 경기도 판교 글로벌R&D센터(GRC) 사옥 전경. < HD현대 >정 회장은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건설기계 중간 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 공동대표도 맡게 되며 건설기계 사업도 직접 챙기게 될 전망이다.우선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합병해 새로운 법인 'HD건설기계'를 출범한다. 이를 통해 인도, 브라질, 호주 등 신시장을 개척하고 최첨단 생산설비를 도입해 실적을 회복한다는 계획이다.그는 HD건설기계의 2030년 목표 매출을 15조 원으로 설정했다. 2024년 기준으로 두 회사 합산 매출이 7조5천억 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매출을 높이겠다는 것이다.정유 사업에서는 석유화학 부문을 담당하는 HD현대케미칼의 저조한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HD현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 재무 부담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정 회장은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미래 먹거리로 선택한 것은 수소, 로봇, SMR이다.지난 2021년부터 정 회장이 구상한 '2030 수소드림' 프로젝트도 올해로 반환점을 맞았다. HD한국조선해양이 지난 2023년부터 732억 원을 투자한 에스토니아 수소연료전지 기업 엘코젠 공장이 지난 9월 완공됐다. 2024년에는 수소 전문 법인 HD하이드로젠에 12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조만간 수소 가치사슬의 청사진이 선명해질 전망이다.SMR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핵심 전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형 원전이다. 지난 6월 HD현대의 부유식 SMR 개념설계는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기본 인증(AIP)을 받았다. 정부의 SMR 관련 법적 규제가 완화된다면 조만간 실용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HD현대로보틱스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 아직 확실한 수익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국내 산업 현장 자동화 추세와 중국·일본산 산업용 로봇 반덤핑 관세에 힘입어 조만간 실적 반등이 기대된다. 또 정 회장은 기계 로봇 사업에 향후 5년 동안 8조 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이와 별개로 정 회장은 그룹 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두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HD현대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며 그가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2조 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현재 HD현대 지주사의 지분 6.12%만 보유하고 있다. 그의 부친인 정몽준 이사장이 26.6%를 보유하고 있다.정 이사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4조4천억 원으로, 지분을 상속하게 되면 세금으로만 2조1천억 원이 넘게 지출될 것으로 분석된다.그러나 정 회장은 급여와 HD현대 주식 보유로 받는 현금 배당 외에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수단이 없어, 앞으로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고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재원 기자